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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학교엔 아빠가 없다

김민형 사회부 차장





“오늘 큰애 운동회 어땠어?”(아빠)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넘어졌어. 그래도 울지 않고 끝까지 뛰더라고.”(엄마)

“첫 운동회인데 대견하네. 우리 딸 한번 안아줘야겠는걸.”(아빠)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우리나라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다. 아빠는 회사 일 때문에 아이가 첫 뒤집기를 하는 것도, 첫걸음을 떼는 것도, 첫말을 하는 것도 놓쳤다. 앞으로 또 아빠가 놓치게 될 아이와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최근 육아정책연구소가 만 7세 아동의 아빠 1,469명, 엄마 1,556명을 설문해 발표한 ‘한국 아동 성장발달 종단연구 2016’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교에는 아빠가 없다. 자녀의 운동회에 참여한 아빠는 10명 중 2명꼴도 안 되는 16.1%에 불과했다. 워낙 아빠들의 참석률이 저조하다 보니 일부 학교는 아빠들의 이어달리기 종목을 없애기도 했다. 비단 운동회뿐 아니다. 아이는 물론 부모에게도 감격적인 순간인 초등학교 입학식 역시 아빠의 참석률은 17%에 그쳤다. 학부모 공개수업(8.8%), 담임상담(5.0%), 학교운영위원회(1.4%)는 아예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아빠가 자녀의 학교생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회사 일 때문이다. 입학식이나 운동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런 이유로 휴가를 내려면 눈치가 보인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다녀오라’는 상사들도 간혹 있지만 항상 뒷말이 붙는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 답답한 점은 아빠들의 근무 환경에 수십 년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970년대의 아빠나 40년이 넘게 흐른 2017년의 아빠 모두 아이의 학교 행사 참석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일·가정 양립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8위로 최하위권인 우리나라가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은 유연근무제다. 유연근무제는 육아정책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남성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은 제도로 나타났다. ‘도움이 된다’와 ‘매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각각 48.3%와 31.0%였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유연근무제 도입을 꺼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유연근무제 도입률은 21.9%로 일본(52.8%), 미국(81.0%)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유연근무제 도입을 넘어서 새로운 제도로 진화시키고 있지만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실제로 일본 도요타는 지난해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제를 도입했고 독일 바이엘은 수시로 근로시간을 계획해 변경하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운영하고 있다.

‘칼퇴근법’ 도입 등 근로시간 단축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제도 시행의 주체인 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유연근무제를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로 인식하고 현실적인 도입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빠가 운동회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이어달리기를 하는 추억을 남겨줘야 할 때가 됐다. kmh20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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