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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팰런티어, 그리고 예산 수십억 달러가 걸린 국방조달 체계를 바꾸기 위한 무모한 도전

FORTUNE FEATURE|SPECIAL REPORT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피터 틸 Peter Thiel이 소유하고 있는 팰런티어가 군인들의 생명을 구하고 수억 달러 세금을 절감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시스템의 실패로 수십억 달러를 날린 군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새 대통령과 휘하의 장성들은 팰런티어를 구할 수 있을까?







백악관에서 수 백 미터 떨어진 한 법정. 도널드 트럼프가 워싱턴 관료제가 만든 예산 소모의 ‘늪’을 제거하겠다고 한참 유세를 하고 있던 때였다. 워싱턴의 늪에서도 가장 깊고 가장 많은 예산이 낭비되던 한 지점을 없애기 위한 길고 조용한 투쟁이 놀라운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미 연방법원의 한 판사가 국방부에게 대형 공공조달 한 건의 입찰 방식을 전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간의 관심 밖인 이 법원 입장에선 격렬하고 파급력이 큰 아주 드문 소송 사건의 1차전이 끝난 셈이었다. 포춘이 인쇄되던 무렵, 이 판결은 일반적인 법적 경로를 통해 항소심으로 넘겨졌다.

그러나 이 분쟁의 최종 결론을 내릴 사람은 법원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핵심 관료들일지도 모른다.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어느 기업과의 관계다. 이 회사는 8년 전, 연간 수천억 달러의 세금이 지출되는 어느 계약에 대한 장기 독점 공급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 전대미문의 도전에 나섰다.

국방부에 도전장을 던진 이 업체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크고 비밀이 많은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팰런티어 테크놀로지다. 팰런티어는 사무실 15곳, 직원 2,000명을 거느리고 있다. 자사 제품의 우수성에 대한 직원들의 믿음이 열정적이다 못해 거만해 주변 지인들이 종종 사이비 종교라고 묘사할 정도로 대단한 기업이다.

최근 팰런티어는 군 계약을 따내기 위해 국방부를 설득하는 대신 공격을 날려왔다. 미 육군 특수부대원 출신인 팰런티어의 더글러스 필리폰 Douglas Philippone(45)은 “이젠 개인적인 분노를 느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우리는 예의 바르게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입장은, 당신들 말대로 표현하면, 분명 실패작인데다 돈만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멍청하든지 썩었든지 둘 중 하나다.”

필리폰이 말하는 ‘당신들’은 외부와 단절된 관료 집단인 국방부 조달 담당자들이다.

자사 상품의 목표 소비자들이 멍청하지 않으면 썩었다고 말하는 건 흔한 판매 전략이 아니다. 팰런티어가 법원 제출 서류에서 밝혔듯, 조달 공무원들이 ‘비합리적’이고, ‘자신들이 세운 계획의 실패를 은폐하려는 욕망’과 ‘순환로 내부(inside the Beltway)’ *역주: 미 연방정부, 그리고 그와 밀접하게 연관된 기업들 방산업체들과의 관계(그리고 이런 관계에 종종 수반되는 ‘회전문 관계’)를 유지하려는 본능‘에 이끌렸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팰런티어는 자사의 핵심 역량인 데이터분석 플랫폼 제품에 대한 육군의 대형 입찰 참여 기회를 원천 봉쇄 당했다. 입찰 대상 품목은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를 통해 지역 날씨부터 지형, 매복 및 노상 폭탄 설치 가능 지점, 해당 지역 부족 지도자에 대한 최신 첩보까지 각종 정보를 군인들에게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였다.

그러나 육군은 레이시온 Raytheon, 록히드마틴 Lockheed Martin, 노스롭 그루먼 Northrop Grumman 같은 워싱턴 주류 방산업체 연합팀을 선택했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이들의 과거 제품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이었다. 이와 관련된 사업 비용이 잇달아 초과된 결과, 군이 지난16년간 부담한 비용만 약 60억 달러에 이르고 있었다. 일선 부대와 미 회계감사원(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 GAO)이 모두 인정했듯, 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고, 어쩌다 작동해도 사용이 너무나 불편해 전원이 꺼진 채 부대 책상 서랍 안에 처박혀 있기 일쑤였다. 이 시스템 문제는 첼시 매닝 Chelsea Manning(당시 이름은 브래들리 Bradley *역주: 사건 발생 이후 여성으로 성전환했다) 정보유출 사건에도 한 몫 했을 정도였다(자세한 내용은 이후 소개한다).

하지만 새 사업에 대한 자격 요건 때문에, 이미 시장에 출시돼 검증된 팰런티어 제품은 입찰 자체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필리폰의 주장이다. 팰런티어는 연 1억 달러면 미육군 모든 부대에 이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리폰은 자사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나 군이 이를 의심할 근거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중소규모 부대 여러 곳이 이미 사용해본 제품이기 때문이다. 팰런티어를 써 본 부대원들은 이 제품이 인명을 살렸다고 회사 측에 증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다소 무례해질 만하다. 육군 장교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던 필리폰 같은 사람은 제대로 작동하는 첩보 수단의 가치를 잘 알고 있어 더욱 그럴 만하다.

결국 팰런티어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길 확률은 낮아보였다. 그러나 승리한다면, 그간 화장실 변좌(toilet seat)에 개당 600달러, 실용화도 안 된 인사관리 프로그램에 수십억달러를 지불한 국방부 조달 담당자들이 바깥 세계에 혁명을 가져온 기술기업들을 더 이상무시하지 못할 수 있었다. 국방부는 그 동안 높은 가격에 비해 성능은 낮은, 군 맞춤형 제품을 제작하는 기존 방산업체들을 선호해왔다.

그러던 중 트럼프의 등장으로 팰런티어 도전의 성공 확률이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는 보잉Boeing의 새 대통령 전용기와 록히드 마틴의 F-35 전투기 도입 비용이 과도하다며 당선 전부터 소리 높여 국방부를 비판해왔다(당시 트럼프가 비판했던 높은 금액은 이미 협상에 들어가 있던 상황이었다).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트럼프의 표면적 관심이 국방부의 조달 방식을 180도 뒤집어 놓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확정적인 건 아니다. 팰런티어 사건의 연대기는 때론 카프카 소설처럼 기괴하기까지 하다. 이 이야기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늘 더 강하고 더 끈질기게 버텨 끝내 아웃사이더들을 내몰아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팰런티어의 더글러스 필리폰은 정부와의 대결이 “개인적 차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 조달 담당자들이 “부패했거나 멍청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틸 THIEL 과 장군들

팰런티어는 페이팔의 사기방지 알고리즘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9·11 테러 이후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틸과 앨릭스 카프 Alex Karp는 이 알고리즘을 테러리스트 탐지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탠퍼드 법대 시절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새로 회사를 창업하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나오는 천리안 수정 구슬의 이름을 따 팰런티어라 사명을 정했다.

