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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편한여행] 번외편-엄마에게 덕질을 허하라(2)

뒤늦게 풀어놓는 세카오와 내한 콘서트 현장

또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마법같은 시간

아이도 훗날 행복한 '덕질' 하기를





#.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

어두운 조명 아래 ‘End of the World(세상의 끝)’이라는 글귀가 콘서트홀을 찾은 사람들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는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 올드 팝을 좋아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명곡은 콘서트의 주인공인 세카이노 오와리(이후 세카오와)를 기다리며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Why do the birds go on singing? Why do the stars glow abov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I lost your love.(새들은 왜 계속 노래 부를까요. 별들은 또 왜 저 위에서 빛을 뿌릴까요. 세상이 끝났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요. 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었을 때 끝났다는 것을요.)”

세카이노 오와리의 첫 내한공연 모습. 보컬 후카세가 열창하고 있다. 후카세는 세카오와의 많은 곡들을 직접 만들고 가사를 덧붙였다. 다른 멤버인 사오리와 나카진도 작곡·작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귀에 익은 멜로디를 흥얼흥얼 하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쯤 콘서트홀의 조명이 완전히 암전됐다. 기대감이 가득 섞인 팬들의 환호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나자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이키델릭한 느낌의 조명과 함께 세카오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말이다. 콘서트를 보러 온 이들이 하나씩 들고 서 있던 동그란 캔디 모양 야광봉은 색다르다는 느낌을 더해줬다.

첫 곡은 스타 라이트 퍼레이드. “별이 쏟아지는 잠 못 이루는 밤에 우리들을 데리고 갔던 그 세계”라는 가사 그대로 감성적이면서도 몽환적 분위기의 보컬이 인상적인 노래다. 특히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보컬 후카세의 목소리가 곡 전체를 타고 흐르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 평화와 전쟁, 행복을 언급하며 비장함(?)마저 묻어나는 러브 더 워즈(Love the warz)와 영어로 불러 팬들이 떼창 대신 리듬을 탔던 몬순 나이트(Monsoon Night)가 초반 분위기를 급속하게 끌어올렸다.

지난 2월 열린 첫 내한공연에서 멋진 무대를 선보인 세카오와 멤버들. 왼쪽부터 건반(피아노)의 사오리, 기타의 나카진, DJ 러브. 보컬 후카세는 그림자로만 보인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그 다음은 템포가 빠른 전주와 간주가 팬들의 심장을 쥐고 흔드는 데스 디스코(Death Disco)가 등장했다. 속사포 랩이 들어가 있는 탓에 부끄럽게도 팬이지만 100% 완벽한 ‘떼창’이 불가능한 이 곡은 콘서트홀을 순식간에 화끈한 클럽으로 만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가사를 뜯어보면 “너에게 신이란 없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어째서? 너는 무엇을 믿고 있지?” 등등 철학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뭐, 이런 내용을 모르고 멜로디만 들어도 나쁘지 않다. 노래를 즐기는 방법은 각자 다르니까.

중간에 멤버 모습을 따서 만든 캐릭터 인형들이 한국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영상도 잠시 나와 눈길을 끌었다. “매운 음식이 유명하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아구찜을 먹으러 가자”는 귀여운 멘트가 팬들을 웃음 짓게 했다. 공연을 주최한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측에 문의한 결과, 영상은 전적으로 멤버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SOS, 안티 히어로(ANTI-HERO), 신곡 원 모어 나잇(One More Night), 네무리 히메(眠り姬), 스노우 매직 판타지(Snow Magic fantasy) 등이 이어졌다.

이때까지는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서 너무 기뻤고, 또 신나서 뛰면 관절에 바로 무리가 가는 나이(?)라는 사실을 잊고 펄쩍펄쩍 춤추며 콘서트를 즐겼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해방감이던가! 물론 이보다 두 달 앞서 일본 록밴드 SPYAIR의 내한 콘서트를 다녀왔던 사람으로서 살짝 찔리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뮤지션의 단독 콘서트는 정말 오랜만이어서 아드레날린의 분출이 상당했다. 잠시 내가 발 딛고 사는 이곳의 문제는 모두 사라진 것처럼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보컬 후카세(왼쪽)와 기타 나카진.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 추억은 또 다른 하루를 버틸 힘이 되겠지

‘신나게 뛰놀자’의 콘셉트로 강력한 흥분이 콘서트 중반까지 쭉 이어져 왔다면, 나는 ‘이 노래’의 간주가 시작된 후 사실 다시 현실로 소환돼 왔다. 애써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라 힘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누구든 지난 일이 떠오르는 계기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풍경이든, 지치고 외로웠을 때 힘이 되어준 노래든, 정말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든,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많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무엇인가에 봉인이 탁 풀려버리는 느낌. 그랬다, 이날의 나는 예상치 못한 선곡 리스트에 한 방 먹었다.

