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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섬, 건지’





건지(Guernsey). 영국과 프랑스를 나누는 도버해협의 작은 섬이다. 딸린 섬들을 합쳐봐야 면적 65㎢. 작은 섬에 6만3,026명이 몰려 산다. 크기가 비슷한 전라남도 거금도(64.12㎢) 인구가 6,000명 안짝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인구가 매우 많다. 인구 밀도 1㎢당 965명.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네덜란드(412,3명/㎢)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좁은 곳에 사람이 많이 몰려 사는 이유는 살기 편하기 때문이다. 기후가 좋고 주민들의 소득도 높은 편이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 치세가 싫어 건지에 11년 동안 거주하며 소설 ‘레미제라블’ 등을 썼다.

위치가 북위 49도로 한반도 최북단(함경북도 온성군·북위 43도)보다 훨씬 북쪽이지만 기후가 따뜻해 영국의 대표적인 피한지(避寒地)로도 손꼽힌다. 주민 1인당 평균 소득(PER GDP)은 5만5,186달러. 영국(4만96달러)과 프랑스(3만8,128달러)보다 높다. 건지 섬은 지리적으로 프랑스(거리 48㎞)와 훨씬 가까워도 영국 땅이다. 영국과 거리는 128㎞. 공식 언어는 영어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프랑스 방언도 통한다. 우리와 비교하자면 대마도 남단의 섬으로 일본 본토와 지근 거리인 ‘이키섬(壹岐島)’이 한국 영토인 꼴이다.

건지뿐 아니라 저지(Jersey) 섬을 비롯해 영불해협 섬들의 소유권은 대부분 영국 왕실에 있다. 건지도 왕실 직할령이어서 최고 권력자인 부총독도 영국 왕이 임명한다. 프랑스에 인접한 섬들이 영국령도 아니고 왜 영국 왕실령으로 남아 있을까. 노르만디공 윌리엄의 영국 정복(1066) 이후 소유권이 그렇게 굳어졌다. 프랑스 서부를 침략한 바이킹의 일족인 노르만족이 차지한 영불해협의 섬들을 영국은 끈질지게 지켜냈다. 백년전쟁으로 프랑스 내의 광활한 영토를 모두 상실했어도 섬들만큼은 잃지 않았다. 프랑스도 해군력이 강한 영국을 상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영국은 영불 해협의 섬들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건지 섬은 해적들의 소굴로 유명했다. 섬 전체가 정부의 허가를 받고 다른 나라 선박을 해적질하는 사략선(私掠船·privateer)들로 들끓었다. 미국 독립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서도 건지 섬의 사략선들은 악명을 떨쳤다.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건지 섬을 정보 집산지로 운용했다. 전쟁이 있을 때 건지 섬은 흥청거렸으나 전쟁이 끝날 때마다 급속하게 오그라들었다. 미국 저술가 엘렌 브라운의 저서 ‘달러(the Dollar)’에는 ‘놀라운 섬, 건지’라는 소제목이 달린 단락에서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1816년 당시 이 섬나라의 방파제는 허물어졌고, 길은 진창인데다 폭이 겨우 1.4m였다. 게다가 건지의 부채는 1만9,000파운드에 이르렀다. 섬의 연간 소득은 3,000파운드였고 그 가운데 2,400 파운드가 부채를 갚는데 들어갔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사람들은 건지를 떠났다. 일자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6,000파운드를 무이자로 빌려줬다. 재원은 이자 없는 새 국채 발행. 여기서 나온 돈 약 4,000파운드가 제방 보강 공사에 투입됐다. 영국은 건지에서 계속 돈을 찍어댔다. 1820년 4,500파운드, 1821년에는 1만 파운드, 1826년 2만 파운드, 1837년에는 5만 파운드를 지원하기 위해 해당 금액만큼의 채권을 팔았다.’



영국은 13년 동안 건지 섬에 통화량의 두 배에 이르는 신규 통화를 공급했다. 통화량은 처음보다 무려 25배나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 부채도 없었다. 안정된 가운데 번영을 누렸다. 엘렌 브라운은 건지 섬의 경제를 그물망처럼 짜인 국제 금융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사례로 꼽는다. 독자적인 통화정책과 조세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면 약탈적인 국제금융자본의 공격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건지가 경제 운용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건지의 성장에는 적절한 통화 공급뿐 아니라 새로운 먹거리를 위한 변신 노력도 한몫 했기 때문이다. 건지는 어업과 해산물 가공, 낙농업, 관광자원 개발과 함께 국제금융회사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조세회피처(Tax Haven)인 건지 섬에는 세계의 검은 자금이 몰린다. 건지 섬 경제의 37%가 은행과 국제펀드, 보험 등에서 나온다. 국제 금융 카르텔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인 통화 운용을 한다는 지역이 글로벌 금융자본의 세금 회피 지역이라는 점이 아이로니컬하다.

건지 섬은 독특하다. 외부와 고립된 섬이면서도 열려 있다. 늘 번영을 누렸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섬 전체의 주민이 아사 위기에 몰렸다. 전쟁 초기 독일군의 위세에 몰려 프랑스에서 철수하던 영국은 건지 섬에는 아예 수비 병력도 남기지 않았다. 섬의 전략적 가치가 이전만 못하다는 판단에서다. 건지를 쉽게 접수한 독일군은 섬을 요새로 만들었다. 독일에 점령 당한 유일한 영국 영토인 건지 섬에는 많을 때는 독일군 병력이 2만명까지 머물렀다. 전쟁으로 외부와 거래가 제한된 작은 섬에 많은 병력이 몰리니 식량 부족은 당연지사. 독일군도. 주민들도 굶어갔다.

건지 섬은 국제적십자사의 구호로 겨우 연명해 나갔다. 연합국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칠 때도 건지 섬을 지나쳤다. 요새화한 지역을 굳이 되찾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건지가 굶주림에서 벗어난 것은 2차대전 종결 직후. 1945년 5월9일 독일이 항복(5월 8일) 하고 유럽 전선에서 총성이 멈춘 뒤에야 건지는 영국 왕실령으로 돌아왔다. 고립된 섬 건지의 얘기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논란도 많다. 독자적인 통화 운용이라고 하지만 작은 섬의 지역 통화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건지 섬은 실험실이기도 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후유증이 본격화하면 건지 섬부터 타격받기 시작한다는 것. 휘몰아치는 변화를 맞고도 건지 섬이 번영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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