2004년 창업 당시, 팰런티어의 투자자 중에는 CIA 산하 투자기관인 인큐텔 In-Q-Tel도 포함돼 있었다. 팰런티어의 비전은 기술 비전공자들도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하나의 그림으로 통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회사 측 홍보 자료는 ‘검색언어와 통계 모델 전문가가 아니어도 복잡한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틸은 페이팔 매각 후 실리콘밸리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소송을 통해 고커 미디어 Gawker Media *역주: 미국의 인터넷 가십 언론 문을 닫게 만든 사건과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자이자 IT 관련 조언자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팰런티어의 CEO직은 대담한 성격의 카프가 맡았고(포춘은 지난해 팰런티어 본사에서 아침 태극권 수업을 지도하고 있는 사진과 함께 카프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틸은 회장으로 취임했다(틸은 본 기사를 위한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카프는 미 육군을 상대로 한 팰런티어의 싸움에 대해 직접 발언을 하는 대신, 필리폰에게 이를 맡겼다. ‘우리의 행동으로 조달 체계가 개선돼 모두가 혜택을 입길 바란다’는 이메일 한 줄만이 그가 내놓은 공식 입장의 전부였다).

창사 초기부터 정보당국과의 계약을 추구한데다 CIA의 후원을 받았던 탓에, 팰런티어는 처음부터 온갖 루머와 음모론의 대상이 되었다. 오사마빈 라덴 추적에 팰런티어 소프트웨어가 한몫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팰런티어 측은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수 차례 거부했다). 요즘엔 기업 고객들이 흥미롭지 않은 곳에서도 팰런티어의 데이터분석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팰런티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사기행위 포착부터 슈퍼마켓 제품 진열 위치 파악까지 실로 다양하다. 정부와 NGO들도 재난 구호활동 조직화, 인신매매 조직 파악같은 다양한 목적으로 팰런티어를 찾고 있다. 그러나 국가 안보산업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기업가치 200억 달러로 추정되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인기 벤처 중 하나라는 사실도 팰런티어에 후광을 더해주고 있다.

틸과 트럼프의 관계, 그리고 트럼프가 당선인이던 시절, 틸의 주선으로 카프가 팰런티어보다 훨씬 더 큰 기업들과 함께 IT 기업인 회동에 초대됐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필리폰과 육군의 대결은 내부 권력다툼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백악관에 친구가 있는데 국방부와 싸우는 게 왜 두렵겠는가?

게다가 팰런티어에겐 백악관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다른 인맥도 있었다. 팰런티어 측은 고소장에서 자사 제품을 칭찬한 장성, 장교, 부대를 다수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옹호론자는 정보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마이클 플린 Michael Flynn 장군일 듯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았지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취임한 이후 예측불허 행보를 보이다 24일만에 사임을 했다. 플린의 후임인 H.R. 맥매스터 H.R. McMaster 장군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스크포스를 이끌 때 팰런티어 도입을 요청한 바 있다.

초창기부터 팰런티어의 팬이었던 세 번째 장군은 더욱 중요한데, 그 인물이 바로 제임스 매티스 James Mattis다. 국방부 내부 조사에 따르면, 매티스는 해병대 장성 시절 팰런티어를 사용한 적이 있으며 매우 호평을 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미국의 국방장관이다. 팰런티어가 육군에 제품을 공급하면, 공작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팰런티어는 틸이나 매티스가 높은 지위로 올라가기 한참 전인 2016년 2월에 이 위험한 소송을 시작했다. 트럼프가 당선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드물던 때였다. 만약 팰런티어가 계속 순항한다면, 아마 정치권에선 파벌정치에 대한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정반대다.

필자는 준비서면, 소명자료, 증언조서 등 이번 소송과 관련된 모든 서류를 읽고, 양측의 주요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소송에 관한 글을 쓴 지 몇 년이 됐지만, 이번 사건만큼 저울 추가 한 쪽으로 기운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 사건은 정부 지출의 구조적인 기능 장애가 오랫동안 만연했음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이클 플린


H.R. 맥매스터


제임스 매티스. 세 사람은 모두 장군 시절 팰런티어 플랫폼을 지지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맥매스터와 국방장관 매티스는 현재 이를 도입할 권한을 쥐고 있다.





철의 삼각형에서 길을 잃다

미국 정부조달, 특히 국방 조달에 관해 ’늪‘이 있다고 말하는 건 그랜드캐년을 구덩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리가 터지고, 해결책으로 새 규제가 도입되고, 다시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상황이 반복되는 건 미국 역사의 일부다. 상인들의 폭리, 파벌주의, 영역다툼이 없었다면 미국 독립전쟁 당시 독립군 부대들은 밸리 포지 Valley Forge에서 굶주리지 않았을 것이다. 조면기 *역주:목화씨를 분리하는 기계 를 발명한 일라이 휘트니 Eli Whitney는 머스킷 총의 조달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매디슨 Madison 대통령에게 의지하기도 했다. 해리 트루먼 Harry Truman 대통령도 미주리 주 상원의원 시절인 1941년, 군 관련 조달 비리를 조사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국방부 조달 조직이 민주당과 공화당 집권기를 가리지 않고 대형 사고를 잇달아 터뜨리면서, 관련 비용은 점점 상승했다. 물 새듯 새는 세금은 회계감사원의 관심을 끌었다. 직원 3,000명을 거느린 GAO는 정부 조직의 지출과 운영을 감독하는 기관으로, 경영상의 문제 지적과 개혁 요구 내용을 담아 매년 700개 이상의 보고서와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여러 사건 중에서도 록히드마틴의 신형 F-35 스텔스 전투기가 가장 큰 공분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 전부터 트위터로 관심을 보였던 이슈다. 조달 절차는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1년에 시작됐는데, 당시 목표는 예산 2,330억 달러, 전투기 2,866대 도입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3,910억 달러(68% 증가)를 투입해 2,457대(14% 감소)만을 도입할 예정이다. 퇴역 때까지 도입된 전투기에 투입될 정비 및 부품 비용을 감안하면, 총 비용은 1조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F-35의 조종사용 헬멧에는 소형 컴퓨터 스크린과 영사기 등이 내장되어 있는데, 이 헬멧의 개당 가격이 40만 달러나 된다.

한 전직 GAO 감사관은 F-35이든 아니든, 국방부 조달관료들의 목표는 하나라고 지적했다. “구매 승인을 받는 게 그들의 목표다. 현장에 멋진 신제품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그들의 커리어가 달려 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 방식은 늘 똑같다. 첫째, 다른 사업 진행에 차질이 없을 정도로 낮은 추정치를 내놓는다. 둘째, 멋진 최첨단 기능을 선보인다. 셋째, 실제 비용은 어느 정도 되는지, 실제 기능 구현은 가능한지에 대해 절대 제대로 알려 들지 않는다. 그래야 일부로 속인 건 아닌 게 되니까. 일단 계획이 실행되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다.

