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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길과 정원 사이 헤매는 ‘서울로 7017’

최수문 사회부 기자

“양산을 접어주세요. 옆 사람과 부딪힐 수 있습니다.” ‘스태프’라는 명찰을 단 사람들이 계속 소리쳤다. 반응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따가운 햇볕인데 양산도 못 쓰게 하면 어떻게 하나. 지난 20일 토요일 하루에만 시민 15만명이 이 길에 올라섰다. 서울시에서 국내 첫 고가 보행 길로 개장한 ‘서울로 7017’의 이야기다.

개장 사흘째인 22일에도 인근의 직장인과 나들이객으로 좁은 다리가 가득 찼다. 일단 흥행 면에서는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비판에도 시내 한복판에 이 정도의 구경거리를 가진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다만 냉정히 따져보면 어정쩡하다. 서울시는 당초 서울역 고가도로라는 ‘차량 길’을 서울로 7017이라는 ‘사람 길’로 바꾼다고 알렸다. 하지만 완성된 길을 보면 보행 길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대략 1만㎡(길이 1,024m, 폭 10.3m)의 면적에 콘크리트 원형 화분만 645개다. 어떤 것은 지름 4.8m짜리도 있다. 식당 등 다른 시설들도 적지 않다. 세 명이 동시에 지나가기 좁은 지점도 있다.

서울시는 이 길을 ‘공중정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거꾸로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하다. 나무 몇그루 세웠다고 정원은 아니다. 일부에서 ‘거대한 아파트 베란다’라고 지적했는데 그럴듯한 표현이다.

‘정원이면서 길’을 동시에 추구한 목표는 너무 과했다.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을 듯하다. 단순히 길만 만든다고 했을 때는 생색이 나지 않는다. 기존의 차도를 인도로 바꾼다고 했으면 무려 600억원의 공사비를 조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 정원을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우리가 기대한 정원은 아니다. 자동차 매연과 미세먼지, 강렬한 햇볕은 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뿌리를 지면에 대지 못한 나무들이 축 늘어져 있다. 정원의 주인인 나무들은 개장한 지 겨우 사흘 만에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앞서 주말에는 더했다. 정원이나 공원이라는 명목 아래 갖가지 행사가 열렸는데 이는 보행에 지장을 주고 심각한 병목현상을 일으켰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도심의 열기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금 서울로 7017의 모습이 완성작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공중정원이라는 거창한 구호는 내세우지 않는 편이 좋겠다. 화분 같은 시설들은 좀 줄이자. 원래 목표였던 사람 길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도시 주인을 차량에서 사람으로 돌리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자는 얘기다. 공중정원을 찾아 차량이 몰리면서 길이 더 막히는 아이러니는 피해야겠다.

개장 사흘째지만 서울로 7017의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공사를 하고 있다. 다른 시설의 마무리도 깔끔하지 못하다. ‘정원’ 콘셉트를 강조하기 위해 날씨 좋은 5월로 개장 날짜를 무리하게 맞추려고 한 탓이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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