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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리더는 설득당하는 사람이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49> CEO 리스크 피하는 방법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청년 한 명이 기분 좋게 숲속을 산책하고 있다. 갑자기 원주민들이 나무 뒤에서 툭 튀어나오더니 둘러싼다. 그러고는 1년간 자신들의 왕이 돼달라고 한다. 매년 그날 숲속에서 만난 첫 사람에게 제안을 한단다.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다음에는 무인도로 보내진단다. 무인도로 간 후에는 아무도 모른단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 청년이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정답은 그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다. 왕이 되고 난 뒤 사람들을 동원해 그 무인도를 사람이 살 수 있는 낙원으로 만들면 된다. 그런데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그런 사업을 벌이면 인부들은 제대로 따르지 않을 것이다. 다 같이 잘 살자는 명분을 내세워야 한다. 그래야 왕 자신도 살고 나라도 산다.



제왕적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대신 결과에 무한 책임을 진다. 그러다 보면 결말은 종종 비극일 수밖에 없다. 아스테카제국에서는 나라에 재앙이 닥치면 왕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조선 시대에 가뭄이 들면 왕이 죄인이 돼 하늘에 기우제를 지낸다. 스파르타에서는 전쟁을 선포할 권리가 왕에게만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왕은 항상 제일 앞장을 서야 한다. 살아 돌아온 적은 없다. 자비로운 독재자들은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로 뛴다. 그러나 국민에게 결국 ‘팽 당하고’ 만다. 100% 잘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지 지도자가 전권을 쥐고 있는 조직은 늘 불안 불안하다. 한 사람의 지혜에 조직의 모든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 중 가장 심각한 리스크는 역시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다.

죄수들이 동굴에 갇혀 있다. 온몸은 쇠사슬에 묶여 있고 등 뒤에는 횃불이 있다. 자신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동굴 벽면에 어른거리는 자신의 그림자밖에 없다. 죄수들은 그 그림자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한 죄수는 생각이 달랐다. 동굴 밖에 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탈출에 성공한다. 과연 그곳에는 눈부신 태양이 존재한다. 영원한 이데아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눈이 거의 멀 뻔한다. 그에게는 혼자 이 모든 것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이 있었지만 다시 동굴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동료에게 태양의 존재를 알리고 참세상의 비전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둠으로 들어오면서 동공이 축소돼 자신 한 몸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데 누가 설득되겠는가. 플라톤이 ‘국가’ 편에서 말하고 있는 유명한 동굴의 우화다.



동굴의 우화에서 돌아온 죄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가 바로 철인왕이다. 온갖 지혜를 다 갖고 있고 사심 없이 국가를 운영한다는 자비로운 독재자이다. 왕이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갈 수 없듯이 그 죄수도 동굴로 돌아온 것이다. 철인왕이 처한 암담한 상황은 바로 조직 리더들의 모습을 닮았다. 비전을 가져야 리더의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비전을 공유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설득당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이다. 리더는 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 실행방안은 그룹지니어스(집단 창조성)에 맡기는 것이 좋다. 자신의 결정 권한이 크면 클수록 밑으로 위임해야 한다. 리더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는 프로젝트가 종종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몹시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회의를 해보면 정말 재미없고 비생산적인 회의가 있다. 바로 결론이 이미 나 있는 회의다. 리더가 회의를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말한다. “이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우선 제 입장을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의는 이미 거기서 끝난 상태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 “이제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다들 좋은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누가 자신의 의견을 말할까. 바보나 아첨꾼 외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리더는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다. 설득당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듣는 사람이다. 리더가 죽어야 조직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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