업체들도 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 구매·기술·병참 담당 차관을 역임했던 프랭크 켄들 Frank Kendall은 F-35 사업을 처음 접했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누가 운영자지? 록히드 마틴인가 아니면 우린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일단 생산이 시작되면 지지가 확고해진다. 여러 지역구에 일감을 나눠 주면 (…) 모두가 행복해지니까.” (46개 주에 있는 수백 곳의 협력업체가 록히드 마틴의 F-35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첫 해에 작성된 GAO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 사업에서 예산기준 상위 63개(모두 오바마 취임전에 시작됐다) 사업 중 13개만이 원래 예산과 일정을 모두 준수했다. 나머지 사업의 예산 초과 분은 총 2,960억 달러였는데, 이는 미국 청년 약 300만 명에게 대학 교육 자금 10만 달러씩을 제공하거나, 미국에 대형 공항 50곳을 재건축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는 동안 업체들은 번성을 누려왔다. 2002년부터 트럼프 취임 시점까지, 예산기준 10대 조달사업의 낙찰업체들이 거둔 누적 총 수익은 S&P 500 지수에 비해 거의 세 배나 높았다(트럼프 행정부가 국방 예산을 크게 높이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이 문제는 흔히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이라 불린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은 각각 국방부 조달 담당자, 기득권 방산업체와 해당 업체 로비스트들, 예산 승인이 필요할 때 로비스트들의 의견을 듣는 의원 및 보좌관들이다. GAO의 한 고참 감사관은 “철의 삼각형이 언제나 승리하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에게 의존할 뿐만 아니라 서로 자리를 바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감사관의 말처럼 “개인의 부패 문제가 아니라, 은밀한 내부 문화 자체가 부패 중”이다.


담당 공무원 20만 7,000명, 관련 조항 수천 쪽

듣기만 해도 우울한 이 설명은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있다. 현 상황은 심지어 방산업체 입장에서도 그리 공정하지만은 않다. 국방부는 올 회계연도에 외부 제품과 서비스에 총 3,00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철의 삼각형’이라는 표현으로 무시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란 얘기다. 트럼프처럼 규칙에 얽매이길 싫어하는 사업가에겐 충격적이겠지만, 조달 절차는 대부분 규정집에 의거해 진행되고 있다. 공식 명칭은 국방부 조달규정세칙(Defense 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Supplement)인데, 약자가 만연한 부처 특성상 보통 D-FARS라 불린다. 워낙 두껍고 권수와 부록이 많아 아무도 정확히 몇 천 쪽인지 알지 못한다.

D-FARS를 집행하는 정부 구매 및 조달 담당자는 총 20만 7,000명(오타가 아니다!)에 이른다. 해병대 총 인원보다도 4만 3,000명이나 많으니 비대한 조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 국방 조달 담당자들의 업무가 민간이나 다른 어떤 나라 정부의 유사 업무보다 몇 배나 큰 규모의 계약과 구매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버지니아주 포트 벨보어 Fort Belvoir(와 18개 지역 캠퍼스)에는 비용분석, 중소기업 계약, 사기 식별, 프레젠테이션 기술, 순서도 그리기 기초 과정 등 수백 개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국방구매대학교(Defense Acquisition University)도 있다. 작년 한 해에만 구매 전문가 15만 명이 이 곳의 강좌를 수강했다.

GAO에서 국방부를 오래 담당한 마이클 설리번 Michael Sullivan 감사관은 “이들이 절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참 우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의도는 좋다. 문제는 태도다. 그들은 ‘비용은 상관없으니 최고의 무기 체계를 만들자’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최고의 무기 체계를 갖고 있다 (…) 조달 문화가 진짜 문제다. 담당자들은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승리를 하는 것, 누구든 자신을 가로막으면 물리치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국방조달이 일반 기업처럼 운영될 수 없는 요인에는 네 가지가 더 있다. 첫째, 국민 세금이 걸려있다. 여기에 의회와 로비스트들의 꾸준한 압력이 가해지면서 숨막히는 규제의 거미줄이 만들어진다. 이론적으론 엄격한 규제를 통해 조달절차에 부정이 개입할 수 있는 모든 재량 행위를 완전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조달 담당자의 잘못된 정보, 확신 부재, 고집, 편견 등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 규제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곤 한다.

둘째, 정부와 거래하는 방산업체들은 납세자를 대표하는 쪽에 비해 일반적으로 훨씬 지갑이 두둑하다. 이는 능력 격차, 시기심과 아부하고픈 욕망의 결합,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유발할 수 있다. 로버트 게이츠 Robert Gates 전 국방장관은 “비용 절감 동기 부여를 가진 단호한 협상가가 필요하지만, 동기를 부여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언젠가는 본인들도 방산업체로 갈 테니, 비호감으로 보이긴 싫다는 심리다.”

세 번째 요인은 민간이 아닌 국방부에 있다. 국방부는 새로운 전투기나 무기 시스템을 도입할 때, 미국 국방부(혹은 우방국가)만이 구매를 원할 만한 제품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급업체 입장에선 개발에 드는 위험을 금전적으로 감안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그 때문에 폭증한 예산이 적지 않다. 신제품 개발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체 입장에선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수록 유리하다. 이는 뭔가를 처음부터 만들기 보단 기존 제품을 활용하는 것이 선호되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넷째, 수 년이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요구 조건과 기술이 변경될 수 있다. 집 수리를 업체에 맡겨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요구 사항이 바뀌면 일정과 금액이 모두 변하게 된다. 전투기 개발 중에 갑자기 미사일 회피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좋아지면 기존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다. 5~10년 정도 관점에서 볼 때 소프트웨어는 비행기나 무기체계보다 기술적 진보가 훨씬 더 빠르다. 이런 종류의 조달 계약에서 요구 사항이 끊임없이 변경되는 시기가 한 번쯤 오는 건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런데 새 소프트웨어,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개발된 코드를 활용한다고 해서 비용이 더 늘어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가 바로 팰런티어다. 이 사건의 의미가 큰 이유이다. 소프트웨어 기술 발전을 살펴보면, 구매와 개발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는 더욱 확실해진다. 극소수의 어떤 것을 제외하면, 기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고 업그레이드를 하는 방식이, 수 년간 노력으로 개발한 시스템이 금방 구형으로 전락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덜 든다.

오바마 행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애슈턴 카터 Ashton Carter도 이에 동의한다. 로즈장학생(Rhodes scholar)으로 옥스퍼드대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카터는 장관에 오르기 전 국방부에서 구매·기술·병참 담당 차관(undersecretary)과 부장관(deputy secretary)을 지냈다. 그는 “내가 사회에 진출할 때만 해도 최신 기술은 국방부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요즘은 최고 기술이 외부에서 개발될 때도 있는데, 우리는 종종 그것을 곧바로 깨닫지 못했다.”


작년 12월, 대통령 당선인과 IT 기업인 간의 회동에 참석한 틸과 트럼프. 팰런티어의 앨릭스 카프 CEO도 이 자리에 참석했는데,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이 높은 위상의 모임에 초대돼 일각에선 놀라움을 나타냈다.





“나는 순진하고 멍청했다.”

