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맛집쓰리고]북경 오리의 참 맛을 찾아, '마오'





중식을 떠올릴 때면 ‘기발함’이라는 단어가 연상되고는 한다. 뜨끈한 고기 육수를 차갑게 굳혀 만두피 안에 넣을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오겹살을 푹 끓여서 익힌 후에 바삭하게 굽고, 간장에 달짝지근하게 졸이는 신기한 요리법은 절로 이마를 ‘탁’ 치게 만들고도 남는다. 이 기발함이 소룡포와 동파육을 만들어 냈다. 한 가지 재료에서 최상의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고려한 결과가 지금의 중식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이런 기발한 중국 요리에서 북경오리를 빼놓을 수 없다. ‘베이징 덕’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요리는 오리에 물엿을 발라 4~5일 바람에 말린 후 화덕에서 구워내는 번거로운 과정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기름이 쏙 빠지고 껍질은 바삭바삭, 속살은 촉촉한 최고의 오리가 탄생하는 과정이 된다.

직접 북경을 가지 않고도 한국에서 북경오리의 참맛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했다. 이태원 경리단의 ‘마오’다.

One go! 일단 씹고!

‘마오’는 경리단인 듯 경리단 아닌 묘한 위치에 있다. 경리단의 끄트머리에 있어 오히려 남산 순환도로와 더 가깝다. 대체로 ‘경리단 마오’로 불리기 때문에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내리게 되면 높은 경사에 뜻밖의 등산을 해야 한다. 요즈음 경리단은 옛날의 조용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수많은 인파가 당신을 반길 것이다.

‘마오’의 위치.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경리단의 특성상 녹사평·이태원·한강진역 어느 곳에서도 가깝지 않다. /자료=네이버


요즈음 경리단길의 모습. 관광 명소로 각광받은 이후 인파가 많아졌다. 예전처럼 여유를 즐기기는 힘들다. /사진=구글


커플도 많다. ‘아...... 이 인파를 해치고 어떻게 올라가지?’


인파를 해치고 올라오다 보면 사람이 조금씩 줄어든다. 이곳이 ‘마오’다. 경사가 인상깊다.


등산 애호가가 아니라면 돌아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하얏트호텔에서 내려오면 훨씬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는데다, 다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지 남산순환도로에서 경리단길로 내려오는 길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세종문화회관에서 402번을 타면 하얏트호텔까지 수월하게 올 수 있다.

남산순환도로에서는 이런 야경도 볼 수 있다. 숨겨진 데이트코스 중 한 곳이다.


Two go! 화끈하게 빨고!

1864년 출발한 베이징의 북경 오리 전문점 ‘전취덕’의 북경 오리 만드는 법을 요리 평론가 가쓰미 요이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날개를 잘라낸 오리 배에 3㎝쯤 되는 칼집을 넣고 그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어 내장을 끄집어내는 데서부터 전취덕에 대대로 전해오는 맛의 비결이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배 속을 씻어낸 뒤 공기를 불어넣어 부풀린 배에다 물을 넣고, 굵은 수숫대를 뚜껑 삼아 구멍을 막는다. 물엿과 오리 기름을 섞은 액체를 오리의 온몸에 바르고 전취덕이 고안한 벽돌과 흙으로 만든 화덕 안에 매달아 대추나무나 버드나무 같은 향이 있는 나무를 때어 고열로 굽는다. 문화혁명 때까지 왕푸징에 있던 가게에서는 거의 벌거벗은 직원이 화덕 당번을 하고는 했다.”

북경오리 전문점의 맛을 평가하려면 먼저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고 했다. 조리법이 많이 현대화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기본을 지키는 가게라면 주방에 불에 구운 오리가 걸려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오는 손님이 주방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주방에 걸려있는 오리가 자부심을 표현하는 듯하다.

오리가 이렇게 걸려있다. 반질반질 윤이 난다.


북경오리는 먹는 방법도 정해져 있다. 먼저는 오리 껍질을 먹는다. 불에 구우면서 기름이 거의 빠졌기 때문에 오리 껍질은 과자처럼 바삭한 맛이 난다. 특히 오리 가슴 껍질이 가장 바삭해 따로 내준다. 다음은 껍질과 함께 썬 살을 오이·파와 곁들여 밀전병에 싸 먹는다. 보통 베이징에서는 살을 다져서 야채와 함께 볶아 양상추에 싸 먹고 다음에는 뼈를 우리는 탕을 즐기지만 마오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준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있어 북경 오리 맛을 보기에 좋다.

북경오리. 물엿을 발라 반짝반짝하다.


