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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냐 진화냐, 원숭이 재판





1925년의 뜨거운 여름, 미국 테네시주 동부 소도시 데이턴(Dayton). 형사 재판소에서 재판장 존 라울스톤(57세)이 입을 열었다. ‘나의 의사봉은 전 세계로 울려 퍼질 것입니다.’ 판사의 말대로 재판 장면 하나하나가 그 즉시 전 세계로 퍼졌다. 유럽은 물론 중국과 일본도 이 재판을 취재 보도하기 위해 특파원을 보냈다. 재판정에 몰려든 내외신 기자 200명이 송고하는 기사에 미국 국내 전신망은 물론 대서양 해저전신의 사용량도 두 배나 늘어났다. 재판의 내용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원고는 테네시주 검찰, 피고는 기간제 고교 교사인 존 토마스 스콥스(24세)였다.

발단은 1925년 3월 제정된 버틀러 법(Butler Act). 테네시주가 ‘공립학교에서는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의 버틀러 법을 제정한 데 반발해 다윈의 진화론을 대놓고 가르치다 주 경찰에 체포됐다. 스콥스의 체포는 실제로는 ‘기획의 산물’이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많은 테네시 주의회가 버틀러 법을 통과시키자, 입법 반대운동을 펼쳐온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바로 신문 광고를 냈다. ‘버틀러 법을 법정의 심판대에 올리려 합니다. 기꺼이 도움을 주실 선생님을 찾습니다.’ 한마디로 진화론을 강의해 법정 투쟁을 벌일 지원자를 찾는다는 광고였다.

감리교인이지만 진화론을 믿고 있던 광산기사 레플리에는 광고를 보고 존 스콥스(John T. Scopes)를 떠올렸다. 공립고등학교의 과학 교사이며 미식축구팀의 시간제 코치를 맡고 있던 스콥스는 제의를 받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생물 교사인 교장이 몸이 아파 쉬는 동안 진화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레플리에는 스콥스가 강의를 마치자마자 고발했다. 스콥스는 ‘버틀러 법’ 위반 혐의로 바로 체포됐다. ACLU와 레플리에는 신이 나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렸다. ACLU는 형사재판에서 패소해 세상의 눈과 귀를 모은 다음 주 대법원에 항소해 ‘버틀러 법은 테네시 주 헌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이끌어 낼 요량이었다.

ACLU의 작전대로 스콥스 교사에 대한 재판은 초유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흥행 요소는 또 있었다. 거물급 변호사들이 대거 재판을 맡았기 때문이다. 원고인 테네시주 검찰의 변호인을 자청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 J. Byran·65세)은 대통령 선거에 세 차례나 출마했으며 국무장관까지 지낸 인물. 위드로 윌슨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다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 결정에 항의해 사임할 만큼 강한 소신으로 유명했다. 피고인 스콥스의 변론을 맡은 크라렌스 대로(Clarence Darrow·68세) 역시 시민 운동가 겸 최고의 형사 재판 전문 변호사로 이름 높았다.



거물 변호사끼리의 법정 공방은 개정 첫날인 7월 10일부터 팽팽하게 이어졌다. 브라이언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 재판은 한 세대 동안 종교에 대한 공격을 폭로하는 것이다. 만약 진화론이 승리한다면 기독교는 없어질 것이다.” 대로는 바로 받아쳤다. “검찰이 중세적 아집과 무지에 지배당한 것 아닌가. 이 재판은 스콥스가 받는 게 아니다. 문명이 재판받고 있는 것이다.” 변론 하나하나가 다 기삿거리였다. 기자들은 바쁘게 송고하고 방청객은 변론 속으로 빠져들었다. 브라이언이 변론할 때마다 ‘아멘’ 소리가 터져 나온 반면 대로의 변론에는 야유가 뒤따랐다.

