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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오판의 시대

손철 뉴욕특파원





지난해 6월16일 영국 노동당의 샛별 조 콕스 하원의원이 41세를 일기로 두 아이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영국이 ‘왜 유럽연합(EU)에 남아야 하는가’를 지역 구민과 토론하고 나오다 극우 성향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에 찬성하는 한 50대 괴한의 총격에 쓰러졌다. 일주일 앞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설마 하는 결과로 빠져들 가능성을 콕스 의원의 희생이 막아줄 것이라는 희망은 그러나 여지없이 빗나갔다. 브렉시트의 후폭풍과 혼돈을 잘 모르고 브렉시트에 투표한 영국인들이 대거 후회했지만 다수결인 국민투표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 혹은 대중의 오류일까.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도 비슷했다. 예상치 못했던 브렉시트 가결처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이변이 생길 것이라고 본 미국의 엘리트는 극히 드물었다.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 신문사라고 자타가 인정해온 뉴욕타임스(NYT)는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 분석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대선 승리 확률을 88%로 제시했다. NYT를 필두로 미 전역의 유력지 대부분이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고 힐러리 선거캠프에는 돈과 인재가 넘쳐났다. 힐러리가 훌륭하거나 좋아서가 아닌 트럼프가 더 싫었다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어중간한 선택의 변은 미국인, 단적으로 말해서 아직은 다수인 백인 유권자의 선택을 얻지는 못했다.

오판의 시대다. 민주주의 종주국과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자부해온 국가에서 이런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니 권력 세습과 독재가 여전하고 인권이 막장에 처박힌 북한에서 극도로 오판이 판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위험이 너무 막대하다. 이복형을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독살한 북한 김정은은 잇따른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미국을 타격할 핵을 실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성공을 자축하며 “독립기념일에 보낸 선물 보따리가 미국은 불쾌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선물을 더 자주 보내겠다”고 미국민을 자극했다. 핵을 포기하는 오판(?)으로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몰락했다고 보는 김정은 정권의 확신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잘못된 판단이 횡행한 끝에 한반도 위기가 현실화한 것을 놓고 한국 정치권력의 미숙한 판단력이 단단히 한몫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변명을 붙여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북한이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ICBM을 개발해온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실상 세계를 휩쓰는 오판의 무대에서도 일개 비선이 국정을 농단하며 국기를 무너뜨리도록 방치한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행태는 금메달감이 아닐 수 없다. 부끄럽게도 북핵 문제가 지구촌 최대 현안이 된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모인 독일에서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해 이렇게 긴장감이 높아지다 보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려한 것이다. 군 출신 매파들이 안보 라인을 장악하고 ‘미치광이’ 전법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나마 균형을 잡아온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마저 5일 ‘군사 조치’ 가능성을 들고나왔다.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한반도에 가져올 엄청난 오판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진지하게 고민할 만하다. 중국이 미국의 대북 군사조치 가능성을 강력 견제하고 있지만 “북핵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은 용인할 수도 있다”는 식의 입장을 보인 바 있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에서 보듯 중국의 판단을 믿기도 난망하다. 10개월 일찍 ‘오판의 시대’를 되돌린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결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그릇된 결정이 생기지 않게 물샐틈없이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철학자 칼 포퍼의 조언처럼 ‘최악을 제거하려면’ 오판마저도 적절히 대처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하다.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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