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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찬 혁신 행보로 글로벌 시장 장악, IoT 시대 미래기술 패러다임도 이끈다

FORTUNE FEATURE|한국 TV 수출 40년 역사를 통해 본 세계 1등의 비결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기술 경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기업들이 피해갈 수 없는 일종의 ‘전쟁’이다. 기술 경쟁에서 진다는 건 곧 기업 전체의 도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산업군 가운데 기술 경쟁이 거센 분야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가 IT와 가전시장이다. 무엇보다 IT와 가전은 융합이 가능한 시장이다. 사물인터넷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IT 기술이 탑재된 가전제품이 주요 글로벌 박람회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기술 경쟁,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한 시장 점유율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수 년 째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있다. 바로 TV다. 대한민국 TV는 자타공인 글로벌 1등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경쟁업체의 추격전이 거세지고 있지만 기술격차는 여전하다는 것이 대다수 업계 전문가들의 견해다.

2017년은 대한민국 기술력으로 만든 컬러 TV의 수출이 본격화 된 지 꼭 40년이 되는 해다. 자체 기술력 부재로 한때 부품 전량을 수입했던 대한민국 TV 기술력은 이제 전 세계 TV 기술 트렌드를 이끄는 수준으로 성장해있다.

포춘코리아는 지난 40여 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대한민국 TV의 역사를 살펴보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세도 짚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TV가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글로벌 1등을 지켜낼 수 있을지도 함께 살펴본다.


한국 TV는 해외 수출 40년만에 글로벌 TV시장의 패러다임을 이끄는 TV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국내 업체들은 경쟁사들에게 단 한번의 추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기술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글로벌 TV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미국, 유럽의 주요 제조업체들이 매년 신제품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애플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 전문 회사들도 모바일 시장에 서의 강점과 ‘스마트’ 기능을 앞세워 TV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로벌 TV시장을 이끌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가별 글로벌 TV시장 점유율 1위는 32.2%를 차지한 한국이었다. 그 뒤를 중국(31.9%)과 일본(14.1%), 미국(3.7%), 유럽·대만(각각 2.0%)이 잇고 있다. 2위인 중국과의 격차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1위 자리는 수성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대다수 조사기관에서 내놓는 순위의 기준이 출하량이라는 점이다. 현재 글로벌 TV시장에서 투톱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는 지난 몇 년간 이른바 ‘프리미엄 전략’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해왔다. 중국이 격차를 좁히며 맹추격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중국 업체 대다수는 중저가 TV를 기반으로 물량공세에 집중하고 있다. 출하량 기준이 아닌 매출액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업계 관계자들은 이른바 ‘TV굴기’로 우리 나라를 맹추격하고 있는 중국을 의식해 무리한 전략을 펼칠 필요까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점유율이라는 숫자에는 허상이 많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성종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분명한 사실은 중국과 한국 제품 간에 현격한 기술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미 CES, MWC 같은 글로벌 박람회 현장에서도 증명된 사실이죠.

중국 업체의 점유율에는 거품이 껴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2~3년 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TV 제품군 중 하나가 네트워크에 연결해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TV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TV 시장 국가별 점유율 1위가 어디였는지 아세요? 우리나라를 예상하시겠지만 놀랍게도 중국이었습니다. 처음 이 조사를 접했을 때 다소 당황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거대 내수시장을 고려하면 가당치 않은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중국 시장을 제외한 채 점유율을 조사했더니 한국이 60% 이상의 점유율을 보였습니다. 내수시장을 제외하니까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10% 수준으로 뚝 떨어졌고요.”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들의 성장세를 결

코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중국 뿐만 아니라 과거 글로벌 TV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던 일본 업체들도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실제 소니, 샤프, 파나소닉 같은 일본 TV업체들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다양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현격한 기술 격차를 기반으로, 추격은 허용해도 추월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TV 기술력은 어떻게 지금의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일까? 불과 40여 년 만에 확고한 전 세계 1위에 오른 대한민국 TV 기술의 역사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지난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IFA’에서 삼성전자가 선보인 55인치 UHD OLED TV.





■ 기술 후진국에서 ‘TV 수출국’이 되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TV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때는 1954년이었다. 당시 미국 RCA사가 한국 TV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 종로 보신각 앞 RCA 대리점에서 20인치 제품을 공개했다.

