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전세계 시각장애인들에게 ‘소통’을 선물하다

부자가 개발한 세계 최초 점자 스마트워치 ‘닷’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시각장애인용 스마트보조기기를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 ‘닷(dot)’이 해외 언론과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불과 창업 3년 만에 ‘세상을 바꾼 혁신적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다. 이들이 만든 점자 스마트워치 ‘닷워치’가 전세계 시각장애인들의 ‘소통 창구’로서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서울 금천구 닷 본사에서 만난 김주윤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16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 장애인 정보통신 접근성 및 보조기기 콘퍼런스(CSUN)’ 행사장. 그곳에 유독 사람들로 북적이는 부스가 하나 있었다. 이 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연신 촬영 버튼을 눌러대고 있었다. 이들이 찍는 사진의 피사체는 흑인 소울의 전설로 불리는 팝 아티스트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였다. 예상치 못한 스타의 방문에 행사장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부스를 찾은 스티비 원더는 하얀 색상의 작은 손목시계를 들고 놀랍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 시계가 바로 ‘닷워치(dot watch)’였다. 국내 스타트업 ‘닷’에서 개발한 전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대상 점자 스마트워치 제품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첫 모습을 드러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스티비 원더 효과’가 절대적이었다. 닷워치 성능에 매료된 스티비 원더는 현장에서 구매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완성품이 나오기 전이라는 답변을 들은 스티비 원더는 비서를 통해 선주문을 신청했다. 김주윤(28) 닷 대표는 말한다. “당시 스티비 원더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연신 ‘와우’라는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유명 스타가 선주문을 했다는 사실보다 저희 제품 콘셉트에 만족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됐죠. 아직 제품이 배송되지는 않았어요. 스티비 원더만을 위한 스페셜 에디션을 건네줄 계획이거든요.”


2016 CSUN 행사장을 방문한 스티비원더(왼쪽)가 닷 부스를 방문해 ‘닷워치’를 시연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용 스마트보조기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닷은 지난 2014년 6월 설립됐다. 닷은 창업 3년여 만에 주요 해외 언론, 글로벌 스타트업계가 주목하는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의 닷이 있기까지 김주윤 대표의 창업스토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사업 노하우를 배웠고, 그 과정에서 쌓인 경험이 닷이라는 회사의 안정적인 경영에 밑거름이 됐다.

닷은 김 대표의 네 번째 회사였다. 지난 2010년 20세 때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 대표는 그곳에서 첫 번째 사업체를 차렸다. 아이템은 유망 스타트업과 취직을 원하는 대학생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첫 번째 사업은 아쉽게 실패했다. 의지는 있었지만 사업이라는 게 결코 쉽지가 않았다. 김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나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 얻은 것도 있었다. 창업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김 대표의 창업은 소위 ‘빈털터리’ 상태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모한 도전이 성공으로 귀결되는 건 결코 쉽지가 않다. 김 대표도 첫 번째 창업이 실패하자 상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또 한번 도전에 나섰다. 실패하고 도전하기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 김주윤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 창업가들은 굉장히 자유분방합니다. 실제 제가 몸담았던 창업 동아리에도 이미 창업을 경험해본 신입생들이 다수 있었어요. 쉽게 말해 10대 나이에 창업을 해봤다는 얘기죠. 그럼에도 그들은 성공에 크게 매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실패해도 툭툭 털어내고 ‘다시’를 외치더군요. 그런데 제 모습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실패에 낙심해 스스로를 자책하기에 바빴으니까요.”

김 대표의 방황은 꽤 심각했다. 스스로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정도였다. 그러다 세 번째 창업을 준비할 무렵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뒤돌아봤다. 사업 아이템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으로 경영이 이어진다면 꽤 짭짤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왜 창업을 하려 하는 걸까?”

김주윤 대표는 말한다.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사업을 하려는 이유는 뭐지?’라고 말이죠. 당황스러웠던 건 제가 그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거였어요. 창업에 도전해온 지난 3~4년간 스스로가 많이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가족, 친구, 지인 등 저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도 살피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차오르자 엄청난 허무감이 밀려오더군요. 힐링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종교였어요.”

그가 종교를 갖게 된 건 순전히 피폐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 그 하나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한때 강력한 안티 크리스찬’이었다. 김주윤 대표는 종교를 갖고부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종교를 갖고 난 후 자연스럽게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저는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또 다른 가치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거울 속에 비춰진 제 얼굴에서 미소를 발견했거든요. 봉사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참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창업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돈이라는 가치를 쫓기보단 무언가 사회에 올바른 가치를 전달하는, 또 그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업을 해보고 싶어졌죠. 그러다 우연히 시각장애인용 성경책을 발견했습니다. 다음 사업 아이템이 명확해진 순간이었죠.”



김주윤 닷 대표





그 후 김주윤 대표는 알고 지내던 종교 커뮤니티 지인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접했다. ‘책 한권’ 분량의 성경책이 점자로 쓰여 지면 무려 22권이 된다는 것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3억 명 가까운 전세계 시각장애인 중 점자 교육을 제대로 받는 사람은 5% 밖에 안된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시각장애인 중 상당수는 사고, 질병 같은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를 얻는데, 후천적 장애를 얻었다는 심리적 충격이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점자를 배워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죠. 설령 점자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손쉽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전자 점자리더기의 보급률은 현저히 낮았습니다. 한 대당 200만~300만 원 가량의 고가로 판매됐기 때문이었죠. 저는 이런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사업 아이템 준비에 돌입했어요.”