재판장 라울스톤도 방청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리교 감독교회(영국 감리교에서 독립한 미국 감리교단)의 평신도 전도사였던 그는 재판을 원고 측에 유리하게 이끌었다. 김형곤 건양대 교수(인문융합교육학부)의 연구 논문 ‘스콥스 재판의 성격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세계적인 재판을 주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다. 무엇보다 미디어에 호의적이었다. 특히 사진 기자들에게 파격적으로 혜택을 줬다.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일 때에도 그는 기자들이 자신을 촬영할 때면 재판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증인 신청과 재판 진행 방법에서 사사건건 충돌한 브라이언과 대로는 실상 애증의 관계였다. 30여 년 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로 만난 게 최초의 인연. 브라이언이 이겼다. 대로는 비록 졌어도 자신이 보다 논리적이며 지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브라이언을 위해 선거전에서 최선을 다했다. 브라이언이 출마한 세 번의 대선에서 두 번은 지지하고 마지막 한 번은 ‘종교적 맹신과 무 논리성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지지를 거뒀다.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지 두 변호인은 하나에서 열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가장 크게 대립한 것은 증인 채택 문제. 브라이언이 부른 증인도 반대 신문을 펼치는 대로의 노련한 화법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브라이언의 요구로 증인대에 오른 학생들은 ‘스콥스 선생님이 진화론을 가르쳤다고 증언해 방청객들의 ’아멘‘ 소리를 자아냈다. 대로는 반대 신문에 나서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지, 진화론을 배우고도 교회에 나가는지를 잇따라 물었다. 결국 진화론에 대한 공부가 학생들의 믿음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점점 증인으로 누구를 출석시킬 것이냐를 놓고 대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정적으로 대로는 유명 과학자들을 증인으로 내세울 계획이었으나 브라이언 측의 반대에 막혔다. 과학 전문가 증인 채택이 거부된 대로 측은 증인석에 ‘종교에 정통한 사람’을 소환하겠다고 주장, 동의를 받아냈다. 대로가 요구한 종교에 정통한 사람은 바로 브라이언이었다. 마침 재판정이 너무 비좁고 무더워 재판장은 야외 그늘에서 재판을 진행한다고 선포했던 상황. 약 3,000여 명의 방청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브라이언이 증언대에 올랐다. 스콥스 재판의 하이라이트 격인 ‘성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대) 브라이언씨, 당신은 성경에 관한 상당한 공부를 하셨지요?

브) 네, 노력했습니다.

대)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까?

브)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은 거기 있는 대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대) 그러면 요나가 고래에 삼켜졌다는 것도 문자 그대로 해석돼야 하나요?

브) 내가 읽을 때는 큰 물고기였지 고래가 아니었습니다.

대)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고 거기에 사흘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육지로 올라왔다. 그럼 그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삼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습니까?

브) 난 그렇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이 그렇다고 하는 거죠.

대) 그러면 그 물고기가 보통의 물고기인지, 요나를 위해 만든 물고기인지 모른다는 말이죠.

브) 대로 씨는 진화론자니까 추측할 수 있겠죠. 난 추측을 하지 않습니다.

대) 그 물고기가 특별히 사람을 삼키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말할 준비가 안 됐다는 겁니까?

브)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도 말할 준비가 안 된 겁니다.

대) 그렇지만 신이 만들었다는 것은 믿겠죠?

브) 네. 한 가지 더 말하죠. 하나의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믿는 것과 똑같이 쉽죠.

대) 똑같이 어렵지 않고요?

브) 당신에게는 어렵겠지만, 나에겐 쉽습니다.

대) 요나가 고래를 삼켰다는 것을 믿는 만큼 쉽습니까?

브) 만일 성경이 그렇다면요. 성경은 진화론자들이 하는 그런 극단적인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대) 성경이 여호수아에게 태양이 서 있도록 명령했죠, 그리고 그걸 믿고요.

브) 믿습니다.

대) 그 당시에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믿습니까?

브) 아니오,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믿습니다.

대) 그렇다면 태양을 서게 해서 낮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믿습니까?

브) 그들이 생각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대) 모른다고요?

브라이언 외에 다른 원고 측 변호사들이 항의했지만, 브라이언은 증언을 계속하겠다고 자청했다. 질문은 ‘노아의 방주’로 넘어갔다.

대) 홍수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습니까?



브) 네.

대) 홍수가 언제였죠?

브) 날짜를 고정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대) 기원전 4004년경입니까?

브) 그것은 한 사람이 추정한 것으로 현재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난 그것이 정확하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 그 추정이 성경에 적혀 있습니까?

브)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난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추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 그렇지만 성경 자체가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어떻게 나온 것인지 모르십니까?

브) 난 계산은 하지 않습니다.