더글러스 필리폰도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팰런티어가 설립된지 4년 후인 2008년 이 회사에 입사했다. 웨스트포인트 West Point 사관학교에서 수학 학사, 대 테러작전 및 자금 조달 석사를 취득한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수 차례 파병돼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을 세 번이나 받았다. 작전 담당 장교로서 워낙 평이 좋아 스탠리 맥크리스털 Stanley McChrystal 장군이 직접 나서 수학 관련 업무로 옮기지 못하도록 막았을 정도였다. 맥크리스털은 “더그(필리폰)는 내 휘하의 전투 CDR(지휘관) 중 제일 적극적이고 좋은 결과를 창출한 인재였다”고 평가했다. 필리폰이 전역을 선택한 계기는 세 번에 걸친 등 수술 때문이었다. “나는 공수(空輸) 레인저였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 일이 내 임무였다. 낙하산 부대에 그렇게 오래 근무하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그는 이후 재활에 성공해 현재는 워싱턴 지역 대회에 나갈 수준의 사이클 애호가가 되었다).

필리폰의 재활이 끝나갈 무렵, 팰런티어에 지원했던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 친구가 ‘세상에’라고 외치더니, ’수학자가 테러를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있다고 생각해 봤나? (…) 있었어. 팰런티어라는 회사 한번 찾아봐‘라고 말했다.”

당시는 팰런티어가 정보 당국과 거래를 막 시작한 때였다. 필리폰의 업무는 훨씬 더 큰 시장인 국방 조달을 따내는 것이었다.

“나는 순진하고 멍청했다.” 필리폰의 직설적인 말은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와 대조를 이루면서 더욱 직설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제품을 처음 봤을 때, 입이 쩍 벌어지면서 ‘라마디 Ramadi *역주: 이라크의 지명에 있을 때 이런 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바닥에 있어 본 장군들에게 우리 제품을 보여주면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걸로 다 잘 될 줄 알았다.”

당시 필리폰을 비롯한 파병 군인들은 육군 분산공동지상체계(Distributed Common Ground System-Army), 일명 DCGS-A라는 정보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DCGS-A는 다양한 종류의 정보를 단일 플랫폼에 모아 야전 지휘관과 부대가 공유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로 개발된 시스템이었다.

DCGS-A의 최초 개발 계약은 2001년에 체결되었다. 당시 참가 업체는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노스롭 그루먼 등이었다.

육군과 DCGS-A 개발사업 참가 업체들의 홈페이지는 DCGS-A가 전장 정보기술의 신기원을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이시온은 DCGS-A가 “미국과 동맹국 군인들이 행동을 취하고 사건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 시간, 수 분, 심지어 수 초 내에 확보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끊임없이 정보의 흐름을 중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는 환상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정보장교로 복무했던 한 해병대 대위는 “D-시그스 D-sigs(DCGS-A의 별명)는 가망이 없는 쓰레기”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 화면에 여러 정보를 띄울 수 없어 화면을 계속 앞뒤로 넘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용법은 말그대로 반(反)직관적이었다. 다른 사람이나 장소 이름에 오타가 있으면 절대로 찾을 수 없었다. USB 다운로드가 불가능해서 기록한 내용을 공유할 수도 없었다. 정보 전송은 안정적인 인터넷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런 때가 드물었다. 모든 정보를 개인 노트북에 저장했기 때문에 현장을 떠나면 후임자에게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터넷에 연결한 상태로 쓰다 보면 반드시 오류가 생겼다.”

포춘은 레이시온에 DCGS-A와 일선 부대의 비판, 팰런티어 소송 등에 대해 답변해 줄 임원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홍보 담당자 마이클 도블 Michael Doble은 이에 대해 “이번 기회는 사양하겠다”고 말했다(노스롭 그루먼도 DCGS-A의 비판론에 대해 침묵을 선택했다. 해당 사업의 록히드 마틴 측 총괄이었던 롭 스미스 Rob Smith 부사장도 “1단계 DCGS 개발업체들이 고유의 역량을 육군에 제공했다”고만 언급했다).

2008년 DCGS의 잦은 고장이 이라크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브래들리 매닝(현재 이름은 첼시)이라는 육군 일병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임무는 전장 활동의 기록과 수집이었다. 훗날 군법원에 기소됐을 때 제출한 서류에서, 매닝은 시스템의 안정성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본인이 접한 기록 및 외교전문 *역주: 외교 업무에 사용되는 비밀 문서 을 개인적으로 백업했다고 밝혔다. 매닝은 이렇게 수집된 대량의 기밀 정보를 훗날 위키리크스에 제공했다.

필리폰은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부 조달 결정권자가 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 현장 사용자와, 사용자는 아니지만 조달을 맡은, 그래서 내가 설득해야 하는 담당자 이렇게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후자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필리폰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컨설팅 업체와 로비스트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록히드나 노스롭처럼 설득을 할 수 있는 회사와 함께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단계에는 조달 담당자들이 제시하는 기술적 요구 사항에 집중하는 게 핵심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부가 원하는 걸 그대로 제시해야 한다’고들 했다. 그 때 우리는 ‘그건 멍청한 짓’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고장 난 하마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순 없었다.”

구매 담당 공무원들이 팰런티어의 플랫폼을 제출 받아 일련의 테스트 일정을 잡았지만, 그 후 곧바로 취소됐다. 법정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한 담당자는 노스롭 그루먼의 협력업체였다면 더 쉽게 일정을 잡았을 것이라며 팰런티어를 무시했다고 한다.

팰런티어는 신생 업체를 워싱턴 방산업계 클럽에 합류시킨 경험이 있는 컨설턴트와 로비스트들을 추가로 고용했다. 이들은 국방부 조달 담당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선 군인들을 직접 만나 제품을 소규모로 판매해 볼 것을 권유했다. 스페이스엑스 SpaceX의 정부 로켓 사업 수주에 참여했던 한 로비스트는 “팰런티어에게 현장 사람들이 이 제품을 좋아한다는 걸 보여주라고 말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 후 필리폰과 직원들은 세일즈를 위해 전장으로 떠났다. 2009년 이라크에 주둔 중인 한 특수부대가 자체 재량 예산을 활용해 팰런티어 제품을 구매하면서 첫 돌파구가 뚫렸다. 필리폰에 따르면 당시 구매 금액은 10만 달러 미만이었다. 2010년 초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 중인 부대 6곳(육군 부대 1곳 포함)이 국방부 예산·구매 절차를 거치지 않고 팰런티어를 도입했다.

소규모 판매 절차가 완료될 무렵, 필리폰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에 실린 기고문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미군 정보 활동 개선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공동 필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정보 수집과 전파 실태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과 동맹국의 전력 운용 환경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 (미 육군의) 방대한 정보 조직이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역사가의 철두철미함, 사서의 정보 조직력, 언론인의 정보 전달을 향한 열정을 빨아들이는 ‘분석 전문가들’로 정보 센터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필자 중 한 사람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맥크리스털의 부관으로 정보 업무를 담당했던 마이클 플린 중장이었다(플린은 포춘의 인터뷰 요청을 수 차례 거절했다). 필리폰은 “그 글을 읽은 후 이 사람한테 팰런티어를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0년 7월 2일, 팰런티어 직원 두 사람이 플린을 만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갔다. 이 만남에서 큰 감명을 받은 플린은 국방부에 ‘작전상 필요에 대한 합동긴급성명(Joint Urgent Operational Needs Statement ·JUONS)’을 제출해 맥크리스털 장군의 휘하 부대에 팰런티어 제품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JUONS는 장군들이 번거로운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꼭 필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플린은 “현장의 정보 분석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완전히 분석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고 적었다. “이는 작전상의 기회 상실과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2010년 당시 DCGS-A의 유지보수와 업그레이드 시도에 매년 5억 5,000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던 육군은 플린의 요청을 거절했다. 조달 담당자들은 플린이 말한 기능은 상당 부분 DCGS-A가 제공하고 있으며, 나머지 기능을 추가하기 위한 개선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개선은 영영 이뤄지지 않았다.