이후 TV시장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다수 물량은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자체 생산을 하기엔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 TV방송이 시작된 1960년대를 기점으로 TV의 국산화 필요성이 조금씩 대두 되기 시작했다. 자체 개발에 대한 니즈도 분명했지만,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 심리가 국산화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였다고 알려져있다.

정부는 당시 국내 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생산하며 기술력을 뽐내고 있던 금성사(현 LG전자)에 TV 생산을 의뢰했다. 하지만 TV 생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라디오와 TV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제품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TV를 만드는 건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금성사는 사내 기술팀을 일본 히타치로 파견해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금성사가 TV 개발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1966년 8월, 대한민국 최초의 자체 생산 TV인 ‘VD-191’을 공개했다. 여기서 V는 진공관(Vacuum), D는 TV 디자인인 ‘데스크 타입(Desk Type)’을 의미했다. 191의 19는 ‘19인치’, 1은 첫 번째 생산 TV라는 의미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TV인 금성사(현 LG전자)의 VD-191(왼쪽)과 이를 모티브로 삼아 2013년 출시한 LG 클래식 TV(오른쪽).



‘VD-191’은 대한민국 TV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정수영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TV는 기존 히타치 제품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기술 뿐 아니라 디자인도 그랬죠. 그럼에도 ‘VD-191’에는 국내 기술진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었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부품이죠. 처음 외국에서 기술을 들여와 자체 개발에 돌입하는 경우, 대부분은 현지 부품을 그대로 가져와 조립하는 수준에 그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VD-191’의 경우는 달랐어요. 제작에 사용된 부품의 절반 이상이 국내에서 생산됐거든요. 하루 속히 국산화를 이뤄내겠다는 집념의 결과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이 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TV 강국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VD-191’는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VD-191’의 판매가격은 6만 8,000원이었다. ‘VD-191’가 출시된 1960년대 중후반 쌀 한 가마니 가격이 2,500원, 직장인 월 평균 소득이 약 1만 2,000원 정도였는 점을 고려하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5개월을 모아야 TV 한 대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VD-191’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기 인원이 많아 은행창구에서 추첨을 통해 구매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심지어 두 대 이상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나오자, 집에 TV가 없음을 증명해야 구매할 수 있는 ‘TV 무소유 우선공급제’가 실시되기도 했다.

지금의 관점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됐던 셈이다. 그만큼 ‘VD-191’, 더 나아가 TV라는 낯선 제품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VD-191’ 출시를 기점으로 TV 시장이 생기기 시작하자 다른 기업들도 발 빠르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대표적인 곳이 삼성전자였다. 삼성은 TV 개발을 위해 1969년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을 설립했다. 전자제품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한 첫 번째 아이템으로 TV를 선택했다.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공업 출범과 동시에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계열사도 함께 출범시켰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수영 연구원은 말한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원래부터 전자사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금성사의 성공을 보곤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거였죠. 그는 삼성전자가 단순히 TV만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일본 회사들처럼 종합 전자회사로 성장하길 갈망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부품의 수직계열화를 정착해 완제품 생산 속도 향상과 가격 절감을 이뤄내야 한다고 봤죠. 지금의 삼성전자가 창업 50년도 채 안 돼 엄청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수직계열화라는 시스템에 있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당시 금성사)는 TV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 제품 기술력도 꾸준히 상승했다. 두께는 더욱 얇아졌고, 화질은 더욱 선명해졌다. 디자인도 유명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듯 세련미를 더해 갔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능도 탑재되기 시작했다.

그 후의 상황은 더 드라마틱했다. 한국 TV 제조업체가 2000년대 중반 무렵 전 세계 TV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업체들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전자업계 관계자 A 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TV가 처음 상용화된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40여 년 동안 TV의 진일보를 이끈 곳은 바로 일본 기업들이었습니다. CRT 브라운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배터리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포터블TV도 일본에서 처음 개발됐죠. 특히 소니(Sony)는 고화질 영상을 구현한 트리니트론(Trinitron)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1973년 미국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TV 영상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공로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었습니다. 소니를 포함한 일본기업은 이후 약 30여 년 동안 글로벌 TV시장에서 거대한 왕국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한국기업들에 추격을 허용했으니까 말이죠.” A 씨의 말처럼 한국 TV 업체는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일본기업을 넘어 전세계 TV시장을 주름잡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국내 기업들은 ‘디자인’을 TV 선택의 새로운 기준으로 끌어들였다. (위) LG전자 디자인센터를 방문해 TV 제품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아래) 와인잔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삼성전자의 디지털TV ‘보르도’.





