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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의 탄생





1792년 5월17일, 미국 맨해튼 동쪽 월스트리트 68번지. 증권 브로커들이 뒷골목의 한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목적은 담합. 제 살 깎아먹기식 고객 확보 경쟁을 지양하고 수수료도 너무 낮게 책정하지 말자는 공감대를 갖고 모였다. 회합은 몇몇 큰 손들이 이끌었다. 1792년 들어 몇몇이 ‘주식거래 사무실’을 내고 증권 경매를 시작했으나 장외 브로커들에게 당할 대로 당한 뒤였다. ‘주식거래 사무실’에 들어와 가격 정보만 빼내 장외에서 낮은 수수료를 적용하는 소규모 브로커들에게 시장을 차츰 빼앗겼던 것.

심지어 ‘주식거래 사무실’에 등록된 회원 브로커조차 고객을 지키기 위해 장외거래를 서슴지 않았다. 거래 질서가 문란한 가운데 무한 경쟁에 내몰린 브로커들이 자구책으로 모임을 가진 게 회동의 배경. 플라타너스의 일종인 ‘버튼우드(Buttonwood) 아래 길가에서 모인 이들은 두 가지 거래 규칙을 세웠다. 주식을 공동사무실에서만 매매하고 중개 수수료도 0.25% 이상씩 받아내자는 내용이었다. 브로커 사무실 3곳과 개인 브로커 21명이 ‘버튼우드 협약(Buttonwood Agreement)’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금융의 심장 격인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가 이렇게 닻을 올렸다.

왜 이들은 나무 아래에서 모였을까. 변변한 사무실이 없어서다. 고급 맨션으로 개발된 맨해튼의 중심 지역은 미국의 성장과 더불어 상업과 금융·무역 중심지로 떠올랐으나 번듯한 건물 1층은 유럽 금융기관들의 현지 사무소가 차지했다. 브로커들은 사무실만 없었을 뿐 거의 모든 금융업무를 다뤘다. 주식 매매를 중개하고 사설 복권업체를 운영했으며 보험상품을 대신 팔기도 하고 무역업까지 대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버튼우드 협정에 서명한 비교적 중대형 브로커들의 대다수도 여러 업무를 동시에 취급했다.

문제는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다는 점. 다양한 업무를 취급하다 보니 곳곳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브로커들은 반년 이상 이견을 조정한 이후인 1793년 초에야 같은 건물에서 주식을 거래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월스트리트와 워터 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톤틴 커피하우스(Tontine Coffee House)’를 개점하고 그 안에서 주식을 사고팔았다. 브로커들은 주당 200 파운드 짜리 주권을 203장 발행하고 전량을 사들였다. 공동사무실이자 거래소인 톤틴 커피하우스 매매장의 이익을 일정 기간 축적한다는 약속도 했다. 창립 회원이 7명으로 줄어들 때까지 이익을 쌓고 생존자들이 나눠 갖는다는 구조였다.

톤틴 커피하우스에서는 누구나 주식 매매에 참가할 수 있지만 중개권은 회원 브로커에만 있었다. 물론 톤틴 커피하우스가 생긴 이후에도 비회원 브로커나 월스트리트 노상에서 장외거래는 근절되지 않고 이어졌다. 그래도 뉴욕 증시는 버튼우드 협약 덕분에 어떤 거래소보다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급성장 덕에 1817년에는 독립 건물로 옮기고 ‘뉴욕증권거래소(NYSE)’라는 이름을 걸었다. 뉴욕 증시 여명기에 과당 경쟁을 벌이던 중개인들이 신사협정을 맺은 배경에는 최초의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입김도 깔려 있었다.



마침 버튼우드 협정 두 달 전(1782년 3월) 해밀턴의 사촌 처남이자 현직 재무부 차관보인 듀어가 주가조작 혐의로 체포됐던 상황. 해밀턴은 공황 상태를 맞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장내거래 활성화 유도책으로 업자들의 ‘도원결의’를 측면에서 거들었다. 조직화한 뉴욕 증시는 해밀턴의 지원을 업고 무섭게 뻗어 나갔다. 미국 내 선두 거래소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필라델피아 거래소도 일찌감치 따돌렸다. 1820년대부터는 운하 건설과 철도 붐을 타고 미국의 돈이 뉴욕에 몰리고 19세기 후반 밴더빌트 같은 주식 벼락부자도 생겨났다.

빌딩은커녕 사무실도 없이 나무 아래서 23명이 뿌린 씨앗은 수십만 배로 커졌다. 수백 년생으로 추정되는 버튼우드도 1865년 태풍으로 뽑혀 나갈 때까지 월가의 상징으로 사랑받았다. 뉴욕을 최초로 차지했던 유럽인들인 네덜란드인들이 영국군과 인디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나무 울타리에서 이름이 나온 ‘월스트리트’도 국제금융으로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시가총액 22조 5,400억 달러로 세계 주요 주식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뉴욕 증시는 오늘날에도 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인다. 미국이 금리라도 조금 올리면 신흥시장에 투자된 국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 월가로 흘러간다.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지만 뉴욕 증시가 지닌 경쟁력에는 끊임없는 자정 노력이 배어 있다. 뉴욕 증시는 1929년 주가 대폭락으로 촉발된 세계 대공황에 봉착하기 전까지는 작전세력의 온상이었으나 투명화 조치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성공하는 개혁이 세상을 바꾼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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