팰런티어는 2010년 말 특수부대와 해병대 부대 30곳 이상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었다. 육군에도 자체 예산을 활용해 이를 도입한 부대가 있었다. 그러나 육군은 휘하 부대에 팰런티어를 도입해 달라는 플린의 요청을 잇달아 거절했다.



그러자 팰런티어 지지자가 점점 늘어났다. 당시 미 중부사령부(the U.S. Central Command) 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도 그 중 하나였다(중부사령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2011년에는 매티스 휘하의 한 대령이 ”이 시스템이 해병대원들의 목숨을 구했다“며 팰런티어 서버의 추가 구매 예산을 요청하기도 했다.

매티스 휘하에서 아프가니스탄 파병 미 해병원정군(Marine Expeditionary Force)을 지휘한 한 장군도 2012년 팰런티어의 전면 도입을 위한 예산을 요청했다. 해병대 기술지원예산 당국을 수신처로 한 이 문서에서 이 장군은 “팰런티어의 혁신적인 협업 기능은 전통적 작전과 특수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 부대에서 용맹함과 효과성이 증명됐다”고 적었다. 그는 팰런티어 도입의 정당성을 역설하기 위해 상세한 내용을 담은 파워포인트 자료를 첨부하기도 했다. 현행 DCGS 플랫폼에 대한 비판(“직관적이지 않음”)과 해병대의 팰런티어 사용 경험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비행기 착륙 후 불과 1시간 안에 델라람 Delaram(아프가니스탄의 한 지역)에 있는 우리 서버가 인터넷에 접속돼 사용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매티스는 휘하 모든 해병대 부대의 팰런티어 도입을 허가했다.

그러나 육군의 조달 담당자들은 완고했다. 4년 동안 현장에서 DCGS-A의 문제점과 팰런티어의 우수성을 지적하는 긴급 요청이 총 28건이나 제기된 상황이었다. 그 동안 팰런티어의 인기는 육군 특수부대를 비롯한 소규모 부대에서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플린보다 더 많이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한 요청도 적지 않았다. 전설적인 명성을 가진 제82공수사단(82nd Airborne Division) 소속의 한 장교는 “DCGS-A는 성능에 비해 목표가 과도하게 높고, 전투 병력의 수요를 충족시킬 능력도 없음이 수 차례 드러났다”며 “그러나 팰런티어는 제대로 작동한다”고 적었다.

국방부 구매 전문 관료들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이에 대응했다. 그들은 팰런티어의 영업 인력이 배후에서 선동했고(사실인 경우가 많았다), 팰런티어에겐 그럴 만한 역량이 없으며(팰런티어를 도입한 부대들의 성공 사례가 뒤집을 수 있는 주장으로, 구매 담당자들이 직접 시험해보지 않은 만큼 알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DCGS-A가 잘 작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선도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워싱턴 관가에선 팰런티어를 위해 활동하는 로비스트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었다. 그들은 전선에서의 압박을 무기로 활용했다. 필리폰을 비롯한 직원들은 로비스트들이 의원 보좌진에게 보낸 이메일 사본을 전달받곤 했다. DCGS 때문에 “목숨과 팔다리”가 희생되고 있다는 내용 등이었다. 어떤 당 소속이건 무시하기 힘든 주장이었다.

하원 군사위원회 위원장(공화당 소속)과 민주당 간사는 켄들 차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많은 육군 부대가 DCGS-A의 저조한 성능을 이유로 팰런티어 도입을 요청했음을 상기시켰다. 이들은 국방부 내부 보고서 2건을 인용해 “이런 평가가 사실임이 확인됐다”고 적시했다. 이 서한에 따르면, 육군 시험 및 평가사령부(Army Test and Evaluation Command · ATEC)의한 보고서는 DCGS-A가 ‘신뢰도가 낮고, 적절하지 않으며, 생존 또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전직 해병대원인 던컨 헌터 Duncan Hunter(캘리포니아, 공화당 소속) 군사위원장은 의원 자격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을 때 팰런티어의 신봉자 되었다고 말했다. “DCGS가 전원이 꺼진 채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팰런티어에 대해 묻자, 모두들 사용 중인 부대들로부터 들어 봤다고 말했다. 그들은 팰런티어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육군은 팰런티어를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직원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는 팰런티어의 앨릭스 카프 CEO. 자사 제품의 우수성에 대한 팰런티어 직원들의 신념은 종종 거만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를 종교적 열정에 비유하는 농담도 많다.





”당신의 의견을 조정하라“

이 지점부터 이야기가 스릴러 영화 속 음모론을 닮아가게 된다. 2012년 초, 레이먼드 오디어노 Raymond Odierno 육군 참모총장은 DCGS-A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던 ATEC에게 팰런티어 플랫폼 평가를 지시했다.

내부적으로 회람된 ATEC의 2012년 4월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평가 참가자의 96%는 팰런티어가 효과적이고 사용하기 쉽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팰런티어 서버를 설치할 것을 육군에 권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초안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팰런티어의 소송 제기를 계기로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초안 사본을 폐기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그러나 한 부가 살아남아 증거 개시(discovery)*역주: 재판 시작 전 양 당사자가 정보를 교환하는 절차 과정에서 공개됐다). 이후 수정된 보고서에선 팰런티어 플랫폼에 대한 호의적 평가와 도입 권고가 삭제됐다. 보고서 초안을 작성한 대령에겐 꼭 필요한 조치였다는 해명을 담은 이메일이 발송되었다. DCGS-A를 담당하는 G-2 정보수사대 입장에선 ‘통상적 구매 절차 외의 경로로 구매되고 사용된 시스템이 민감한 문제’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대령은 ‘본국에 있는 사람들에 맞게 당신의 의견을 조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년 후인 2013년, 야전 지휘관들과 의회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자, 육군은 정부 협력업체인 MITRE에게 팰런티어에 대한 독립적 평가를 의뢰했다. MITRE는 파워포인트 발표자료 형태로 결과물을 제작했는데,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육군 측의 지속적인 반박과 달리, 팰런티어 플랫폼이 DCGS-A 데이터베이스 및 소프트웨어와 호환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MITRE 보고서의 초안이 회람된 후, 연구가 취소되었다. 보고서도 발간되지 않았다.