■ 한국산 TV가 최고가 된 세 가지 비결

한국산 TV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부단한 기술개발 노력과 투자,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업계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냈다. 물론 경쟁사들이 시대적·기술적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스스로 도태된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한국 TV의 성공 비결은 크게 ▲디지털 시대의 선점 ▲게임 체인저로의 성공적 변신 ▲선구자적 시장 진출,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디지털 시대의 선점은 한국과 일본의 점유율이 골든 크로스를 이루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 1990년대 말 무렵, TV 시장에선 ‘디지털’과 ‘평판화’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당시 전 세계 방송국에선 영상 송출 방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디지털 방식은 최대 5배 이상 뛰어난 고화질 영상과 보다 더 깨끗한 음성을 송출할 수 있었다. 아날로그 형태의 신호에서 불필요한 잡음과 정보를 제거한 후 압축과 전송을 하기 때문이었다. TV 업계에서도 자연스럽게 디지털 고화질 영상을 수신할 디지털TV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동시에 디스플레이 방식의 변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었다. 기존 브라운관 형태의 디스플레이에서 영상 왜곡을 줄이고 고화질 구현을 할 수 있는 평면 디스플레이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은 흐름의 변화에 따른 신기술 개발을 주저했다. 이는 일본의 기업문화와 연계해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니, 파나소닉 등 주요 일본 가전업체들이 내세우는 최우선 가치 중 하나는 ‘무결성(Integrity)’이었다. 경쟁업체가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의 기술적 성숙과 시스템을 기반으로 100% 완벽한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디지털 시대에는 맞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다수 경쟁사들이 ‘선(先) 실행 후(後) 보완’을 외치며 시장 선점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일본 업체는 ‘무결성’이라는 가치에 스스로의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욕심이 결국 일본 업체를 한순간에 도태시킨 셈이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디지털 원천기술 확보할 수 있었다. 차진영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기업들은 저마다 일종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1등을 차지했던 힘이 바로 거기에서 나왔죠. 하지만 문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기술이 최고라고 믿고 너무 우쭐댔죠. 그러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매우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LG전자의 경우, 디지털 방송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던 시점인 1995년, 디지털TV 지상파전송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제니스(Zenith)를 인수했어요. 삼성전자는 1997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TV ‘보르도’를 출시하며 글로벌 디지털TV 1위 신화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보르도 개발 전후로 1,500여 개 이상의 디지털 TV 관련 특허를 출원해 경쟁업체보다 월등한 기술력도 확보했습니다.”

그렇게 디지털TV 시대 개막과 함께 시장을 선점한 한국 기업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창조하는 일종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목한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대화면’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개막은 HD급 고화질 영상 시대도 함께 불러왔다. 디지털TV 분야에서 고전하던 일본 업체들은 수 십 년 동안 쌓아온 기술적 노하우를 기반으로 ‘화질 경쟁’을 촉발시켰다. 굳이 디지털TV가 아니더라도 고품질의 영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들은 자체 개발한 고화질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며 시장 패러다임 변화와 주도권 탈환에 사활을 걸었다.

