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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추모의 벽...호소의 벽...위안부의 아픔·희망을 담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평화를 기원하는 이 건물은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해 건립됐다./송은석기자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내부의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호소의 벽)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송은석기자




“아프고 괴로울 때는 죽으려고도 해보았지만 죽지 못했어. 강물에 뛰어들려고도 했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려고도 했고, 차에 뛰어들려고도 했지만 차마 하지 못하겠더라고. 이럴 때 고향의 엄마 생각에 가슴이 저리고…도망가려 해도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서 갈 수도 없었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덕 할머니)

전쟁은 그녀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놨다. 어리고 가난한 여성들을 꾀어간 일제는 ‘위안소’라는 반인륜적 기구로 식민지 여성을 ‘성노예’로 만드는 야만적인 범죄를 자행했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남성을 ‘받아내야’ 했고 참혹한 기억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 있다. 끔찍한 경험을 치러낸 그녀들에게 전쟁, 그리고 전시 성폭력은 괴물과 같다. 이에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세상에 꺼내놨고 이제는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또 다른 상징이 돼 있다. 이런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의 바람을 기리고자 건립된 건축물은 그래서 뜻깊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바로 그 건축물이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지하전시실로 향하는 ‘쇄석길’ 모습. 부서진 돌길을 걸으며 오디오 장치에서 나오는 군홧발 소리는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공포감을 떠올리게 한다./송은석기자


■시민의 염원이 모여 만든 건축물

십시일반 성금으로 주택가에 조성

8,000명 이름 3만자 벽면에 새겨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현재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주택가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이 당초 들어설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공원이라는 공간 대신 주택가 속으로 옮겨졌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박물관이 지금의 자리를 잡기까지 그 과정은 우리 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했던 방식을 보여주는 일종의 은유와 같아 보인다.

1992년 1월8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역사적인 첫 집회가 열리게 된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다. 이 목소리는 20년이 넘는 현재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이어지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03년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녀들의 삶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작업은 순탄치 못했다. 정부 지원금은 박물관을 짓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기업들은 ‘이미지’를 이유로 후원을 거절했다. 특히 일부 단체의 반대가 컸다. ‘위안부’ 피해자 박물관은 ‘독립공원’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발 벗고 나선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십시일반 모은 20억원가량은 성산동의 단독주택을 매입하고 이를 박물관으로 바꾸는 데 쓰였다. 그리고 2012년 5월5일 현재의 박물관이 탄생했다. 이렇게 힘을 모은 시민 8,000여명의 이름 3만자는 박물관 1층과 2층을 가로지르는 벽에 기념비처럼 새겨져 있다.

건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내부 모습. 박물관 건립을 위해 뜻을 모은 시민 8,000여명의 이름 3만자가 기록돼 있다./송은석기자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포커스

전시실 가는 길 걸으면 군홧발 소리

참혹한 전쟁터 끌려가는 공포감 생생

이 건물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차별과 소외 속에 인생을 보내야 했던 그녀들이었기에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설계는 돋보인다.

박물관은 작은 철제문을 열고 입장한 관람객을 또다시 건물 밖으로 이끈다. 전시가 지하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1층-2층-3층’ 순서대로 올라가는 보통의 박물관과 달라 관람객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물관은 어린 소녀들이 겪었던 참혹한 경험을 전하려는 시도를 한다. 전시실로 가는 바닥에 깔린 쇄석길(부서진 돌길)을 걸으며 오디오 장치에서 나오는 군홧발 소리를 들으면 그녀들이 겪은 공포감을 다소나마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벽면에 그려진 검은 형태의 소녀의 실루엣, 그 맞은편 할머니들의 얼굴을 본뜬 부조물은 보는 사람을 먹먹하게 만든다. 지하실 아래로 내려가면 어두운 실내에서 할머니들의 눈물 섞인 인터뷰 영상이 나와 그들의 처참했던 과거를 또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실제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고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간 피해자 할머니들의 처절한 경험을 들려주기 위함이다.



이 건물에는 희망 섞인 의지도 담겨 있다.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그 부분이다. 기존 주택건물을 걷어내 거친 표면이 드러난 곳에 새 계단과 할머니들의 증언이 담긴 미술품 등이 만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곳에는 설계자가 뚫어 놓은 천장을 통해 내려오는 환한 빛이 희망처럼 비친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추모관. 고인이 된 피해자들의 얼굴과 사망날짜가 벽을 채우고 있다. 방문객은 이 자리에서 꽃을 헌화하며 피해자들을 추모한다. /송은석기자




■모든 전쟁과 여성폭력에 반대한다

1층 전시관에 베트남전쟁 속 여성들

입장 뒤바뀐 피해의 역사 되돌아봐

이 건물에서 또 하나 주목할 곳이 1층에 마련된 기획전시관이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이 공간은 전쟁과 여성인권, 평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곳에는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군에게 입은 아픔이 담겨있다. 그녀들이 겪은 당시의 일들을 증언하는 전시물들을 통해서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피해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베트남전쟁에서 입장이 뒤바뀐 역사 또한 지닌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에게 그 고통은 쉽게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이 공간은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평화를 위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읽힌다. 뿐만 아니라 세계 분쟁지역 아이들의 피해를 알려 평화의 소중함도 깨닫게 한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경찰청 인권센터…서울기록문화관…우리사회의 상처 기억하는 공간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과 같이 타인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들은 우리 주위에 적지 않게 있다. 건축가 김명식은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에서 ‘개인의 슬픔, 아픔, 고통, 비극은 사회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공동체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면서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기 위해’ 이런 공간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경찰청 인권센터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이곳에서 민주 인사들은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지난 1985년 고 김근태 의원은 이근안씨에게 전기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7년 서울대학생 박종철은 물고문을 받다 죽임을 당했다. 이 건물은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됐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당시 대중화되지 않은 욕조가 조사실마다 설치돼 물고문을 애초부터 의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꾸준히 제기된다. 설계는 건축가 김수근이 맡았다. 그가 군사정권의 강압에 의해 만든 것인지, 스스로 협력한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3층에 마련된 ‘세월호 추모공간’도 슬픔의 기억을 남긴 곳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4월16일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가라앉고 있는 배, 피해자 가족들이 절규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존재에 의문을 품으며 슬퍼했다. 이에 당시 서울시청 앞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됐고 많은 시민들은 노란 리본과 함께 추모의 메모를 남겼다. 당시의 흔적이 서울도서관으로 장소를 옮겨 지금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크지 않고 특별한 건축적 특징은 찾아보기 힘든 공간임에도 벽면을 가득 채운 추모 문구와 전시품들은 공간의 무게감을 더한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경찰청 인권센터 모습. ‘대공분실’이라 불린 이곳의 5층 조사실에서는 숱한 고문이 자행됐다. / 사진=서울지방경찰청 블로그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에 마련된 ‘세월호 추모공간’ 내부 모습. / 사진=이완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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