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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위기는 새롭게, 더 강하게 온다

손철 뉴욕특파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87일째다. 새삼 ‘국민의 시대’가 열린 지 얼마나 됐나 하고 따져본 것은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얼마 전 임기 6개월을 넘길 때 확 바뀐 미국의 모습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총득표는 286만여 표가 뒤졌지만 미국 대선 특유의 승자독식 선거인단제도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는 지도자 한 명이 바뀌면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이념과 당파·인종으로 나뉜 미국의 분열이 증폭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전 세계 외교·안보와 동맹의 지형이 반년 만에 급변했다. 트럼프의 미국은 설마 했던 파리기후협정에서도 탈퇴했고 주요20개국(G20)이 별 성과 없이 만나도 매번 확인하던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마저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어젠다로 전락시켰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과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 속에 출범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 경험과 10년 전의 실패들을 반면교사 삼아 순항하는 듯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너무 급격히 선보여 적잖은 반발도 샀던 ‘탈권위’를 문 대통령은 시대적 요구 속에 세련되게 소화해 높은 지지율의 초석을 놓았다. 검찰 개혁이나 적폐 청산도 10년 전과 달리 권력의 기술을 활용해 첫 단추는 잘 끼웠다는 평가다.

하지만 최근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된 탈원전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해 국정운영에 대한 ‘진보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우려가 해외에서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특검 수사와 야당의 탄핵 압박 속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만을 노린 채 설익은 대선 공약들을 강행해 권력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행태를 연출한 것을 한국의 새 정부가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 운영이 대선 캠페인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을 통해 이미 실감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파장이 큰 정책들을 별다른 대책 없이 속도전으로 쏟아내 국정운영에 대한 불안감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대선 당시 사드 배치를 백지화라도 할 태세였던 문 대통령은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사드 배치를 앞당겨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의 갈등은 누그러지기는커녕 확대되며 중국의 치졸한 사드 보복이 장기화하고 더욱 집요해지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존망이 걸린 북핵·미사일 위기를 미국의 힘에 상당 부분 의존해 해결해야 할 처지여서 트럼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요구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대선에서 패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미FTA 재협상 결과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한 배경도 한미FTA 개정 협상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폭발력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가 뻔한 정치적 의도를 숨기며 한미 간 무역수지 역조에만 집중해 FTA 재협상을 요구한 것은 부당하기 짝이 없지만 북핵 위기 해결에 한미FTA 재협상이 전략적으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미국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여당이 과거 한미FTA의 독소조항이라고 수없이 반발했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굳이 바꾸자고 할 필요도 없고 미국 자동차나 농축산물이 수입 시장에서 유럽·중국 등 경쟁국보다 좀 더 유리해지도록 한두 걸음 양보하는 것도 고려하지 못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국 최대 농민단체가 미국의 이익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하며 “촛불 혁명의 배신”이라고까지 지적한 인사를 과거의 인연에 갇힌 채 또 통상교섭본부장에 기용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한미FTA 재협상은 트럼프가 설령 턱없는 요구를 해도 협상 수뇌부가 신뢰감 속에 국민 여론과 잘 소통할 수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국내 정치적인 요소가 지대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한미FTA의 닻을 올렸지만 이것이 정권을 내주는 불씨가 됐다. 위기는 새로운 얼굴로 더 강하게 오는 법이라는 교훈을 되새길 때다.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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