반드시 처음에는 껍질부터 먹자. 바삭바삭하면서 단 맛이 풍부해 과자 먹는 느낌이 난다.


껍질은 바삭하지만 속살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함께 내준 오리 허벅지살에 육즙이 흐른다.


살코기는 밀전병에 싸서


이렇게 굴소스에 찍어 먹는다.


마오의 밀전병은 만두피처럼 모양이 고르지 않고 삐뚤빼뚤하다. 모두 수작업했기 때문이다. 밀가루의 품질이 좋은지 쫄깃쫄깃한데다 살짝만 구워 촉촉하고 뒷맛에는 녹말에서 나는 단맛이 난다. 밀전병만 주워 먹어도 될 정도로 맛있다.

쫄깃함이 눈에 보이도록 노력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오리 다리를 들고 뜯으면 되겠다. 우가우가.


보통 북경 오리 전문점에서는 북경 오리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시키게 되는데, 마오는 유명한 중국 음식은 대부분 갖추고 있어 고르는 즐거움이 있다. 비결은 중국인 요리사를 직접 채용하는 주인장의 고집 때문이다. 다양한 중국 음식을 갖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먹는 듯한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8년을 이어온 가게는 이유가 있구나 싶다.

책이 아니라 메뉴판이다.


이런 호기로움은 접어놓는 게 좋겠다.


곁들임 요리로는 ‘경장육사’를 시켰다. 얇게 채친 돼지고기를 춘장에 볶은 요리로 고기와 춘장에서 나는 단맛과 짠맛이 적절히 섞인 요리다. 보통 건두부나 밀전병 등과 싸 먹는데 마오에서는 꽃빵을 내줬다.


조신하게 뜯어서 말아 먹으면 맛있다.


정신을 차렸더니 벌써 다 먹어버렸다......


Three go! ‘문화’를 맛보고!

중국 음식의 다채로움과 기발함은 5,000년 역사에서 나왔다. 공자는 음식에 조예가 깊어 재료끼리의 색의 조화와 궁합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도교가 성행했던 후한 시대에는 무병장수를 위한 채식이 유행했다. 외국과의 교류가 왕성했던 명나라 때는 외국의 식재료들이 중국의 것과 섞이면서 이색적인 요리로 거듭났다. 청나라 때는 만주족과 한족의 조리법이 결합했다. 우리가 ‘만한전석’이라고 부르는 호화로운 만찬은 이 때 탄생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의 중국 식문화가 급격히 파괴된 10년의 세월이 있다. 1966~1976년 문화혁명 때다. 본디 이름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다.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은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권력 상실의 불안감을 느끼자 반대 세력 숙청을 위해 를 극좌 세력의 발호를 부추겼다. 그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라면 대량 숙청을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며 청년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모인 청년 노동자·대학생들이 바로 홍위병이다. 이 홍위병들은 ‘공산주의 이념과 맞지 않는 것은 파괴하라’, ‘전통문화는 부르주아적인 것이다’ 같은 구호를 외치며 중국의 전통유산을 파괴했다. 고대부터 내려온 건물, 공예, 서적 등의 역사·문화 유적들이 순식간에 황폐화됐다.

식문화도 홍위병들의 습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서 부유한 사람들의 음식 같았을까. 북경 오리는 홍위병들의 첫 공격대상이 됐다. 문화혁명 초기인 1966년 8월 19일 홍위병 800명이 “노동 인민 착취의 상징”, “자본가의 아성”이라고 외치며 북경오리 전문점인 ‘전취덕’에 돌진했다. 홍위병들은 간판을 끌어내리고 ‘자본화의 착취 현장’, ‘구세계의 상징’ 같은 죄목을 가게 한복판에 붙였다. 홍위병들의 공격을 당한 곳은 전취덕 외에도 많았다. 조금 값있는 음식을 먹으려 하면 홍위병들이 몰려들어 “부르주아적”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자연스레 손님들은 줄었고 베이징의 유명 음식점은 홍위병들의 무료급식소가 됐다. 식문화가 보존될 리 없었다.

요리 평론가 가쓰미 요이치는 “전취덕이 맛있었던 것은 1979년이 마지막”이라고 평가했다. 문화혁명을 거치며 북경오리도 제 맛을 잃어버린 셈이다. 전취덕은 문화혁명이 끝난 후 현대화를 거치면서 맛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중국 음식이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생각하면 5,000년 유산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문화혁명이라는 ‘단절’이 없었다면 북경 오리의 참 맛이 보존돼 있지는 않았을까. 중국 음식에는 문화혁명 10년의 상처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가격: 북경 오리 소(小) 3만5,000원 대(大) 6만2,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