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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저승사자' 공정위 조사국 부활하나

文, 위상 재정립 천명에

공정위, 조직개편 착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이 12년 만에 부활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조사국 신설 등 공정위의 조사역량을 키워 ‘경제검찰’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고 천명했다. 공정위도 이례적으로 최근 용역발주를 통해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착수했다. 공교롭게 공정위의 이 같은 용역은 조사국을 조직도에서 지웠던 지난 2005년 이후 처음이다.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27일 “대선공약에 맞춰 조사국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검토하고 있다”며 “카르텔조사국과 시장감시국, 그리고 경쟁정책국으로 분리된 조사국의 업무를 한데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사국 부활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는 얘기다.

문 후보 측은 조사국을 부활시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을 근절하겠고 밝히고 있다. 김상조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는 재벌의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규제를 위한 조사국이 있었는데 지금은 1개 과로 축소됐다”며 “이 때문에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새로 도입됐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 조사국의 탄생은 1997년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던 1998년 1월13일.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당선인 신분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부회장 등 5대 재벌 총수를 국회 귀빈회관으로 불러들였다. 그가 재벌 총수들에게 내민 것은 ‘기업 구조조정 방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이었다. 그 자리에서 5대 재벌 총수는 결합 재무제표를 도입하고 부실경영을 은폐하지 않겠다는 등의 5개 구조조정 원칙을 정부와 합의했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난 3월15일 전윤철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을 향한 개혁의 칼을 뽑아든다. 대기업 내부거래에 대한 대대적인 직권조사를 단행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당시 30대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는 일 평균 4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를 위해 공정위 사무처장을 반장으로 한 직권조사 전담조직이 설치된다.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렸던 공정위 조사국의 탄생이다.

2005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까지 공정위 조사국이 밝혀낸 대기업 등의 부당 내부거래 금액은 31조6,986억원이다. 8년간 17차례의 대대적 조사로 부과한 과징금만도 3,700억원가량이다. 당시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2016년 기준으로 5,600억원에 달한다.

공정위 조사국이 첫 결과물을 내놓은 것은 1998년 7월29일이었다. 현대·삼성·대우·LG·SK 등 5대 그룹 계열사 80개사의 부당한 내부거래가 4조263억원에 달한다는 게 공정위의 조사 결과였다. 이들은 주력기업을 통해 부도 직전의 계열기업이 발행한 기업어음이나 후순위채권을 비싼 값에 매입하는 방법 등을 사용했다. 공정위가 이들에게 부과한 과징금은 704억원.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11월 2차 조사에서도 공정위는 이들 5대 대기업집단의 부당 내부거래가 1조4,927억원이라며 209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공정위 조사국을 첨병으로 한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은 당장 재계의 반발을 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재계는 공정위의 직권조사가 “공정거래법상 기본 취지인 경쟁촉진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한계기업을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 자체가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며 이를 일축했다.



재계의 반발 이후 공정위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1999년 5월의 3차 조사에서 공정위가 밝혀낸 이들 5대 대기업집단의 부당 내부거래 규모는 12조3,327억원이었다. 과징금도 789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과징금 한도도 매출액 대비 2%에서 5%로 상향 조정했고 내부거래도 의사회 의결을 거친 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재계의 우려도 조사국의 이런 역사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경유착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공정위 조사국의 부활은 자칫 마녀사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가 재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조사국을 만들어주는 쪽이나 국민이나 조사국이 생김으로써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의 불법행위가 단기간에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다”며 “과거에도 처음에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법원에서 패소하기 시작하며 일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를 앞세운 정부의 재벌개혁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된다. 원인은 법원의 제동이었다. 기점은 공정위 조사국의 부당거래 조사와 관련한 첫 소송이었던 삼성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관련된 2001년 법원의 판결이었다. 당시 고등법원은 이재용 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삼성SDS의 BW 저가 매각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공정거래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2003년에도 삼성·SK그룹과의 소송전 등에서 공정위는 줄줄이 패소의 쓴맛을 봐야 했다.

공정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현장에 나가 내부문건이든 컴퓨터든 그냥 들고 나오면 됐는데 지금은 기업들이 다들 법적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어 조사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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