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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긴장 풀어 유연한 위기 대응 가능하게 해야

연세대 철학과 교수

<53> 위기때 리더의 역할

책임 규명 이유로 비난 조장 금물

중용 지키며 대응책 마련이 먼저

의연한 태도로 조직분열 방지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남극대륙을 횡단하겠다는 목표를 최초로 가진 영국의 어니스트 섀클턴은 위대한 실패를 한 사람이다. 남극대륙에 도착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배가 빙하에 끼어 좌초하고 만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 그는 갑판 위에서 짧은 연설을 한다. “자, 지금부터 각자 소지할 수 있는 개인물건은 0.5㎏을 넘지 못합니다.” 이것이 행동지침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섀클턴이 무언가를 차가운 바다에 집어 던지는 것을 다들 지켜본다. 바로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금 회중시계다. 그제야 다들 자신의 물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챙기기 시작한다.



한 대원이 자신이 가장 애지중지하던 물건 하나를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것을 섀클턴이 눈치챈다. “자네 왜 그것을 가지고 나오지 않나?” “예! 그건 무게가 좀 많이 나갑니다.” “그래도 그걸 가져오게!” “저만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가져오라면 그냥 가져오게!” 이렇게 야단을 맞고서야 가지고 온 물건은 바로 26㎏이나 나가는 ‘밴조’라는 이름의 악기다. 비록 다섯 곡밖에 칠 줄 몰랐지만 이 대원이 밴조를 치기만 하면 다들 파티를 벌여 남극의 기나긴 밤을 춤추면서 보낼 수 있었다. “여보게, 그것은 사물(私物)이 아니라 공용일세!” 리더는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탐험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섀클턴은 파선하게 되자 목표를 남극대륙 횡단에서 영국에 무사히 귀환하는 것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 달성에 성공한다. 모두 이런 기적을 이뤄낸 것은 아니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등에 칼이 꽂힌 채로 발견되기도 하고 총질을 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 비난하는 것이다. 책임을 규명한다면서 서로 비난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자멸로 가는 것이다. 리더는 적전 분열을 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자제하는 사람이다.



위기 상황에 빠지면 다들 긴장으로 스트레스 레벨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B급 리더는 이럴 때 이렇게 외친다. “야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이러다가 우리 다 죽게 생겼어! 다들 딴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는 말만 잘 들어! 알았지!” 이미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소리까지 질러대니 몸이 더 굳어질 수밖에 없다. 더 한심한 것은 딴생각하지 말고 명령만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연한 대응능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사가 긴장한 모습을 부하들에게 보이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A급 리더는 대신 위기 상황에 긴장을 풀려고 노력한다. 미국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에게 저격당한다. 가슴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다. 의사들이 수술을 준비하려고 할 때 그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이렇게 말한다. “자네들 공화당원이 맞지?” 아니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 이런 농담을 하다니. 그랬더니 의사들은 웃으면서 “각하, 이 순간 모든 국민은 하나가 돼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그 대통령은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현게(현명하고 게으른)’ 리더의 전형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결코 똑똑한 리더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장관들에게 전폭적인 위임을 한 현게 리더였다.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부하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가뜩이나 다들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졸장부다. 책임을 따지는 것은 대응책을 먼저 강구하고 난 다음 천천히,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순리다. 일단은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먼저다. 회의 때 사람들이 서로 말하려고 말다툼을 벌일 때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은 더 나서서 말을 많이 하려고 아우성이다. 리더는 이럴 때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는 사람이다. 또 웬일인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들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리더는 용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리더는 중용을 지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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