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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의술의 탈을 쓴 '미신의 의학史'

■새 부리 가면을 쓴 의사와 이발소 의사(쑤상하오 지음, 시대의창 펴냄)

목에 가벼운통증 느끼던 워싱턴

3명의 의사가 '피만 뽑아' 사망

흑사병 때도 새 부리 가면 쓴채

치료는 뒷전…환자들에 매질만

현직 의사의 의학史 '셀프 디스'





“天長路遠魂飛苦/夢魂不到關山難/長相思최心肝(하늘높고 길 멀어 마음은 갈데 없고/꿈에조차 험난한 산 닿을 수 없어/긴긴 그리움에 가슴이 찢어지네)” 중국의 옛 시 ‘장상사(長相思)’에서 보듯 그리움은 아프기 마련이다. 셰익스피어도 ‘내가 죽거든’이란 시에서 “이 시를 읽어도 시를 쓴 손을 기억하지 마세요/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나는 차라리 그대의 향기로운 머리에서 잊히길 바라니까요”라고 노래했다.

새 부리 가면을 쓴 17세기 유럽의 의사.


그리움이 아픔인 까닭일까.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상사병을 우울증의 하나로 간주했다. 더욱 놀랍게도 그리스 의사들은 이 우울증이 치질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당대의 최고 의사인 갈레노스의 경우 상사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의 치질 부위에서 피를 뽑아주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했다니 지금 기준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대만의 현직 외과의사인 쑤상하오가 쓴 ‘새 부리 가면을 쓴 의사와 이발소 의사’엔 이 외에도 황당한 의료 비사들이 많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죽게 많든 게 바로 의사였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다. 1799년 12월13일 목에 생긴 통증을 가볍게 넘겼다가 이튿날 호흡곤란을 겪은 워싱턴은 당시 미국에서 손꼽히는 의사 3명을 연이어 불렀는데 하나같이 피만 뽑고 그 외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세 의사에 의해 불과 10시간만에 인체 내 혈액의 절반이 넘는 3.8리터의 피를 뽑힌 워싱턴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미국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도 저격을 당해 몸에 박힌 총알을 맨손으로 꺼내려 했던 의사들의 몽매함 탓에 사망에 이르렀다. 워싱턴에게도 가필드에게도 ‘대통령 킬러’는 질병도 저격자도 아닌 의사들이었던 셈이다.

일반 대중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한 19세기 파리의 임시 영안실.




의사들의 복장에 대한 사연도 흥미롭다. 흔히들 의사라고 하면 ‘흰색 가운’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렇게 된 것이 100년 정도밖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의료지식 수준이 낮고 치료 효과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의사 신분을 감추기 위해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의료과학기술이 발전해서야 비로소 스스로 의사임을 당당하게 알리기 위해 흰 가운을 입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17세기 의사들이 썼다는 새 부리 가면은 일종의 전염병 방호복이었다. 그때 전염병 지역을 돌던 의사들은 새 부리 가면과 망토를 두르고 장갑을 낀 차림이었으며, 의사들은 치료는 뒷전이고 손에 든 지팡이로 돌림병에 걸린 환자들을 ‘천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매질이나 하며 다녔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의사임에도 ‘셀프 디스’를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벌어진 의사들의 파업 때 오히려 환자들의 사망률이 낮아졌다는 자료까지 스스럼없이 소개하는가 하면, 로마시대 정치적인 독살에 공모했던 숱한 의사들과 독일 나치에 의한 전대 미문의 대학살에 앞장선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까지 의학계의 흑역사를 여과 없이 전달한다. 지난해 대만 출판계에서 최고 수준의 영예로 여겨지는 ‘금정상’을 받은 책답게 흥미와 교훈이 겸비돼 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와 가족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의 시 ‘장상사(長相思)’가 한대(漢代)에 나온 것임에도 당(唐)나라 이백(李白)의 작품으로 소개한 대목이다. 그래도 저자가 약보다는 운동을 권하며 제안하는 두 가지 건의는 귀기울일 가치가 있다. 첫째 운동은 서두르지말고 순차적으로 하라. 둘째 운동을 할 때는 함께 할 동반자를 찾으라.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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