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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실험대상인가 전위대인가] '경영평가' 두달 남기고 기준변경...정부 전횡에 공기업 속앓이만

박근혜정부 2013년 평가지표

방만경영 해소 중심 돌연 수정

A등급 2곳으로 8분의1토막

文정부도 고용확대 가점 추진

성과연봉제 사실상 '없던일로'

정치적·주먹구구식 진행으로

인사관리 수정 등 경영비용 '쑥'





정부가 공공기관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경영평가’다. 매년 최고 S등급에서 최하 E등급까지 평가하며 좋은 점수를 받으면 기본급의 최대 150%에 달하는 성과급 잔치를 하는 반면 최악의 경우 기관장이 해임될 수 있다.

정부는 매년 말 이듬해 경영평가 배점표 등을 조정해 공공기관을 입맛에 맞게 움직인다. 문제는 경영평가 기준이 정권이 바뀜에 따라 180도 전환되거나 평가 기간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무리하게 수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채점자’의 전횡에 공공기관들은 대놓고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경영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평가지표 수정이 단적인 예다. 그해 11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지표를 수정한다. 핵심은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해소’. 이명박 정부 때는 부채가 늘어나는 것보다 4대강 등 정권 역점사업 실행력이 주요 평가 대상이었지만 정부가 바뀌자 평가 항목도 뒤집어졌다. 특히 2013년이 채 두 달이 남지 않았지만 새로운 평가 잣대를 제시해 논란이 일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시험을 코앞에 두고 시험 범위를 변경하는 것과 같은 처사였다”고 꼬집었다. 갑작스럽게 공공기관 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평가 등급은 급락했다. 2012년 평가에서 A등급이 16곳이었지만 2013년 2곳으로 8분의1 토막 났다. C등급은 39곳에서 46곳, D는 9곳에서 19곳, E는 7곳에서 11곳으로 늘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정권 구미에 맞게 정치적·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울산항만공사는 2014년 6월 발표된 2013년 경영평가에서 최하인 E등급을 받았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안전관리 기관의 점검을 강화한 결과 선박안전검사가 미흡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경영평가 대상 기간은 세월호 참사 이전인 2013년이었다. 당초 확정된 2013년 경영평가 기준도 화물을 내리는 하역 안전, 항만 건설현장 안전 등으로 세월호 참사 원인과 거리가 있었다. 경영평가 기준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 울산항만공사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비슷한 이유로 선박안전기술공단도 E등급을 받아 1년 만에 A등급에서 급전직하했다.



무리하게 추진되는 공공기관 경영정책은 얼마 가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부 때 강조한 고졸 인력 채용이 대표적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공공기관 332곳과 부설기관 23곳 등 총 355곳 가운데 215곳(60.6%)은 지난해 정규직 신규 채용 인력 중 고졸 인력이 한 명도 없었다. 공공기관 전체 정규직 채용 인원 중 고졸 인력 비중은 2012년 12.2%에서 지난해 9.3%로 하락세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청년인턴제도 마찬가지. 내실 있게 운영하려고 했지만 2015년 기준 청년인턴을 뽑은 공공기관 243곳 중 152개(62.0%)는 단 한 명의 인턴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수 인력 지원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굳이 청년인턴과 고졸을 채용할 이유가 없다”며 “현 채용 시장의 문제점도 많지만 이를 외면한 채 책상머리에서 만든 정책으로는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뀐 첫해인 올해도 혼란은 극심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재부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고용을 늘리는 공공기관에 가점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올해 경영평가 기준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가 절반이나 지난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평가 기준이 바뀌어 공공기관은 채용·인사관리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폐지한 것에 따른 후폭풍도 막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금융공기업들은 1년여 만에 이사회를 열어 이를 번복해야 할 처지가 됐다. 지난해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산업은행·기업은행 등 7개 금융공기업이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금융공기업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사회를 다시 열고 기존 호봉제로 돌아가든지 새로운 형태의 급여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며 “이사 구성원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인사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우스운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세종=이태규·김영필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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