그 대신 국방부는 육군 구매부서에서 제작한, 상세한 표와 그래프가 빼곡한 보고서를 의회에 뿌렸다. 팰런티어 플랫폼은 호환성이 없고, DCGS-A의 기능을 수행할 수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팰런티어가 업계의 규칙과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인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필리폰을 비롯한 팰런티어 직원들이 국방부와 첫 만남을 가진 날, 몇몇 직원들은 평상시처럼 티셔츠와 운동화, 청바지를 입고 갔다(한 로비스트는 “그러지 말라고 얘기해 주었다”고 말했다). 또한 직원들, 특히 필리폰은 육군이 몇 년간 데이터 플랫폼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자신들이라면 대형 구매계약을 새로 진행하지 않아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들의 대화 상대는 바로 그런 종류의 계약을 체결하고 관리하는 데 자신의 경력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이런 태도는 국방부 조달 인력들이 팰런티어, 특히 필리폰에게 느끼고 있던 ‘뿌리 깊은 적대감(어느 조달담당 공무원이 필리폰의 부하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쓴 표현)’에 기름을 부었다.

헌터 의원은 “육군 내부에 봉건적 상하구조가 만연해있어 각자가 자기 사람과 자기 사업을 지키려고 한다. 팰런티어에겐 기회가 없었다. 육군이 좋아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록히드나 노스롭 그루먼과는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던 2014년 팰런티어는 또 한 번 기존 업체들과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초창기에 팰런티어는 방산 대기업들이 모여있는 버지니아의 어느 사무 지역에 입주해 있었다. 팰런티어의 한 20대 직원은 “문화적 충돌이 늘 있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하지만 현재 팰런티어의 현지 직원 300명은 포토맥 Potomac 강가 도로에 위치한 조지타운Georgetown의 한 건물로 출근을 하고 있다. 마당, 건물 밖 푸드트럭, 당구대, 회의실에 붙은 이상한 이름, 무료 음료수, 반려견, 내부 공동 테이블에서의 식사 같은 이 곳의 근무 환경은 팰런티어가 록히드 같은 회사로 위장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 이라크 라마디에 파병됐을 당시 필리폰의 모습(오른쪽). 스탠리 맥크리스털 장군은 그에 대해 “내 휘하의 전투 CDR(지휘관) 중 제일 적극적이고 결과를 창출하는 인재”라고 평가했다.





막다른 다리

한편, 카터 당시 국방부 장관은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미국의 훌륭한 혁신 생태계에 다가가 (…) 교량을 건설하고 (…)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혁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터와 구매담당 차관인 켄들은 분명 국민이 낸 세금의 활용법을 여러 모로 개선하고 있었다. 2011년에는 F-35도입 계획도 고삐가 잡힌 상태였다. 예산 초과와 일정 지연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대형 구매 계약도 줄어들고 있었다. GAO의 설리번도 “진정한 개선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과거에 비해 요구 사항 정립, 시험 기술, 예산 준수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이런 개선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게이츠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되었다. 게이츠는 카터에게 구매 부문을 맡겼다. 한데 뭉친 두 사람은 철의 삼각형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게이츠는 “사업 한 두 개를 축소한 데 만족한 장관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36개를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축소를 한꺼번에 발표해 각 사업 담당자가 불공정하게 제외됐다고 불평할 가능성을 차단했다. “의원들이 워싱턴에 없는 틈을 타 발표를 했다. 기습 공격이었다.”

게이츠와 카터가 거둔 승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9년 이라크에서 사용했던 무장(武裝) 전지형차(allterrain vehicles · ATV)가 아프가니스탄의 완전히 다른 지형 안에 숨겨진 급조된 폭발물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카터는 각종 규제를 뚫은 끝에 18개월 만에 신형MRAP(mine-resistant, ambush protected, 지뢰 및 사제폭발물 방호 차량) 수천 대를 예산 초과 없이 공급하는데 성공했다. 카터는 “당시 체제는 냉전 시대의 느린 흐름에 부합했다”고 평가했다. “그 때 상황에선 명석함과 속도가 핵심이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절차 밖에서 행동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 후 팰런티어 이야기의 다음 장이 시작됐다. 2014년 초를 기점으로, 관료제, 특히 워싱턴 철의 삼각형의 일부인 관료제를 타파하는 일은 상부의 의지가 있을 때에도 쉽지 않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핵폭탄을 날리다

2014년 12월, 상황이 DCGS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GAO 보고서는 DCGS가 80시간 현장 교육을 이수한 후에도 “임무 수행 효율성이나 생존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의회의 압박도 계속됐다. 결국 육군이 일정 정도 백기를 들었다.

육군은 이미 약 60억 달러를 지출한 DCGS 개발을 중단하고, 2단계 사업에 대한 입찰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1단계 사업에 예산을 지출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회에 인정한 셈이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사업 설명 단계에서 입찰 업체들에게 2단계 사업 목표는 구형 시스템의 개선을 통한 기능 추가라고 밝혔다. 낙찰 업체는 인력을 마음껏 투입해 무(無)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비용을 산정한 후, 협상을 통해 수익률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건 종전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팰런티어는 군에 수 차례 서한을 보내 접근법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사업의 진행 방법 변경을 제안했다. 팰런티어와 다른 기업이 고정 비용으로 기존 제품을 개량해 거의 즉시 물건을 공급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이 제안이 무시되자, 팰런티어는 더욱 대담한 행보에 나섰다. 이들은 국방부가 공급 업체의 작업 정보 및 관련 세부사항을 제공해 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하는 행위는 “현실과 괴리됐으며, 향후 10년간 활용도가 낮은 ‘플래그십’ 정보 구조에 육군을 가둬 놓을 것”이라고 서면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육군은 팰런티어의 요청에 대응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 23일, 조달당국은 실비 정산 후 개발 수익이 가산되는(cost-plus) 개방형 개발 사업 입찰 요청 신청서를 발행했다. 입찰 업체 자격 요건 중에는 신형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직원 수백 명의 근무시간을 추적할 수 있는 회계 시스템을 운용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라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개발 기간이 아닌, 완제품을 기준으로 가격을 매긴 팰런티어에겐 물론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6주 후 팰런티어는 GAO에 민원을 제기했다. 연방청구법원(U.S. Court of Federal Claims) *역주: 국가 상대 청구소송을 담당하는 법원 에 소를 제기하는 것보다 덜 공식적이고, 비용도 적게 드는 방식이었다.

승리 가능성은 낮았다. 낙찰에 실패한 업체들이 구매 규제 내 특정 조항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GAO에 제기하는 민원이 연간 약 2,000건에 달하고 있었다. 이런 민원은 민사상 합의에 해당하는 방식(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 입찰 절차를 변경하는 데 동의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GAO 민원 절차를 계속할 경우, 절대 다수의 요청은 기각된다. 국방부를 상대로 한 소송의 경우 그 비율이 97%에 달한다.

팰런티어의 경우는 특히 확률이 낮았다. 구체적인 법규 위반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팰런티어는 입찰 절차와 정부 조달 문화 전반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있었다.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팰런티어는 GAO에 육군의 입찰 방식을 바꿔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했다.

