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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三患(삼환)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고통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고 나서 새로운 제19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공식 선거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후보자들은 짧은 시간을 쪼개 전국 각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유권자를 더 만나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이고 있다. 또 나날이 영향력이 더해가는 TV토론을 통해 후보자가 실현하고자 하는 공약과 만들고자 하는 나라를 알리고 있다. 특히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 서서 진행하는 스탠딩 토론은 다소 진행상의 문제가 드러났지만 후보자들의 평소 능력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환영받고 있다. 후보자들의 공약을 듣고 보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복지·고용·평화·무역·성장동력 등의 문제를 다 풀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사상가들은 선거에 나가 한 표를 호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사람이 더 공정하고 안전하게 잘살 수 있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했고 학파별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논쟁을 벌였다. 이렇게 보면 제자백가들도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려고 설득의 언어를 펼쳤다는 점에서 선거를 닮은 유세(遊說)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묵자가 선거 구호를 내건다면 ‘흥리제해(興利除害)’를 외쳤을 법하다. 그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도자라면 당연히 ‘온 세상의 이로운 일을 일으키고 해로운 일을 없애겠다(흥천하지리·興天下之利, 제천하지해·除天下之害)’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묵자가 말한 ‘흥리제해’는 당시 사람들이 절실하게 고통 겪고 있는 삼환(三患)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백성들에게 세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민유삼환·民有三患). 굶주린 자는 먹지 못하고 헐벗은 자는 입지 못하고 피곤한 자는 쉬지 못한다(기자부득식·飢者不得食, 한자부득의·寒者不得衣, 노자부득식·勞者不得息).” 삼환은 먹는 것, 입는 것, 쉬는 것처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삼환의 문제는 묵자 이래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자동으로 해결된 것이 결코 아니다. 21세기의 우리도 아직 삼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통 겪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컨대 굶주린 기자는 오늘 일자리를 잡지 못해 장기 실업 상태에 있거나 고용 불안으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경우다. 헐벗은 한자는 유가의 상승으로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피곤한 노자는 하루 8시간으로 정해진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해야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현재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문제가 삼환에 그치지 않는다. 북핵 문제로 촉발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무역 제재를 일삼으며 사드 배치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의 기술력을 갖지 못하면 미래 사회의 성장동력을 잃게 된다. 그 결과 불안한 삶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또 통계로 보면 결혼과 출산의 수치는 인구절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교육 현장과 연금 운용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봄이면 나타나던 황사가 이제 미세먼지로 일 년 내내 시민을 괴롭히는 등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삼환이 아니라 사환·오환·육환·칠환 등에 힘겨워하고 있다. 이에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삼환만이 아니라 칠환마저 해결할 수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후보자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칠환·팔환을 해결하겠다는 말만 믿고 표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이 신뢰할 수 있으며 실현 가능한 대안을 가리는 진검 승부가 된다면 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묵자의 삼환과 우리의 칠환을 풀어가는 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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