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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왕 존재 이유 '민생안정'으로 보고

자연재해 극복에 열의 보인 세종

심각한 가뭄에 타들어가는 농심

대비책 논의해 피해 최소화해야





가뭄이 전국적으로 심각하다. 저수지의 물이 줄어들고 경작한 작물이 가뭄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도시에 살다 보면 가뭄의 실상을 피부로 느끼기가 쉽지 않다. 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생활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 채소와 과일의 작황이 좋지 않아 물가가 오르게 되면 비로소 가뭄의 피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가뭄이 심각하자 4대강이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수자원의 합리적 조절을 이유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막대한 예산을 4대강 사업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가뭄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가뭄이 진행되고 있고 피해가 앞으로 다가오겠지만 이상하리만큼 가뭄을 우려하고 대책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그다지 높지 않다.

조선 시대 세종은 즉위 초부터 가뭄과 수재로 고초를 겪었다. 즉위한 뒤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해마다 가뭄이 일어나 칠년대한(七年大旱)으로 불릴 정도였다. 특히 강원 영서 지역의 피해가 막심해 인구 호수와 농지 결수가 급감했다. 인구 호수는 9,509호에서 3분의1에 가까운 2,567호가 사라졌다.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유리걸식의 길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종은 자신 위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있어 원래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 그는 부왕의 막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이십 대 초반 왕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장기적인 가뭄은 세종의 집권 초기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었다. 가뭄은 단순히 기상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정치적 분란을 초래할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가뭄을 해결하려는 세종의 노력은 눈물겹다고 할 정도로 ‘세종실록’ 여러 곳에 나타난다. 세종3년(1421) 5월7일 가뭄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이유로 경복궁 경회루 동쪽에 주춧돌도 쓰지 않고 억새풀로 엮은 두 칸의 별실을 둬 기거했다. 세종7년(1425) 7월7일 가뭄이 지속되자 “20년 이래로 이와 같은 한재(旱災)를 보지 못했다”며 정전이 아니라 측실에 거처하며 자연재해를 그치게 할 길(미재지도·미災之道)을 찾겠다고 제안했다. 대신들이 경호와 생활의 불편을 이유로 만류하자 세종은 거처를 옮기려는 시도를 접었다. 세종7년 7월28일 세종은 가뭄을 걱정하며 열흘 가까이 앉은 자세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오늘날 같으면 세종이 거처를 옮기겠다는 제안이나 잠을 자지 않는 태도는 백성들의 관심을 사려는 포퓰리즘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요즘 도시에 살면 농토가 쩍쩍 갈라지는 현실에 둔감해지는 것처럼 왕이 서늘한 공간에서 편하게 생활하면 가뭄으로 인한 고통을 실감할 수가 없다. 가뭄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거처를 옮겨 불편을 직접 느낀다면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고 그 고통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날을 세울 수가 있다. 즉 말만으로 자연재해의 대책을 내보라고 다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굳은 의지를 스스로 입증할 수 있다. 세종은 왜 이토록 가뭄과 수재를 비롯한 자연재해 문제에 열의를 보였을까. 단순히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집권 초기에만 열의가 나타나고 중후반에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30년 넘는 재위 기간 내내 ‘미재지도’에 열의를 보인 점을 보면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세종26년(1444) 7월25일에 내린 하교를 보면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국이민위본·國以民爲本,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는 말로 시작된다. 물론 이 말을 세종이 처음으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종은 그 말의 무게를 재위 기간 내내 뼈저리게 실감한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이 왕의 자리에 있는 존재 이유를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나라의 근본을 단단히 하는 데서 찾은 것이다.



도시 시민들이 치솟는 물가에 불만을 터뜨리면 농산물의 수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서두를 것이 아니라 먼저 타 들어가는 농작물을 보며 막막해하는 농부들의 마음을 걱정해야 한다. 자연재해는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지만 대비하고 노력하는 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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