팰런티어 측 주장의 근거가 된 법률은, 이런 아웃사이더형 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보였다. 의회는 국방부가 (육군이 DSGS에 대해 두 번째로 시도할 것으로 보이는) 신제품 개발에 나서기 전인 1994년, 기존 소프트웨어를 먼저 시도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의 의도는 명백해 보였다. ‘정부 부처의 제안서의 경우, 요청한 상품의 요구 조건이 현실적으로 최대한 명확하게 정의돼 있어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물품이 이를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상업적 판매 물품의 공급자에겐 (…) 이러한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는 조달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

이 법이 입법될 당시, 의회는 구매와 자체제작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에 가능한 한 기존 제품을 구매하라고 압박을 넣는 분위기였다. 하원 위원회가 이 법에 대해 내놓은 설명은 팰런티어가 22년 후에 맞닥뜨리게 될 저항을 요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즉각적인 입수가 가능한 상업 제품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 제작된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는 악습이 연방 조달 시스템에 여전히 만연해있다.’

그러나 일견 명쾌해 보이는 이 법의 존재, 그리고 22년간 국방부 등 정부 부처들이 수백 건의 개발 계약을 진행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근거로 정부에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방부 등 공공기관들이 상습적으로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법정에 가져가지 않았을 뿐이다. 입찰에 나선 사업자들은 대체로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원가 가산 방식 계약을 선호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입찰에서 탈락해도 다음 입찰을 딸 가능성이 상당했고, 심지어 낙찰 업체의 하도급을 받아 계약 수익금의 일부를 가져갈 수도 있었다. 한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워싱턴 밖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굳이 정부조달에 뛰어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팰런티어의 상황은 달랐다. 필리폰은 “우리에겐 단순히 계약 하나를 따는 문제 이상이었다”며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GAO는 국방부에게 상업적 제품을 검토할 법적 의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상업적 제품이 요구 조건을 만족하는지 결정할 재량권 또한 갖고 있다는 이유로 팰런티어의 민원을 기각했다. 문제의 법에는 GAO의 해석만큼 군에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조항이 없지만, GAO는 입찰 관련 마찰에서 논란을 피해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팰런티어는 이에 대해 공격의 수위를 더욱 높였다. 저명한 재판전문 변호사 데이비드 보이스 David Boies가 경영하는 유명 로펌 보이스 실러 & 플렉스너 Boies Schiller & Flexner에 사건을 의뢰했다. (기자의 친구이기도 한) 보이스는 정부를 대리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 첫 동성혼 재판에선 원고 측 공동 법률자문을 맡았으며, 부시 대 고어 재판 *역주: 2008년 대선 후 플로리다주 재검표를 둘러싼 소송 에선 고어 측을 대리하기도 했다. 그는 유명 사건 수임을 통해 포춘 500대 기업들을 고객으로 하는 대형 로펌을 세웠고, 더 전통적인 기업 변호사들이 코웃음을 칠 정도의 두둑한 성공보수를 받아내곤 했다. 워싱턴에서 주로 활동하는 보이스 실러 & 플렉스너의 파트너 변호사 해미시 흄 Hamish Hume은 공군의 우주선 구매 입찰을 따내기 위한 일론 머스크 Elon Musk와 스페이스X의 법정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필리폰은 “보이스 실러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팰런티어가 로펌 측에 지불해야 할 수임료가 현재 200만 달러 이상일 것이라 추정했다. “승리 가능성은 1% 정도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GAO 판정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작년 6월 30일, 완고한 결의로 가득 찬 소송이 시작됐다. 81쪽에 달하는 고소장이 육군의 행동을 비판하고 비꼬았다. 내용은 이랬다. ‘DCGS 사업 담당자들이 육군에 자행한 잘못된 조달 접근법은 위법적이고, 기득권 방위조달업계 외의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에 대한 비합리적인 저항으로, 수십억 달러의 세금 낭비를 초래했다. 심지어 미국 군인들의 성과와 생명에 위해를 끼쳤다.’ 팰런티어 대 미합중국 사건의 원고는 소장에 재치 있는 표현을 곁들이기도 했다. 미 육군이 현장 부대에게 “전쟁을 이유로 우리 사업을 방해하지 말라”고 지시한 셈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연방청구법원 재판은 일반적으로 변론 취지서를 제출하고 담당 판사 앞에서 심리를 갖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변호인들은 입찰 과정에서 제시된 서류를 기반으로 논쟁을 벌인다. 양 측은 새로운 자료에 대한 제한된 수준의 증거 개시나 핵심 증인에 대한 진술 녹취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이 사례의 경우, 반(反)팰런티어 로비 활동을 조장하라는 내용의 군 내부 이메일, 팰런티어 도입의 정당성을 주장한 연구 결과, 육군 내 두 명의 전문가 증인의 진술 녹취록에 대한 원고 측 질의 등이 새로운 자료였다. 이 자료들은 육군과 변호인 측이 팰런티어의 낙찰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

육군의 가장 큰 논거는 팰런티어가 육군의 입찰제안서에 명시된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법을 준수해 기성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는 것이었다(팰런티어는 그 요구 조건들이 자사를 원천적으로 배제시키려는 목적 하에 작성됐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보통은 이쯤에서 팰런티어의 주장을 반박하는 육군 측의 법정 자료를 인용하게 마련이다. 대규모 소송에 대한 이야기가 테니스 결승전 관람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이유는 자극적인 반박 문구 때문이다. 필자는 관련 문서에서 그런 표현을 샅샅이 뒤졌지만, 쓸 만한 내용이 없었다. 군 측은 1994년 법률이 명시한 상업적 제품의 이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만 적용된다는 모호한 주장을 표현만 바꿔 반복할 뿐이었다. 이번 사례는 현실적인 범위 밖에 해당된다는 것이 군의 판단이었다.

10월 31일, 매리언 블랭크 혼 Marian Blank Horn 연방청구법원 판사가 육군에게 입찰 절차를 중단하고 팰런티어를 비롯한 다른 상업적 제품도 검토될 수 있도록 입찰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혼 판사는 “상업적 제품의 이용 가능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분석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과 행정기록에 드러난 일부 육군 인사의 유감스러운 행위”를 언급하며, “1994년 제정된 법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어서 이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이후 혼 판사는 육군이 상업 제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법적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것은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행위였다는 내용을 담은 104페이지짜리 판결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육군이 신의성실 원칙을 위배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 판사는 청구법원의 절차상, 육군이 편견을 갖고 팰런티어에 호의적인 보고서를 취소했는지 여부 등을 검증할 수 있는 독립적 조사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육군의 행동은 잘못됐지만, 서로 배치되는 양측의 주장만을 근거로 ‘신의성실 의무 위반’에 해당 한다고 판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군 경험이 풍부한 팰런티어의 한 로비스트는 “자기 머릿속 이야기에서 스스로 악역을 맡는 사람은 없다”면서 “조달 담당자들도 본인의 이야기 속에선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무 방식을 진심으로 믿는다.”

