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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FORTUNE'S EXPERT|안병민의 '경영수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현금이 필요 없는 ‘캐시리스(Cashless)‘ 세상이 열리고 있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간편결제가 점차 확산되면서 거추장스럽게 현금을 지니고 다닐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혁신이 가져온 변화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모바일 간편 송금’과 ‘페이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갑은 작습니다. 카드 두어 장 들어갈 만한 크기입니다. 원래 작은 지갑을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현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 바꾼 겁니다. 요즘은 택시를 타든, 편의점을 가든, 식당에 가든 카드 하나면 ‘만사 OK’입니다. 현금이 없어도 되니 지갑도 따라 작아집니다.

웬만한 모임에서도 이젠 현금이 필요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터치 몇 번만 하면 회비도 간단하게 낼 수 있습니다. 계좌번호는 몰라도 됩니다. 사람 속 터지게 만드는 공인인증서나 비밀번호생성기(OTP)도 필요 없습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송금이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이른바 ‘모바일 간편 송금’ 덕분입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 간편 송금 시장의 하루 평균 이용금액은 작년 4분기에 이미 12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건수로는 25만 건에 육박합니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입니다.

‘페이 결제’는 ‘현금 실종’을 불러온 또 다른 주범입니다.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스마트폰을 갖다 대는 걸로 결제가 끝납니다. 스마폰에 미리 등록·저장해놓은 신용카드 정보로 계산하는 겁니다. ‘삼성페이’, ‘LG페이’가 대표적입니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도 있습니다. 내 카드나 계좌정보와 연동된 아이디 하나로 결제가 가능합니다. 수많은 가게와 쇼핑몰들이 앞다퉈 이런 간편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니 현금은 이제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입니다. 각종 공과금도 이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납부하는 세상이니 세금도 예외일 이유가 없습니다. 국세청이 간편결제 세금 납부 서비스를 도입한 배경입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다더니 딱 그 짝입니다.

이제 불똥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튑니다. 1990년 7월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현금자동입출금기는 2014년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나 9만 대에 육박했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그 수치가 줄어든 게 지난 지난 2015년입니다. 모바일·인터넷 뱅킹의 영향입니다. 모두들 디지털로 돈을 주고 받으니, 현금자동입출금기는 점점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되어 갑니다.

이웃나라 중국은 더 합니다. “노 캐시(No cash)”를 써 붙여놓은 노점상이 즐비합니다. 길거리에서 호떡 하나 사 먹는데도 결제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합니다. 매대에 붙어있는 QR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어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의 대도시에선 지갑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라고 합니다. 세뱃돈도 모바일로 준다고 하니 할 말 다 했습니다.

바야흐로 ‘캐시리스(Cashless)’ 세상입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니 현금 수요가 줄어듭니다.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디지털로 모든 금융 거래가 가능합니다. 스웨덴 최대은행인 스웨드방크는 현금을 취급하는 지점이 단 8곳에 불과합니다. 프랑스도 지난해부터 소액 현금 결제를 제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덴마크는 올 1월, 지폐와 동전 생산을 전격 중단했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화폐를 다른 나라에 위탁해 생산하고 장기적으론 디지털화폐 체계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에선 세계 최초로 ‘캐시리스 국가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전언입니다. ‘현금 없는 세상’은 이미 글로벌 차원의 이슈임에 틀림없습니다.

한국도 이에 동참하는 모양새입니다. 한국은행이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잔돈이 남으면 현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남은 잔돈을 교통카드 등에 적립해주겠다는 겁니다. 국내 대표적인 편의점·백화점·슈퍼마켓 네트워크가 동참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참여 업종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해 동전 제조 비용만 600억 원이라 하니 현금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현금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될 날이 얼마 안 남은 겁니다.



‘가상화폐’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조개껍데기, 쌀, 비단 등을 화폐처럼 사용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디지털코드’를 돈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비트코인’이 그런 예입니다. 실제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업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가상화폐의 전망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이 엇갈립니다. 하지만 금융 환경의 변화가 급격하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불을 보듯 확실합니다.

이처럼 현금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의 이면에는 ‘핀테크(Fintech)’가 있습니다. ‘핀테크’는 ‘파이낸스(Finance)’와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금융의 IT화(化)’라는 세상 변화의 물결이 이 개념에서 시작됩니다. 금융회사가 IT 기술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IT 기업이 금융사업을 하는 겁니다. 그런 변화의 한가운데서 제이피모건과 골드만삭스는 이미 스스로를 IT 기업이라 선언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IT 인력만 근 1만 명입니다. 이 정도면 페이스북의 IT 인력 규모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게임의 룰이 달라지고 있는 겁니다.

변화는 곧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변화가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표방하고 나선 K뱅크는 영업 개시 보름 만에 20만 개의 계좌를 확보했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만 거래하는 은행이다 보니 직원 수도 적고 오프라인 영업점도 없습니다. 관리 비용이 줄어드니 예금금리는 높고 대출금리는 낮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거부감이나 장벽이 없는 고객이라면 찾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은행권 자산규모 국내 6위인 한국씨티은행이 영업점 80%를 폐점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133개 영업점 중 101개는 문을 닫겠다는 겁니다. 고객 중 95% 이상이 비대면 거래를 하고 있는 작금의 디지털 환경에 발 맞추기 위한 조치랍니다. 격변하는 금융 환경에서 비롯된 위기감의 표출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일 겁니다. 이 모든 게 ‘핀테크’가 빚어내는 변화입니다. 지금껏 고액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금융권 화이트칼라들에겐 생각지도 못한 변화입니다. 밤잠 못 이루는 은행원들의 주름살이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모두가 혁신, 혁신, 노래를 부릅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 세상이 되어서입니다. 그 혁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금이 이렇게 사라져갑니다. 물론 예전보다 훨씬 편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떼를 써서 받아낸 오백 원, 천 원을 들고 동네 오락실로, 떡볶이집으로 달려가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퉤퉤’ 침을 발라가며 지폐를 세던 가게 사장님의 흐뭇한 미소도 눈에 밟힙니다 “죽은 나무들이 씽씽한 바람소릴 낸다/죽음이란 다시 죽지 않는 것, 서서 쓰러진 그 자리에서 새로이 수십 년씩 살아가고 있었다/사라져가고 숨져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 영광 시인의 시 <고사목 지대>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 세상도 그렇게 사라져가고 숨져가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일 새로이 살아갑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글 안병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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