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그녀의_창업을_응원해]임신과 동시에 창업...금융권에 없던 시장을 만들다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수학자를 꿈꿨던 아이

금융계에서 첫발

일에 의미 찾으려 '자발적 백수'

금융시장 비효율 개선위해 창업

이효진 대표 /사진제공= 8퍼센트




8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하루에 만원으로 생활하며 백수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아무런 계산도 없이 번개처럼 떠오른 사업 아이템을 만났다. 중금리 P2P(개인간거래) 대출이었다. 은행권과 캐피탈, 카드론,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간 금리 차이가 최소 10%포인트가 넘는 상황에서 국내에는 없는 틈새 아이템이었다. 창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사업에는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평정을 찾았다.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창업을 할 거냐 안 할거냐’… ‘반드시 해야 한다’

둘째 ‘지금 할 거냐 (아이를 낳고) 2년 뒤 할 거냐’ … ‘지금 안 하면 안 된다’

그렇게 새 생명을 맞으며 창업을 준비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회사도 키우게 됐다. 3년 뒤인 현재 100여개가 넘는 회사들이 생겨나 성장 중인 P2P금융업에서 선두자리를 지키는 8퍼센트의 이효진(35) 대표 이야기다.

어릴적 이 대표가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쌍둥이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얼굴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있는데 왼쪽이 이 대표다. 만우절 때는 쌍둥이들의 로망이라는 교실 바꿔서 수업듣기 등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다. 한 명은 은행 퇴사 후 P2P금융 기업 창업, 다른 한 명은 약사의 길을 걸으며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제공=이효진 대표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우수 두뇌들만 모인다는 과학고에 진학했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 밀리지 않는 과목이 수학이었다. 명제가 있고 결론을 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수학 문제를 풀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수학자를 꿈꾸며 포항공대 수학과에 들어갔다. 막상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4년간 지내보니 자신보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학문이라는 게 노는 것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재밌다고 느낄 정도로 한눈을 팔지 않아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만 재밌는 거구나’ 판단을 내리게 됐어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수학을 응용할 수 있는 금융분야 취업을 택했죠”

우리은행 재직 시절 이효진 대표. 지점을 거쳐 본점에서는 주식, 옵션, 선물 거래를 맡았고 타 회사와의 조인트 벤처에서 일하는 등 많은 인정을 받았다. /사진제공=이효진 대표


그렇게 우리은행에 입사했다. 8년간 지점과 본점을 거치면서 트레이딩 업무 등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위시리스트에 넣어두는 업무들도 해봤다.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한 편이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좋았다. 이 대표는 그때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 이 직장에 계속 있으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노력으로도 인정받고 잘 살 수 있었어요.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고 복지도 좋은 편이었죠. 하지만 일의 의미를 찾지 못했어요”

잘 나가던 은행원은 왜 퇴사 후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었을까. 그는 회사에 8년간 다니면서도 평소에 창업을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은행원 시절 다른 직장인과 똑같았다고 했다.

“공채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 처음 2∼3년은 즐겁게 일했고 어느 순간 조직에 나를 맞춰서 지냈어요. 문득 이걸 계속하는 게 맞나 생각도 들었죠. 어느 날은 퇴사 생각이 51%이다가도 또 다음 날은 퇴사 생각이 49%가 됐고 이렇게 49대 51의 법칙이 반복되다 보니 8년간 직장을 다녔어요. 그랬네요”

최근에 8퍼센트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합류한 조세열 전 맥쿼리증권 전무도 우리은행 시절 이 대표를 두고 “그저 착실하고 열심히 하는 직장인이었다”며 “창업을 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대표와 조세열(왼쪽) 전 맥쿼리증권 전무는 2007년 우리은행과 맥쿼리증권 한국지사가 각각 5명의 직원을 파견해 만든 한 조인트 벤처에서 맥쿼리팀의 팀장과 우리은행팀의 막내로 만나 인연을 쌓았다.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일가를 이룬 조 전 전무가 스타트업인 8퍼센트에 합류하면서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사진제공=이효진 대표


◇ “이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그에게 남편이 새로운 일을 찾아보라며 퇴사를 권유했지만 회사에 만족한다고 거절했던 그였다. 퇴사의 계기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보다 강렬하게 찾아왔다.

결혼 3년 차에 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처음으로 가족의 일원으로서 상을 치르게 됐다. 그전까지는 죽음을 한 번도 가까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망자를 보내는 의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면서 ‘죽을 때 어떤 기분일까’, ‘어떤 삶을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질문을 자신에게 대입해봤다. 답은 ‘너무 억울해서 눈을 못 감을 것 같다’였다.