DCGS-A 사업을 담당했던 캐서리나 맥팔랜드 Katharina McFarland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당시 구매·기술·병참 담당 차관보 대행이었다. 맥팔랜드는 해병대 공병으로 입대한 이후 작년 가을까지 30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미사일 기술 조달 총괄, 국방구매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고, 공직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장의 추천서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방산업체로 이직하지 않고 완전히 은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맥팔랜드는 애슈턴 카터 팀에 있던 본인과 (자신의 옛상관인) 프랭크 켄들 등 많은 사람들이 ‘혁명적이고 지적인 방식으로’ 세금의 지출 방식을 바꿨다고 한 시간 동안 설명하며 자랑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비용이 초과된 여러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제작 전 계획 및 검사 절차도 더욱 엄격하게 했다. 구매 담당 공무원들에겐 입찰 업체들이 주장하는 액수가 아닌, ‘필수 비용(should cost)’을 확인할 의무가 주어졌다.

맥팔랜드는 필자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팰런티어를 언급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맥팔랜드는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사정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팰런티어가 불쑥 나타나 ‘우리에겐 우리만의 사업 모델이 있으니 목숨을 걸고 사수하겠다’고 선포했다. 우리 분야에선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 아주 오랫동안 해온 일이다. 팰런티어 이전에도 그런 시도들은 있었다.”

“팰런티어를 사용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 장군들이 있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녀는 “현장에 영업사원을 보내 사람들을 설득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행동에 대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월 중순에 가진 이 인터뷰 다음날, 퇴임 예정이었던 켄들 차관(맥팔랜드의 전 상사)은 팰런티어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육군이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제품들에 대해 충분히 분석하지 않았고, 요구 조건 결정 과정에서 시스템이 너무 경직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4일 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카터도 켄들의 평가에 동의했다. “파괴적 기업이 우리를 파괴한다면 언짢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필자는 이메일로 맥팔랜드에게 팰런티어의 배제가 부적절했을 수 있다는 켄들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맥팔랜드는 “달리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 지식은 공학에 한정된다. 퇴직자에게 허용되는 법적 한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 육군은 이제 법원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며 (…) 군의 사기가 꺾이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맥팔랜드는 두 번째 이메일에서 “연방 구매 규정에 근거한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바로 이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혼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순간 법정에 있었던 기자는 한 명(‘블룸버그 뉴스 Bloomberg News’의 기자였다. 블룸버그와 기술전문지 ‘와이어드 Wired’,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Politico’는 이 사건을 꾸준히 취재해왔다)뿐이었지만, 판결의 의의는 결코 작지 않았다. 금전적 파급효과가 수십억 달러에 달해서만은 아니었다. 국방부는 이 사업에 60억 달러를 추가로 쓸 의향을 보이고 있지만, 필리폰의 말처럼 팰런티어는 “연간 1억 달러”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팰런티어 외에도 실리콘밸리에는 스스로의 능력을 대단히 신뢰하는 기업들이 많다. 이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수준의 절반만큼만 능력을 증명해도, 이 판결에 근거해 더 좋은 제품을 더 싼 가격에 공급하는 게 가능해져 워싱턴의 기존 국방조달사업 구조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훗날 후회하긴 했지만, 켄들과 카터는 DCGS-A 입찰 절차에 아무런 변화를 가하지 않았다. 이는 팰런티어의 무례한 소송을 진정한 도전으로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다면 정말로 팰런티어가 승리한 것일까? 연방청구법원은 육군이 원점으로 돌아가 팰런티어 등 대안을 검토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더 확실하게 보여주라고 판결했을 뿐이다. 소송이 시작되자, 팰런티어의 로비스트들은 (회사가 이미 제품을 공급 중인) 중소 규모 군부대에 정보 플랫폼을 제공할 때 육군이 반드시 상업적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조항을 국방예산책정 관련 현행법에 포함시켜 달라고 의회를 설득했다. 하지만 청구법원의 판결이 적용되는 대형 사업의 경우, “요구 조건으로 골탕먹이는 게 여전히 가능하다”는 게 필리폰의 주장이다. “아니면 입찰을 받되 우리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육군은 청구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를 결정하고, 사건을 DC항소법원(Court of Appeals for the District of Columbia)으로 가져갔다. 법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필리폰과 팰런티어의 변호인단은 새 행정부가 소송의 미래에 대해 다시 결정을 내릴 때까지 소송이 보류될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육군 법무청의 입찰분쟁담당 수석변호사 스콧 플레시 Scott Flesch는 신임 국방장관이 팰런티어에 호의적인데도 육군이 항소를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매티스 국방장관이 조달 공무원들에게 팰런티어를 검토하라고 지시한다면, 소송은 당연히 중단될 것이다. 매티스(본 기사에 대한 의견 표명을 거부했다)는 청문회에서 팰런티어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조달과 관련된 서면 질의에서 “국방부가 상업 시장에서 획득 가능한 기능을 복제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낭비해선 안된다”고 답변했다.

매티스와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야전 지휘관 당시 팰런티어를 요청한 바 있다)이 보고와 조언을 올리는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파괴자가 되길 좋아하는 그는 최고의 거래를 하는 능력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으며, 팰런티어의 창업자 겸 회장인 틸에게서 기술 관련 조언을 받고 있다.


트럼프와 국방부

지금까지 이 분쟁에 대해 트럼프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적은 없다. 필자의 문의를 받은 백악관 대변인실의 린지 월터스 Lindsay Walters는 대통령이 이 사건이나 국방조달에 대해 의견을 직접 피력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월에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 예산안에서 국방예산은 10% 인상돼 총 540억 달러 증액됐다. 이를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로서 예산절감에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F-35 전투기와 대통령 전용기 가격에 대해 수 차례 트윗을 올렸고, 두 사업의 수주업체(록히드마틴과 보잉) CEO들과 만났을 때도 허세를 부렸다. 게다가 그는 최고 협상가가 이끄는 새 정부는 과거보다 훨씬 더 현명하게 예산을 지출할 것이라고 공약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말이 진심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그럴 경우 ‘철의 삼각형’이 그를 꺾을 수 있을지도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팰런티어에 호의적인 법원 판결이 내려졌고, 관련 인사들이 트럼프와 워낙 가깝기 때문에 트럼프가 팰런티어-육군 간 분쟁을 공약 이행의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은 높다. 대통령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이 항소를 그만두고 청구법원의 판결을 따르라고, 다시 말해 팰런티어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라고 한 마디만 지시하면 끝날 일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팰런티어의 승리가 변화를 가져올까? 필리폰은 ”이번 소송을 통해 예상 비용과 일정을 넘기는 일이 허다한 신제품 개발을 방산업체들에게 의뢰하는 대신, 군이 민간 기술 기업의 우수한 제품을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생기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방부 조달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J. 로널드 폭스 J. Ronald Fox 교수는 2010년 국방부 예산 관리에 대한 책을 발간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1959년부터 총 17명의 국방장관이 국방조달절차의 효과성과 효율성 개선을 공약했다”고 지적했다. “각 장관은 실제로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개혁의 이행이 완전히 정착할 만큼 오랫동안 재임하지 못했다.” 팰런티어가 잠시 앞서 나간다 해도, 철의 삼각형을 완전히 깨뜨리려면 훨씬 더 많은 승리가 필요할 것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Steven B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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