대) 무엇부터의 계산이요?

브) 말할 수 없습니다.

야외 재판정에는 웃음이 번졌다. 야유에 가깝던 ‘아멘’이라는 합창과 대로를 조소하는 방청객 분위기가 브라이언에 대한 웃음으로 변해갔다. 대로에게 보내는 박수 소리도 들렸디.

대) 구경꾼들로부터의 큰 박수군요.

브) 당신들이 촌놈(Yokel)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대) 난 결코 촌놈이라고 한적이 없습니다.

브) 그건 테네시주에 대한 무지요, 고집쟁이 양반.

대) 당신에게 박수 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브) 그들은 당신이 모욕하고 있는 사람들이요.

대) 당신은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고 믿나요?

브) 물론 믿습니다.

대) 그럼 카인은 어디서 아내를 데리고 왔지요?

브)……

대) 뱀이 이브를 유혹한 벌로 평생 기어 다니게 됐다는 데 벌 받기 전에 뱀은 어떻게 다녔죠?

브)………

대) 당신은 지구의 나이가 얼마나 됐다고 보나요?

브) 천지 창조에 따르면 한 6,000년 됐습니다.

대) 석기시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집트나 중국의 문명은 6,000년 이상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하나님이 지구를 6일 동안 창조했다고 믿나요?

브) 난 그것이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하루’는 ‘일년’ 아니 ‘천년’을 의미했을 겁니다. 어쩌면 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지구를 6일 동안 만들었건, 6년 동안 만들었든 6백만년 동안 만들었든 , 6억년 동안 만들었든 간에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것을 믿던 저것을 믿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브라이언은 대로가 원했던 함정에 빠져들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브라이언의 입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브라이언 이를 깨닫고 반격하려던 순간 재판장이 논란을 중지시켰다. 재판이 속개된 7월 21일 아침 9시, 대로는 배심원들의 즉각적인 평결을 요구했다. 9분 뒤 평결이 나왔다. 유죄. 재판장은 최소한의 벌금형인 100달러를 매겼다. 한 여름 무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던 논쟁도 끝났다.

테네시주 교육위원회는 스콥스를 다시금 교사로 임용했다. 논란의 파급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돌았다. 스콥스는 평생을 무명으로 조용히 살아갔다. 변호사 대로는 뉴욕으로 돌아갔다. 재판장 라울스톤은 은퇴한 뒤 강연 여행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 겉으로는 스콥스 재판에서 이겼지만 내용에서는 완패한 브라이언은 재판이 끝나고 닷새 뒤인 7월 26일 저녁 잠자다 죽었다. 사람들은 브라이언의 사망 원인이 논쟁에서 패배한 후유증이라고 여겼지만 폭식으로 인한 배탈로 죽었다.

실시간으로 보도된 재판 과정을 통해 대중은 오직 성서의 문구에만 근거해 진화론을 비판하는 논리가 편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도 테네시주 교육위원들과 교과서 출판업자들은 오히려 진화론을 꺼렸다. 논란에 휘말리느니 조용 조용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급사한 브라이언의 동지들은 인근 주들에서 버틀러 법과 비슷한 법을 잇따라 만들었다. 미국의 창조론자들은 교과서 출판업자들에게 압력을 넣어 진화론을 대부분 삭제했다.

변화가 생긴 것은 1957년.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의 과학 교육에 비상이 걸렸다. 교과서에 다시 진화론이 실리기 시작했고 창조론은 교실 밖으로 밀려났다. 1967년 테네시 의회는 스콥스를 체포한 버틀러 법을 폐기했다. 세기의 재판에서 사실상 패배한 뒤에도 42년을 존속했던 것이다. 그만큼 창조론의 뿌리가 깊다. 진화·창조 논쟁은 이때부터 새롭게 변했다. 전반적으로 창조론이 위축됐으나 1990년대 지적설계론이 나오는 등 창조론 자체도 변화를 겪었다.

물론 아직도 극단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교파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도 ‘기독교 파시즘(Fascism)’이라고 비판받는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스콥스 재판 92주년. 종교와 과학이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공존할 길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외국에서는 그런 길을 모색하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요원해 보인다. 일부 대형 교회들은 갈수록 기독교 근본주의, 기독교 파시즘으로 향하는 조짐이다. 걱정이 앞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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