“사실 은행의 꽃인 지점장을 달고 노후대책도 잘 세워서 병치레 없이 세상을 떠나면 ‘성공적인 죽음’이지만 그렇게 죽고 싶은 마음은 1%도 안 되더라고요. 두 가지 목마름이 있었어요. 해본 게 은행일밖에 없다 보니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하는 일이 의미있는 일이었으면 하는 목마름이었어요”

일단 충격요법이 오자 결정은 빠르게 내렸다. 두 달 뒤에는 모든 퇴직 절차를 마치고 백수가 돼 있었다. 다음 행보를 정해두지 않은 퇴사였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하루에 만원을 가지고 5,000원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러 가는 교통비로 쓰고 끼니는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먹으며 때웠다. 후식은 편의점 음료수였다. 직장 다닐 땐 아침에 한 잔, 점심에 한 잔 커피 마시면 다 써버릴 돈이었다. 백수에게 밥을 사주는 지인들도 많았다. 카페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도서관, 서점 등 돈 안 드는 놀이터를 찾아냈다.

보통 직장인들에게는 이번 달 긁은 카드값이 다음달 통장에 가압류를 신청해 ‘월급이 통장을 스치는’ 구조가 퇴사 결심을 접는 핑계가 되곤 한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스스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것에 대해서 열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소비에 대한 욕구도 덜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으면 뭘 살까’를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물도 없이 간소하게 결혼한 그였다. 그는 “원래 제가 똑같은 것 입고도 세탁만 잘 하면 깨끗하다 하고 다니고 똑같은 것 먹고도 잘 사는 편”이라며 “월급 없이 산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외벌이 속에서 삼남매가 검소하게 자라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대표는 성년의 날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 기숙사에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오더니 ‘성년이 된 걸 축하한다. 나는 이제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하고 그 뒤로 용돈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어요. 늘 과외를 했죠. 가끔 너무 옷을 추레하게 입으면 부모님이 옷 사입으라고 주신 돈이 전부에요”

사표를 낸 뒤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등정에 도전한 이효진 대표. 자발적 백수인 만큼 즐겁게 놀았다. /사진제공=이효진 대표


그는 두번째 놀이터도 찾았다. 자신과 같은 백수들의 모임이었다. 함께 놀 사람을 찾기 위해 페이스북에 ‘백수클럽’ 페이지를 개설하자 6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은행원 출신인 이 대표를 비롯해 대기업, 출판사, 예술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자발적 백수’들이 많았다. 평일에 낮술 하기 등 직장 다니면서 못 해본 것들을 했다. 백수 친구들과 다양한 사업구상을 하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다 운명의 아이템을 만났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갔다.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미국에는 P2P대출이 활발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은행에서 8년간 쌓은 경험에 기반한 ‘촉’이 왔다. 온 김에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에 있는 ‘렌딩클럽’ 본사로 향했다. 렌딩클럽은 기존 은행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개인이 중금리(7∼10%)에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온라인을 통해 투자자와 대출자를 연결해주는 모델로 화제를 모았다. 온라인 경매 업체 이베이의 창업자가 설립했다. 이 대표가 회사를 찾았을 때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을 앞두고 한창 활발히 성장세를 키우는 중이라 역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는 어떤 아이템을 두고 SWOT분석(기업의 강점·약점·기회·위협 요인을 분석해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기법)을 하거나 연매출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계산만 했다면 이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는 PC인터넷을 기반으로 기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을 올려 고금리로 대출을 받는 ‘소셜 펀딩’ 형태의 P2P 대출은 있었지만 중금리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금리 P2P가 나오기만 한다면 시장에서는 반응이 올 거라는 게 보였다. 이 대표가 은행 근무 시절에도 고객들이 제2금융권 대출 이력이 생기면 저금리 대출길이 막혀 계속 고금리에 돈을 조달하게 되는 악순환이 안타까웠다. 이를 금융의 비효율이라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충분히 저금리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실제 신용에 비해 과도한 금리를 부담하는 상황 자체가 금융의 비효율인데 이를 없애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타까운 사례가 많았어요. 친한 지인이 좋은 직업에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데도 18%나 되는 대출 이자를 갚고 있는 거예요. 알고 보니 중고차를 사면서 급하게 값을 치러야 해서 그 자리에서 주선해주는 금융캐피털 업체에서 돈을 빌렸는데 기록이 남다 보니 1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8퍼센트 사내 학습 조직 말랑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는 이효진 대표. 8퍼센트는 스크럼(서로 팔을 걸어 짠 대형) 대형으로 진행하는 회의, 사내 학습 조직 등 이색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2014년 1금융권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대출자들에게는 낮은 금리를, 저금리로 돈을 굴릴 곳이 없는 투자자들에게는 높은 수익을 보장해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도 8퍼센트로 정했다. 일단 기존 금융권에 비해 대출자의 과거보다는 현재를 보는 데 주력했다. 금융신용평가사의 정보를 기본으로 하되 대출자의 신용등급보다 평점보다는 매달의 현금흐름을 주의 깊게 봤다. 과거 연체가 있어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현재 매달 꾸준히 월급이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처음에 만든 리스크평가 모형들은 수학을 전공하고 기초 수준 이상의 코딩을 할 수 있는 이 대표가 직접 참여한 결과물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경력의 남편도 큰 도움이 됐다. 이후 전문가들을 영입하면서 이때 모형에서 조금 더 개선작업을 거쳤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며 2014년 12월에 제1호 상품을 내놨다. 금리 연 8.26%의 500만원 상당의 신용대출 상품이었다. 동종 업계에서는 처음이다. 임신 4개월 차였다. 임신 중에는 주당 40시간을 넘기는 근로, 야근, 휴일 근무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이제 갓 창업한 스타트업의 대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출산 예정일에도 회사를 지켰다. 하루하루가 기적같은 시간들이었다. 이 대표는 “솔직히 첫 아이이기 때문에 몰라서 했을 뿐 둘째였으면 엄두도 못 냈다”며 털털하게 웃는다.