“하얀 별이 내리던 밤에 내가 보내는 찬미가를…푸른 은하 너머로 UFO가 너를 데리고 사라져 가. 하얀 병원에서 죽은 환상의 생명을 잠 못 드는 밤에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하고 푸른 달에 빌어본다. (중략) 환상을 꿈에서 만난다면 그건 환상이 아니야. 내가 환상이 되는 밤, 하얀 별이 하늘에 내려”



밴드에서 피아노를 맡고 있는 사오리. 그녀의 연주는 세카오와가 발표하는 많은 곡들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으며, 보컬 후카세의 미성과 어울러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환상의 생명’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압권이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환상의 생명(幻の命)’. 바로 그 노래가 나의 판도라 상자였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가듯 감미롭게 흐르는 피아노 전주. 군더더기 없는 기타 연주와 호소력 짙은 보컬이 절묘하게 합쳐진 이 노래는 내가 세카오와를 알게 된 계기이자(이른바 ‘입덕 계기’)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얀 병실에서 병마와 혹독하게 싸우고 계실 때,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는 상황에 괴로워하며 매일 들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당시 막막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을 때 ‘이 노래를 만든 사람도 나처럼 괴로운 시기를 보냈겠지’라며 힘든 하루를 버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한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이날의 선곡이 몹시 반가웠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만큼 슬펐다. 그리고 나 홀로 오롯이 과거의 기억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돼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육아든, 회사 일이든, 훗날 내 삶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순간을 꺼내 치유의 도구로 쓸 수 있도록 마음속 깊이 기억해 두기로 했다.

(이 곡 다음에도 많은 팬들이 좋아하는 헤이 호(Hey Ho)와 RPG, 드래곤나이트(Dragon Night) 등이 연달아 흘러나왔지만, 사실 환상의 생명에서 잠시 정신을 놓고 다시 부여잡는데 시간이 걸렸기에,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세카이노오와리 내한공연에 참석한 팬들의 모습. ‘(한국에) 와줘서 고맙다’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들고 멤버들을 환영하고 있다./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 아이와 함께 덕질에 빠질 미래를 기대하며

세카오와의 내한 콘서트를 다녀온 지도 어언 3개월이 지났다. 공연 참관기를 석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쓴 이유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이라 본래의 업무가 아닌 개인 칼럼 원고 작성을 차일피일 미룬 나의 게으름에 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시간이 흘러 살짝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그 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무리를 하며 다녀온 콘서트였지만, ‘잘한 일’이라고 내 자신을 다독일 수 있었던 것은 그날의 3시간이 3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 빛으로 남아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덕질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덕질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을 챙긴다. 덕질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작은 희망이 되고 있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그 어떤 것을 위해 찬란하게 불타오르고 또 열정을 쏟는 삶, 내 아이도 경험하며 살았으면 한다.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또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다녀올 미래를 기대하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

지난 2010년 세카이노오와리 환상의 생명 라이브 공연. (@ap뱅크 페스티벌)/유튜브


** 세카이노오와리(世界の終わり)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의 암울한 밴드 이름과 달리 삶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밴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매력적인 보컬과 몽환적인 멜로디, 동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무대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항상 가면을 쓰고 나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DJ러브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초등학교 동창으로 정신질환이나 집단따돌림 등 힘겨운 성장통을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낸 음악이 눈길을 끈다. 후카세(보컬), 나카진(기타), 사오리(피아노), DJ러브, 4명의 멤버는 작사·작곡은 물론 프로듀싱, 엔지니어링을 비롯해 앨범 디자인, 의상, 뮤직비디오 스토리 구성, 콘서트 연출 등에 직접 참여하면서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2017년 2월 첫 내한공연에서도 이들은 한국 팬을 위한 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는 등 독자적인 색채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필진> 연유진·이수민기자

각각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초보 엄마. 출산과 육아 휴직 기간, 집에만 갇혀 있는 생활이 답답해 아기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 엄마 숨통 터지는 유모차 여행’(다봄)을 공동 집필했다. 회사에 복귀해 워킹맘으로 직장 생활하는 지금도 주말이나 휴가 때면 짬을 내 나들이나 여행을 다니고 있는 이들은 이 땅의 초보 ‘맘(Mom)’들이 조금이라도 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도록 다양한 팁을 담아 여행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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