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건축과도시- 현대고 현정관] 경계 짓거나, 관계 맺거나...학교-도로 사이 '휴식 같은 건물'

압구정로 중간 현대고의 '얼굴'

도로소음·시선 차단하며 시원스런 배치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동서로 길게 누워

학생들 몰리는 '텔레토비 동산'

건물옥상 '지혜의 쉼터' 교내녹지 역할

미술실·검도실 등 다양한 공간 활용도

압구정 현대고 앞 건물./송은석기자




흔히 학교 건물 하면 떠올리는 것은 평평한 부지에 긴 직사각 형태의 저층 건물과 전면의 운동장, 이 공간을 둘러싼 담장 정도다. 국가가 보장하는 의무교육시설인 초중고교의 배치는 대체로 이와 다르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층 콘크리트(혹은 샌드위치 패널) 막사에 연병장, 약간 더 높은 철책이 있는 군부대 주둔지처럼 살풍경하다. 철저하게 수요와 기능 위주로 최소한의 배치가 이뤄진 삭막하고 비어 있는 공간이다. 요사이 일부 학교에 강당과 인조잔디 구장, 약간의 장식적인 외관이 더해지기도 했지만 큰 틀은 같다.

그래서인지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일대를 지날 때마다 유심히 현대고교를 들여다보게 된다. 10여년 전 도로 쪽 담장을 헐고 조성돼 현대고의 얼굴이 된 ‘현정관’ 건물 때문이다. 인근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동서로 길게 누운 이 건물은 인조잔디 운동장과 함께 학교 전체를 하나의 공원처럼 보이게 한다.

/사진제공=문훈발전소


-학교와 도로를 경계 짓기도, 관계 지우기도 하는 공간

현대고는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남단, 한남대로와 동호대교 사이 압구정로 중간쯤 위치해 있다. 압구정동은 지난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반포에 이어 두 번째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이고, 1990년대 ‘오렌지족’ ‘로데오거리’ 등으로 흥청거리는 이미지가 입혀졌다. 여전히 강남에서 손꼽히는 부촌 중 하나인데다 최근에는 압구정지구로 묶이며 재건축을 놓고 내부의 기대감과 주변의 질시가 엇갈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학교 이름에서 금방 떠올릴 수 있듯, 현대고는 현대그룹의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78년 설립한 학교법인 서울현대학원 재단 소속이다. 지금도 본관 정면 외벽에는 정 회장을 상징하는 ‘쌀집 자전거’ 조형이 부착돼 있고 1층 중앙복도에는 초상화와 각종 기념물이 설치돼 있다. 현재 본관 건물 오른쪽 3분의2 정도가 준공된 1985년 초 첫 입학생을 맞았고, 그해 가을께 강당을 포함한 서쪽 40개 교실이 증축됐다. 다시 20여년 지난 2003년 가을 현정관이 완성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현정관은 2007년에는 ‘아름다운교육상’ 산업자원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현정관의 초기 설계 콘셉트는 좀 더 지역 커뮤니티에 개방된 형태였다. 느슨한 경사로 이어지는 정문 쪽에는 필로티 형태로 하부를 비우고, 위쪽은 유리로 천장을 씌운 키오스크 형태로 상업적인 공간을 구상했다. 건물 역시 ‘ㄴ’ 형태로 경사로가 동문에서 꺾여 다시 본관 쪽으로 내려가는 동선이었다.

현대고 현정관 /사진=이재유기자


하지만 학교 측의 예산과 용도에 맞춰 현재처럼 본관 건물과 수평으로 층수만 낮은 형태가 됐다. 학교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외부의 소음과 시선을 살짝 가려주는 느슨한 담장 역할이랄까. 본관 건물과 운동장만큼 공간을 두고 오르내리는 둔덕 능선처럼 보호하는 느낌이다.

건물을 설계한 문훈 문훈발전소 소장은 “학교 본관과 도로를 경계 지으면서도 도시와 연결하는 아이디어가 건물에 반영됐다”며 “길 쪽에서 보이는 건물 모습에 더 신경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관람석이자 놀이공간·산책로로 잘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옥상공간을 녹지 경사로로 조성하는 것은 설계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낯선 형태였다”며 “특히 학교 내부에서 보면 (건물) 선이 부서지고 깨지며 여러 가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고 1985년 개교 당시 /사진제공=현대고등학교


-점심시간 학생들이 몰리는 ‘텔레토비 동산’

현대고를 정면으로 볼 때 서쪽인 정문에서 보면 현정관은 동쪽으로 잔디와 데크가 깔린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를 보여준다. 지상에서 건물 상부까지 녹지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러운 산책 동선이 되는 형태다. 건물 옥상에는 공식적으로 ‘지혜의 쉼터’, 학생들 사이에서는 친근하게 ‘텔레토비 동산’이라고 불린다. 점심시간 때면 학생들로 붐비는 이곳이 준공 즈음 유행했던 영국 아동용 TV프로그램 ‘꼬꼬마 텔레토비’의 배경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원에서 일대를 돌아보면 겨우 3층 높이임에도 주변이 환하다. 인근 빽빽하게 들어선 5~7층 남짓한 건물들과 드문드문 고층빌딩 사이, 학교 쪽으로 시야가 트인데다 녹지공간만 살짝 떠 있는 느낌이다. 문 소장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교문 쪽에서 올라와 다시 본관 쪽으로 내려가는 ‘ㄴ’자형 내리막길”이라며 “게다가 녹지 사이사이 조각품이 들어선 전시장 느낌을 넣었고, 조경도 조금 더 계획됐었는데 지금은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건물 동쪽 끝 철제 계단으로 내려와 들어간 1층은 대학의 학생회관과 비슷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도로 쪽과 달리 운동장에서 볼 때는 반지하 느낌으로 낮게 조성됐지만, 성큰(sunken·열린 지하공간)처럼 펜스 사이가 뚫려 있어 내부가 환했다. 중앙에는 미술 실습실과 재료실, 양쪽으로 과학실과 검도실까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준공 후 10여년 만에 처음 들어와 본다는 문 소장도 지은 그대로라며 흡족해했을 정도. 특히 가장 서쪽에 배치된 예배실은 30~40석 규모로 작았지만 교단 뒤 십자가에 빛이 한가득 내려오는 자연채광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2층에도 오케스트라연습실과 음악실, 동창회 사무실 등이 있었지만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나마 열려 있는 교무실(회의실)도 남은 공간 활용 차원으로 보였다. 1층 중앙 출입구가 도로 쪽으로는 늘 잠겨 있는 것처럼, 건물이 학교 내부 공간으로만 한정되면서 충분히 쓰이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인근 지역의 접근성이 높은 입지, 잘 관리되는 시설인 만큼 아쉬움이 더했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현대고 현정관 /사진=이재유기자


◇현대고 현정관 개요

-위치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425

-면적 : 건축면적 1,575.5㎡, 연면적 1,837.4㎡

-규모 : 2층, 옥상정원

-구조 : 철근, 철골콘크리트 구조

-설계 : 문훈, 스튜디오힘마

-시공 : 현대산업개발

-건축주 : 학교법인 서울현대학원

◇현대고 현정관 이야기

△학교와 도로 사이 경계 지으면서도 관계 맺는 공간

-도로 쪽 소음과 시선 차단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배치

△학생들이 즐겨 찾는 교내 녹지, 산책로 ‘텔레토비 동산’

-미술실·검도실·예배당 등 다양한 학생활동 공간으로 활용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