“재작년 유월에 아이를 낳고 한 달 반만에 복귀했어요. (의사들이 권장하는 출산 후 휴식기간은 세 달이다) 한 여름에도 몸이 시린데 가는 곳마다 에어컨은 켜져 있지 ‘늙어서 고생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무서웠어요”

‘그래도 나이 들어서 힘들면 그때 해결하면 돼’하며 금세 긍정 모드가 됐지만 출근 때 우는 아이 앞에서는 이 대표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지금도 출근할 때 애가 울던 순간을 딱 한 번 힘든 순간으로 꼽는다.

창업과 동시에 맞이한 첫 아이 지민이와 남편 주동씨.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주동씨는 이 대표에게 꾸준히 창업을 권유했고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도 계속해서 지지를 보냈다. /사진제공=이효진대표


힘든 시간을 무사히 버티고 아이와 회사 또한 잘 자라게 된 것도 같은 여성인 시어머니가 보여준 신뢰와 응원이었다. 교사 생활을 오래 한 시어머니는 선배 워킹맘으로서 창업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이 대표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는 “임신 사실을 알고 창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묵묵히 응원해주셨고 힘들 때마다 ‘니 어려움을 내가 안다’고 말해주셨다”고 말했다.

창업자도 드문데 거기에 금융업계 창업자로는 여성이 더욱 드물었다. 외부 투자자나 업계 사람들을 만나서 처음 인사를 하면 ‘바지사장’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역시 이 대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며 “여성이고 아기 엄마고 은행원 출신 등 드문 캐릭터여서 기억에 남는 일이 더 많아서 사업할 때는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엄마 대표다 보니 여성 직원들을 이해하는 부분도 넓어졌다. 그는 “스타트업이라 출산과 육아 관련해 복지제도를 다양하게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출산 전 검진 등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부분들을 많이 챙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서울역 앞에서 ‘신용등급 4∼6등급도 대출을 8∼10% 금리로 받을 수 있다’는 광고에 직접 나선 이 대표. 회사 성장은 물론 업계 전반의 파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큰 과제다. 이 대표는 한국P2P금융플랫폼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사진제공=이효진


처음 창업을 할 때만 해도 P2P를 말하면 파일 공유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이해도가 적었지만 이제는 30대, 남성, 얼리어댑터 성향의 사람들 위주로 고객군이 확대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회사를 키우면서 P2P를 알리는 역할도 해야 했다. P2P 산업 전반을 키우기 위해 한국p2p금융플랫폼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업계에 같은 일을 하는 업체가 100여개 넘게 추산될 정도로 늘어났지만 단순히 경쟁사가 늘어난 게 아니라 업계가 성장하는 긍정적 신호로 보고 있다.

2년 만에 기존 투자나 대출 형태로는 볼 수 없는 풍경도 나타난다. 수제맥주 대동강 페일에일로 유명해진 서울 경리단길의 수제맥주 판매점 ‘더 부스’는 8퍼센트에서 사업자금 일부를 모집했다. 투자자에게 10% 수익을 제공하고 새로운 수제맥주가 만들어지면 출시 한달 전부터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전용 잔도 별도로 제공한다. 돈뿐만 아니라 사람도 연결해주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멕시코 음식 프랜차이즈로 유명한 훌리오 등이 8퍼센트를 거치며 투자 조달과 사업 홍보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 같은 결과 8퍼센트는 지난달 기준 P2P거래 누적금액 685억원이 됐다. 업계에서는 선두 수준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판단하기에는 아직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다. 그는 P2P금융업체 중에서도 자산이 10조가 넘는 회사가 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폭발적 성장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핵심 역량에 해당하는 자동화와 리스크 평가의 정확성을 높여 장기적으로 금융업계를 재편하겠다는 포부다.

이 대표는 “저희는 8퍼센트를 통해 고금리에서 중금리로 갈아탄 고객들이 대출을 갚는 삶에서 투자하는 삶으로 바뀔 때까지 저희의 실험을 계속하고 싶어요”라며 입가에 보조개를 만들며 웃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