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내가 죄인이라서…" 자살로 내몰리는 대한민국 노인들

[대한민국 우울증 리포트]<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생활고, 외로움 등에 80대 이상 자살률 20대의 5배

자살 시도 경험 10명 중 1명이나… 여성보다 남성 높아

‘우울증도 병' 인식 개선에 병원행 증가는 고무적

"예방·치료 위해 시군구서 물적·인적 자원 확보해야"





# 아내와 사별 후 홀로 생활한 지 10년이 되는 김모 씨(82)는 최근 몇 년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잠자다가 숨이 막혀 죽는 게 아니냐는 막연한 불안감에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지 않으면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몸무게는 줄었고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 약을 입에 달고 산다. 이 모든 게 젊었을 때 가족 속을 썩이다가 지금에서야 벌을 받는 것 같아 우울하다. 기억력은 눈에 띄게 나빠지면서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닌가 싶어 두렵기만 하다. TV에서 노인들의 자살 뉴스가 나올 때면 자신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국내 노인 자살률은 전체 연령대 중 부동의 1위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자살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출처=픽사베이


김모씨의 고민은 결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2014년 통계청이 65세 이상 노인 1,121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10.9%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더구나 이 가운데 12.5%는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지난해까지 10여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노인 자살률은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노인들 자살의 최대 원인은 생활고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노인들을 위한 공공 일자리, 기초연금 내실화 등 노인 복지체계 확충이 노인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근본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장기 과제인 만큼 단기적으로 지역별 노인복지센터 건립과 인력 확충 등을 통해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인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으로 국내 7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6.2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인구의 평균 자살률(10만 명 당 28.4명)과 비교해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더라도 2015년 기준으로 80대 이상과 70대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각각 83.7명, 62.5명으로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은 20대(16.4명)의 5배 이상에 이르렀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악인 우리나라 높은 자살률을 노인 자살률이 끌어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또 2015년 기준으로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 가운데 60대 이상의 비중은 42%에 달했다.

이 가운데서도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우울증에 취약하다. 가부장제에 익숙해 가족 부양에만 몰두하다 평소 가족들과 대화가 부족한 탓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통상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남성 노인의 자살 위험은 여성보다 2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주로 경제난과 건강 악화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본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40.4%), 건강문제(24.4%)를 꼽았다. 또 외로움(13.3%), 가족·친구와의 갈등이나 단절(11.5%), 배우자 등 사망(5.4%) 등 가족이나 사회와 단절된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즉 생활고나 건강,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치료도 받지 않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얘기다.

노인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




◇“우울증도 병”… 인식은 개선 추세= 다만 ‘우울증은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는 증거’라는 낡은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울감을 참기보다 병원 진료나 상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65세 이상 노인은 22만4,000명으로 2011년(17만5,000명)보다 28%나 증가했다. 매년 6.4%씩 증가한 셈이다. 전체 연령층의 연간 증가율은 3.1%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65세 이상 노년층 우울증 환자 추이


노년 우울증이 해묵은 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인들이 과거와 달리 우울증을 치료해야 하는 병으로 인식하고 정신과를 방문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인식이 퍼진 것도 병원을 찾는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는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병원은 물론 각종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인도 크게 늘었다. 우울증을 극복한 노인이 직접 상담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김주연 서울어르신상담센터 사회복지사는 “캠페인과 교육 등으로 노년층이 우울증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3~4년 전에 비해 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이 대폭 늘었다”며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우울증이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이를 가족이나 이웃 등에게 전파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부족한 물적·인적 인프라= 이처럼 노인들이 우울증을 대하는 인식은 크게 개선됐지만 인적, 물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산간·농촌 지역에는 정신건강관리를 위한 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우울증에도 지역별 ‘복지격차’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자살률은 최근 10년간 강원과 충청 지역이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산간과 농촌이 많은 탓에 의료·상담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국 288개 시군구 중 노인 인구 1,000명당 노인시설 수가 0개소인 지역은 38개이다. 그 중 60%는 강원과 충남 지역에 집중돼 있다. 고정애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강원도 등 산간 지역의 경우 정신건강증진센터 및 병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인구 밀집도도 다른 지역보다 낮기 때문에 직접 방문하지 않는 이상 주민의 우울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역별로 노인 건강을 지원하는 인력 격차도 심각하다. 지난해 지역별 노인돌봄서비스 이용률은 최소 0%에서 최대 84.6%로 편차가 컸다. 사회복지사 등의 인력이 없어 노인건강 서비스가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지역도 있다는 얘기다. 정우철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외래교수는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 제공자의 수는 이용률과 비례한다”며 “이용률이 0%인 곳은 인적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물론 노인 우울증과 자살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기초연금, 퇴직·개인연금 등의 연금과 노인 일자리 확충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당장은 노인들이 사회와 접촉 기회를 늘리도록 돕고 정신건강 관리와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정부 차원의 대책은 물론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의료·상담기관의 접근성과 인력을 늘리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적·인적 자원의 사각지대를 줄여 누구나 우울할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복지예산은 정치적 이슈와도 관련이 있는 사항이라 급격히 늘리기 어렵다”며 “시군구 차원에서 적절한 예산확보를 통해 관리 시설을 설립하고, 인력확보 측면에서도 처우개선비 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지 인턴기자 ej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