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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방산비리 수사, '그놈이 그놈' 아니기 바란다

포퓰리즘 의식, 정치성 배제해야

전 정권, 무리한 수사 부작용 노정

결과 늑장 공개한 '수리온 비리'

이상 있다면 당장 운행 중단 필요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문재인과 박근혜, 전현직 대통령 두 분의 인식에 공통점이 있다. ‘방산 비리는 이적 행위’라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방산 비리 척결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애국과 비애국의 문제이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적폐 청산 과제’임이 분명하다. 정치적 노선과 신념을 달리하는 전현직 대통령의 인식이 같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게다. 방산 비리 척결의 수단도 비슷해 보인다.

전 정권은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을 장기간 운영하면서 비리 색출에 힘을 쏟았다. 새 정부는 검찰뿐 아니라 감사원까지 전면에 내세웠다. 감사원은 방위사업청의 수리온 헬기 관련 비리를 최근 낱낱이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다. 문제는 비리 수사에 담긴 정치성이다. 방산 비리는 인화성이 크기에, 즉 국민의 분노를 쉽게 유발하기에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다. 박근혜 정권의 방산 비리 수사가 그랬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지난 2015년 7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합수단이 공개한 비리 금액은 9,809억원. 엉터리였다. 공사비가 1조원인 고속철도 구간 공사를 뇌물 10억원을 주고 따냈다고 치자. 합수단 기준으로는 비리 규모가 1조원이다. 합수단이 청구한 구상권은 약 30억원. 인과 관계와 자금 흐름이 명확한 비리는 30억원 안팎이었다는 얘기다. 당시 합수단은 63명을 기소했으나 줄줄이 무죄로 풀려났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이렇게 털어놓았다. “역대 합수단에서 이렇게 많이 무죄 선고를 받은 사례가 없다. 당시 수사가 얼마나 부실하고 무리하게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막상 국민들의 인식은 사건의 실체와 정반대다. ‘군인들이 1조원 가까운 돈을 해먹었는데도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빚어졌나.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군의 최신예 구조함인 통영함이 제 역할을 못했으며 비리가 개입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박 전 대통령은 방산 비리 척결 지시를 내렸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던 정권은 포퓰리즘에 젖은 ‘사정 통치’의 일환으로 합수단을 설치했고 마구잡이식 수사의 결과가 대거 무죄 판결이다. 이 과정에서 손상된 군의 위신과 명예, 국민에게 각인된 그릇된 인식의 대가는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굳이 과거를 들추는 것은 이미 흠집 난 전 정권을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 정부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수리온 헬기 비리 관련 조사 결과가 이런 의문을 갖게 만든다. 무엇보다 감사원의 조사 결과는 2015년 말에 나온 것이다. 2015년과 2016년 수리온 헬기는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수용해 미비점을 보완하고 성능을 개량해왔다. 개선 사항은 이번 감사원 발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강등조치를 권고받은 관련자들도 문제를 제대로 수정했다면 징계가 아니라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감사원은 무기체계에 대한 무지도 드러냈다. 1984년 실전 배치된 AH-64 아파치 헬기조차 최근 이스라엘군에서 비행 금지됐다. 배치된 지 4년 남짓한 수리온 헬기 역시 33년이 지나도록 문제를 해결하면서 발전해온 아파치 헬기와 비슷한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의 발표대로라면 군에 67대나 납품된 수리온 기체 전부가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 수리온 헬기를 조종·탑승하는 아들딸의 부모는 속이 탄다. 문제 있는 헬기를 그대로 운용하다 인명 사고라도 난다면 대통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해외 수출은 고사하고 국내 수요도 마를 판이다. 강원도 산불에 야간 투입할 소방 헬기가 없어 긴급 소요로 야간 운행이 가능한 소방용 수리온 헬기 구매 대금이 책정됐으나 최근 며칠 사이 도입 요청 대수가 줄었다. 대신 외국산 헬기 구매로 방향을 틀었다. 누가 책임져야 하나. 감사원 단독으로 그렇게 발표했다면 비겁하다. 정권에 따라 침묵하고 ‘정의의 사도’가 되는 감사원이라니.

촛불의 염원을 담아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전 정권처럼 얄팍한 수법에 매달리거나 방산 문제를 정치화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 정부의 방산 비리 대책은 수출 가능성을 정권의 치적인 양 과대 포장하고 밀실에서 몇몇이 해외 도입 무기를 결정하는 관행을 뿌리 뽑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회초리는 정당할 때만 약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전 정권의 사례처럼 독 묻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새 정부가 전 정권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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