그 때 한국 기업들은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고화질 경쟁에 대응하는 대신, ‘대화면 경쟁’ 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적중했다. TV 고객층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경쟁기업과의 차별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 B 씨는 말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장 큰 강점이 뭔지 아세요? 다양한 요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수직계열화의 정착이었습니다. 그룹 내 계열사에서 TV의 핵심부품 대다수를 수급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어요. 그룹 차원의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도 대화면 제품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죠. 그 결과 2005년 무렵부터 40인치 이상의 LCD TV를 선보이며 TV 업계의 또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엔 합리적인 가격 산정도 중요한 몫을 했죠. ‘대화면 TV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또 하나의 부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화질과 크기라는 기존 키워드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을 TV 선택 기준의 하나로 끌어들였다. TV 시장이 열린 이후, 기술의 진일보는 꾸준히 이뤄져왔다. 하지만 디자인은 언제나 비슷했다. 색상은 대부분 무광의 짙은 블랙 톤이었고, 모양은 사각 박스 형태로 일관되어 있었다. 새로운 TV 개발 과정에서 디자인적 요소가 후 순위로 밀려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바로 이 디자인 요소에 주목했다. 모든 가정 거실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TV라는 점에 착안,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심미안적 요소를 담아내면 남성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민감한 주부, 여성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곧바로 제품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와인 잔 형태에 착안한 삼성전자 보르도TV의 디자인을 시작으로, 재질·색감을 다양화하고 곡선 미를 살린 제품이 잇달아 출시됐다. 특히 각 업체의 디자인팀은 무분별한 모방을 막기 위해 독자적인 이중사출(두 가지 재질이나 색상의 플라스틱을 맞대어 성형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색감과 디자인 외관을 만들 수 있다) 방식을 활용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국내 TV 제조사들은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북미, 유럽 처럼 이미 입증된 시장만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한 일본 기업들과는 달리, 국내 기업들은 신흥 시장 진출에도 역점을 두었다.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당시만 해도 성공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던 시장에 꾸준히 도전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TV의 점유율이 이들 시장에서 50~60%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이들 시장은 모든 기업들의 타깃인 만큼 차별화한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며 “국내 업체들의 성공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 외에도 프리미엄 시장 같은 새로운 소비층을 적절히 공략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선보인 세계 최초의 ‘곡면’ 울트라(UHD) OLED TV


CES 2017에 참석한 중국 업체들은 프리미엄급 TV를 다수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행사장 내부에 마련된 중국 기업 ‘콘카’의 부스.





■ 혁신과 융합으로 선두를 수성한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글로벌 가전 박람회(CES 2017)’에선 많은 중국 기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TCL, 하이센스, 하이얼, 콩카 등 중국 업체 부스에 전시된 프리미엄급 TV가 관람객 뿐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부스를 돌아본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아직 멀었다’였다. 분명 화질 개선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하지만 디자인, 외관 마감성, 화질 무결점성 등 좀 더 세밀한 잣대를 들이대면 격차는 여전했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업계의 한 전문가는 “상당 부분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 일본의 디자인을 카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격차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엄청난 시장 규모, 소위 ‘TV굴기’가 가져다줄 막대한 투자가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여줄 게 분명하다. 게다가 절치부심하고 있는 일본 업체들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니, 파나소닉 같은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이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지만, 그들에겐 분명 저력이 있다. 소니는 올해 CES에서 자사 최초의 OLED TV ‘소니 브라비아 OLED TV’를 공개한 바 있다.

생산 물량이나 점유율 측면에서 당장의 반등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프리미엄급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는 사실은 눈길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 TV가 경쟁제품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독보적인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화질과 점유율 경쟁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미래기술 개발’과 ‘융합’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올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화질 끝판왕’을 가리는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자체 디스플레이 기술 ‘퀀텀닷’을 기반으로 초프리미엄급 제품 ‘QLED TV’을 공개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QLED TV로 더 이상의 화질 경쟁은 무의미해 질 것”이라며 “이번 제품을 통해 화질 전쟁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LG전자도 나노셀 기술을 적용해 액정표시장치(LCD) 중 가장 슈퍼울트라HD급 화질을 선보이는 나노셀TV를 선보였다. LG전자 측은 “QLED는 OLED가 아닌 LCD와 경쟁해야 하는 기술”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현존하는 LCD 중 최고의 성능을 구현한 기술은 나노셀”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래 TV 시장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는 화질이 아닌, ‘스마트’로 대변되는 미래 기술 확보와 이종 기술과의 융합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일종의 ‘스마트홈’ 시스템의 허브로 TV를 지목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스마트홈의 필수 플랫폼인 스마트폰 시장에서 양사 모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스마트폰과 TV 같은 하드웨어 시장에서 각각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수영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마 수년 내에 TV 광고 문구가 바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제품은 최고의 화질을 자랑한다’가 아니라 ‘우리 제품을 구매하면 최고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것으로요. 물론 시대가 바뀌고 트렌드가 변한다고 해서 화질과 디자인이 TV 선택 요소에서 배제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일정 시점이 되면 기술경쟁력은 상향 평준화되고, 디자인 차별화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디지털 전환기에 기회를 찾아 반전에 성공했던 국내 기업들이 최근 진행된 스마트 전환기에도 유연하게 잘 대처를 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역할을 지속한다면,지금의 입지는 굳건히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바로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입지다. 북미에서 2,500달러(한화 약 280만 원) 이상으로 판매되는 프리미엄 TV 시장은 주요 업체들이 잔뜩 눈독을 들이는 곳이다. 이 시장에서도 국내 업체들의 강세는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지난해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수량 기준) 1위는 LG전자(43.1%)였다. 그 뒤를 일본 소니(25.2%)와 삼성전자(20.3%)가 이었다. 다만 점유율 산정 기준을 수량이 아닌 60인치 이상 대형 TV로 바꿀 경우, 삼성전자가 점유율 35.2%를 기록해 전년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프리미엄 시장은 전체 TV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프리미엄 시장의 부진은 곧 가격 조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하위 제품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아직 경쟁사들보다 월등하게 우월한 혁신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 선두 수성을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판매 수량 기준 2위를 탈환한 소니를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 TV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지 40년이 흐른 지금, 부동의 1위에 올라 있다. 압도적인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은 TV 시장, 나아가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렇다면 한국 TV는 앞으로도 시장을 이끄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의 상황만 놓고 보면, 긍정적인 미래를 예상해도 억측은 아닐듯하다.



