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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찬 점령군' 아니라더니...국정위, 역대 인수위 전철 밟나

국정위 고압 논란

"일주일 내 보고서 제출·어두웠던 기억 발본색원"

"대통령 공약 베껴" "정책 표지갈이" 원색 표현도

"로드맵 짠다더니 인수위 역할" 부처들 불만 고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현판식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열리고 있다. 김진표 위원장(현판 왼쪽),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등 참석자들이 박수 치고 있다./연합뉴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2일 국정기획위 출범 당시 “완장 찬 점령군으로 비쳐서는 공직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기 어렵다”고 당부했다. 과거 정부 출범 당시마다 논란이 됐던 인수위원회의 고압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정부 부처와 협력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국정기획위 분과위원회 곳곳에서는 정부 부처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에 직접 연루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 당시 나온 “과거의 어두웠던 기억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눈치 보는 것도 하루이틀. 국정기획위 출범 이후 쌓여 있던 관료사회의 불만이 폭발했다. 29일 김 위원장이 “자기반성을 토대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의 공약을 베껴오거나 대체로 기존 정책의 길만 바꾸는 ‘표지 갈이’ 같은 모습이 많이 띈다”고 밝힌 것이 직격탄이 됐다.

경제부처의 A 국장은 “김 위원장의 발언 하나하나가 가슴에 꽂힌 비수가 됐다”며 “정부 부처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선배가 그런 발언을 하시는 것을 보고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행시 13회로 관료사회에 들어와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차관 등을 거쳐 교육부총리와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대선배다. 관료사회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위원장의 발언이라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얘기다.

현실적인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경제부처의 B 사무관은 “공약 내용을 그대로 보고하면 베꼈다고 하고 실효성이 부족할 것 같아 고쳐 내면 새 정부 철학을 이해 못했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보고를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부처의 C 국장은 “국정기획위와 이견이 있을 수도 있고 실무를 하는 부처가 보는 것을 못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설사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협의 과정에서 가다듬어가면 될 문제이지 저렇게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게 어떤 실익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사회부처의 한 관계자는 “업무보고 이후 보강 지시까지 내려와 짧은 기간에 대책을 마련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며 “실무 담당자들의 업무 공백이 우려되는데다 일선에서도 새 정부에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국정기획위의 입만 쳐다보고 있어 직원들이 붕 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물론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적인 국정과제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관료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국정기획위가 출범 일주일 만에 사실상 과거 인수위가 보였던 일방적인 점령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5년 국정과제를 설정하는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는 당초 설립 목표와 달리 과거 고압적인 태도로 문제가 됐던 인수위원회의 전례를 뒤따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공약을 선별하고 5년 동안 실현할 로드맵을 짠다고 하더니 사실상 인수위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중장기 플랜이 아닌 세부 공약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부처 간 혼선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같은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됐던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부 업무보고 내용 그대로 “전액을 국고로 부담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와 의견 조율 없이 발표가 이뤄져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누리과정 예산 1조9,000억원 가운데 정부가 부담하는 것은 45%인 8,600억원이다. 나머지 55%는 지방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고 있다. 이를 전액 정부 재정으로 부담하겠다고 일방통행식으로 발표한 것이다.

26일 오전에는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까지 자청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박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정부·노동계와 함께 경영계는 핵심 당사자”라면서 “정규직 전환이 경영계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은 기업 입장의 아주 편협한 발상”이라며 경총을 몰아세웠다. 김 위원장도 기자들과 만나 “재벌들이 가진 기득권을 절대 못 놓고 이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데도 그대로 간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안전처의 경우 보고서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이유로 업무보고가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업무보고를 위해 금융감독원 연수원을 찾은 공무원들은 회의실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국정기획위는 국정과제뿐만 아니라 역대 인수위처럼 인사 문제까지 영역을 넓힌 상태다. 김 위원장은 28일 기자회견에서 “고위공직자 인사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을 없애고 새 정부의 인사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운영할 인재를 적소에 기용하기 위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합당한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세종=김정곤·김상훈기자 정민정·임지훈·권경원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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