닷을 창업한 김 대표는 우선 점자 스마트워치 아이템에 초점을 맞췄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4년 12월 시제품을 들고 참여한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세간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김 대표의 도전에도 예상치 못했던 난관이 찾아왔다. 기존 시각장애인 점자 장비 시장 업계에서 닷과 김 대표의 도전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시기와 질투가 아니었다. 그 여파는 닷의 사업 자체를 뒤흔들 만큼 강력했다.

김주윤 대표는 말한다. “프로그램 우승 후 큰 규모의 투자유치가 결정됐습니다. 직원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죠. 그러다 며칠 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다짜고짜 투자를 취소한다는 거였어요. 차분히 이유를 묻자 놀라운 답이 돌아왔습니다. 투자자 측에서 우연히 점자 장비 업계 리딩업체 한곳에 들러 회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희 얘기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 그 대표로부터 ‘닷워치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제품 양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거예요. 고심 끝에 투자 취소를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그 회사 뿐만 아니라 대다수 동종업계 사람들도 닷의 도전을 ‘불가능한 도전’이라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적인 평가일수도 있었다. 오래전부터 점자 기반 스마트워치는 ‘이론상’으로만 개발과 제작이 가능한 제품이었다. 그 이유는 이론을 현실로 바꿔줄 고도의 제작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0.01mm로 승부가 갈리는 디테일한 공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양산 설비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도전을 멈출 수 없었다. 가치 있는 일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그 때 김주윤 대표의 손을 잡아준 멘토가 등장했다. 바로 김 대표의 아버지인 김지호 닷 최고경영책임자(COO) 겸 고문이다.

김 고문은 유명 오디오 브랜드의 스피커 엔지니어 출신이다. 김 대표가 어려움을 겪자 김 고문은 제품 제작 과정에 필요한 전문가들을 아들에게 소개 시켜 주었다. 그 후 김 고문의 알토란같은 조언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점자 스마트워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매번 빛을 발했다. 김 대표는 말한다. “닷워치의 생명은 내부에 삽입된 자석입니다. 기존 점자 리더기가 세라믹을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닷워치는 자석을 활용하기 때문에 크기를 줄일 수 있었죠. 그러나 여러 개의 자석을 삽입하다 보니 각각의 자석에서 나오는 자력 때문에 정확한 점자 노출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버지의 조언이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 김 고문은 닷의 재무업무를 돌봐주고 있다. 김 고문은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젊은 직원들과 연륜있는 시니어의 조합은 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강력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며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닷워치를 착용한 모습.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전세계 최초 점자 스마트워치 ‘닷워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가 인터뷰 과정에서 직접 차본 닷워치는 세련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매우 가벼웠다. 무게가 33g에 불과해 오랜 시간 착용해도 손목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았다.

직접 시연도 해보았다. 스마트폰에 닷워치와 연동되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프로그램을 구동시켰다. 우선 문자를 보내봤다. 전송 완료라는 문구가 스마트폰 화면에 뜬 순간, 차고 있던 닷워치가 가벼운 진동으로 문자 수신을 알려줬다. 그러나 점자를 모르는 탓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눈으로 확인한 건 닷워치에 구현된 24개의 핀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열심히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김 대표는 “닷워치는 문자, 시간, 스탑워치, 알림 등 다양한 정보를 점자로 구현해낸다”며 “더욱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조만간 업데이트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닷워치의 진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출시 전부터 닷워치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3개국에서 약 14만 개의 선주문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건 제품에 대한 시각장애인들의 높은 만족도였다. 국내 시각장애인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테스트에서도 전원으로부터 높은 평점이 나왔다. 해외 테스터들도 “닷워치를 사용하면 내 삶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 같다”, “이젠 낯선 곳에서도 닷워치만 있으면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다”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내외 테스터들의 반응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은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주력 매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렇다 할 마케팅 없이도 해외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김 대표는 “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정말 운이 좋았다”며 “페이스북, 유튜브 동영상에 남겨진 의견과 후기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 국내외 사용자들과의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닷워치의 판매가격은 해외 290달러, 국내 30만 원이다. 대다수의 점자 기기가 정부의 보조를 받아 현지 시장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수출 역시 정부 조달 형태(B2G)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시각장애인은 닷워치를 약 6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영국을 시작으로 일본, 아프리카, 중동 등에 거점을 마련해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김 대표와 닷이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하다. 장애인·비장애인 구별 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정보에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시스템 디자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대한 목표를 위해 당장은 시각장애인에 포커스를 맞추고 공익적인 활동에 매진할 생각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닷워치의 기술을 활용한 점자 교육기기 ‘닷 미니’의 경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협력해 이미 케냐 지역에 보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 점자기기를 대체할 수 있는 ‘닷 패드’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죠. 저는 닷 패드를 기반으로 고가 일변도인 점자 기기 시장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불러오고 싶습니다. 현재는 닷워치가 닷의 성장을 위한 일종의 돌격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까지의 성과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돌적인 돌격대장과 든든한 지원군을 기반으로, 시대적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착한 기업으로 성장할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