◇ 흑백에서 컬러로 진화한 초기 TV의 역사
전화기 아이디어가 등장한 시기는 대략 1,800년 대 중반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과학자들이 목소리가 아닌 ‘영상’ 전송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때도 그 무렵이었다.

영상이 아닌 일종의 그림을 전파형태로 전송해 노출하는 기술은 당시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영상은 조금 달랐다. 이론적으론 정립돼 있었지만, 이를 현실로 옮기기에는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최초의 TV가 등장한 곳은 영국이었다. 1925년 영국인 기술자 존 로지 베어드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최초의 텔레비전 영상 투사에 성공했다. 그는 이듬해인 1926년 1월 런던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공개 시연을 가졌다. 이후 몇몇 기업들이 TV 완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화면 속에 나오는 영상에 열광했고, 그 후 드라마, 각종 쇼프로그램 등 TV를 통해 방영할 수 있는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당시만 해도 영상 콘텐츠가 모두 흑과 백으로만 구성돼 있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TV의 진화를 위해선 총 천연색 모두를 구현할 수 있는 TV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1950년 미국 RCA사가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해 컬러 브라운관 TV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67년간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의 최첨단 ‘컬러TV’ 시대에 이르렀다(레드, 옐로우, 화이트 3종으로 구성된 TV 외부입력 장치 연결 커넥터의 명칭은 RCA잭이다. 개발사 RCA에서 따온 이름이다).


◇ 화질 전쟁의 중심 ‘디스플레이’ 변천사
TV의 상용화를 촉발시킨 최초의 디스플레이는 CRT(Cathode-Ray Tube) 였다. 영상을 빛으로 바꾼 작은 광원을 레드, 그린, 블루의 ‘RGB’ 삼원색으로 나눠 스크린에 분사해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높은 신뢰성과 빠른 응답속도, 넓은 시야각과 저렴한 비용으로 TV 상용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두꺼운 디스플레이와 이에 따른 부피 증가, 전자파 과다 발생 같은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평판(平板) 디스플레이다.

평판 디스플레이 시대 개막 후 처음 주목을 받은 디스플레이는 LCD(Liquid Crystal Display)와 PDP(Plasma Display Panel)였다. LCD는 액체와 고체의 중간물질인 액정을 2개의 얇은 유리판 사이에 주입하고 투과율을 조정해 영상이나 숫자를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CRT에 비해 많이 가볍고 얇을 뿐만 아니라 소비전력이 적어 디지털TV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디스플레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PDP도 LCD와 유사한 작동 원리를 갖고 있다. PDP는 ‘벽걸이 TV’의 등장과 맞물려 큰 주목을 받았지만, LCD 기술이 한 발 더 앞서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LCD로 고착화 되던 디스플레이 기술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탄생한 것이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다. OLED의 가장 큰 장점은 별도의 광원이나 백라이트 없이도 패널에서 ‘자체 발광’을 한다는 것이다. 픽셀이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세밀한 색감 표현이 가능하며, 시야각의 제한이 없어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동일한 색상과 밝기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출시되는 프리미엄 TV의 대다수는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TV 등 대형패널)와 삼성디스플레이(스마트폰 등 중소형 패널)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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