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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시각장애인도 똑같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도록 정보접근 문턱 낮춰야죠”

박영숙 에이티랩 대표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스크린 리더기 '샤인플러스' 등 여러가지 소프트웨어 개발

시각장애인들이 정보 취약 계층에서 벗어나는 그날까지

박영숙(오른쪽) 에이티랩 대표와 김정 기술이사가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를 소개하고 있다./백주연 기자




“날씨, 카메라, 갤러리, 카카오톡….” 스마트폰에서 ‘샤인플러스(Shine Plus)’ 기능을 실행한 후 화면을 가볍게 톡톡 치자 폰에서 텍스트를 읽어 내려간다. 샤인플러스는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스크린 리더기 앱이다. 텍스트 읽기 기능 뿐만 아니라 글자 확대 모드를 이용해 스마트폰 내 텍스트를 크게 볼 수 있다. 사물의 색깔이나 형체만 보이는 저시력자들이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뉴스 기사를 읽거나 카카오톡 메세지를 확인하는 등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다.

박영숙 (사진) 에이티랩 대표는 시각장애인들도 똑같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도록 정보접근 문턱을 낮추는 비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미군 부대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직원

박 대표는 서울 용산 미군 기지에서 약 30년간 IT 관련 업무를 맡아 근무했다. 90년대 초반 함께 일하던 직원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조견과 함께 다니며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는 게 박 대표 눈에는 마냥 신기했다. 자세히 보니 컴퓨터 화면에 있는 글자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었다.

“그게 뭔지는 잘 몰랐지만, 미국 사람들은 정보기술(IT)로 장애인을 돕고 똑같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인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고 직장을 구한다는 생각도 못할 때니까요.”

미국인 시각장애인 직원은 비(非)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리를 다 주장했다. 눈이 안 보이는 불편함으로 인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요구했다. 미군은 그가 보조견을 편안히 데리고 있을 수 있도록 사무실도 따로 만들어주고 엘리베이터를 증축해줬다.

IT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박 대표는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처음 들어오는 제품들을 테스트하는 일을 했다. 이미 터치 스크린, 음성인식 기술이 보급되고 있었다. 박 대표는 미국의 새로운 기술과 시각장애인 직원이 사용하는 제품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캄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생각나서였다.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꿈의 씨앗이 그녀의 마음 밭에 심어진 것이 이때부터다.

◇ 50살 넘어 펼쳐진 ‘인생2막’, 사회복지 대학원에 진학하다

미군 부대에서 미국인들과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저녁에 퇴근하면 아이들 밥을 해주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적당한 월급을 받으면서 계속 일할 수 있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2% 부족한 느낌이 늘 있었다. 50살이 된 어느날,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내가 죽을 때 아이들과 가정에 내 인생을 쏟은 게 전부인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So what?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결심 하나로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복지 대학원에 진학했다. 평생 궁금해했던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엿보기 위한 심산이었다. 사회복지 쪽 공부를 하면 장애인들과 연결고리가 생길 것 같았다.

“미군 부대에서 일할 때 그 시각장애인 직원이 당당하게 직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 보였고 왜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일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죠. 사회복지 대학원에 진학해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주제로 연구하고 그런 시스템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논문을 쓰며 시각장애인의 삶을 느끼다

장애인이 아닌 박 대표는 그들의 삶부터 공부해야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시각장애인 중 최고의 프로그래머를 찾았다. 지금의 김정 기술이사다. 시각장애인 음성도서관에서 일하던 김 이사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생활 속 어려움이 뭔지,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뭔지 알고 싶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도 물었다. 책이나 인터넷 정보로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보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직접 알려달라고 했다.



2009년 3월 그렇게 박 대표와 김 이사는 만나게 됐다. 일주일에 2번씩 서울 명동에서 만나 칼국수 한 그릇 먹고 6시부터 10시까지 카페에 앉아 스터디를 했다. 장애인의 삶을 조금씩 느끼게 되면서, 정보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e러닝 학습 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e러닝 학과에 입학해 다녔다. 하루에 4시간도 채 못 자면서 대학원 두 곳 과정을 소화해낼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솔루션을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였다.

김정 에이티랩 기술이사가 직접 ‘샤인플러스’ 기능을 실행해 보고 있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자 폰에서 화면 내 텍스트를 읽어내려간다./백주연 기자


◇시각장애인들도 스마트폰 혜택 누릴 수 있도록 ‘샤인플러스’ 개발하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2010년 마침내 에이티랩을 창업했다. 박 대표는 “2010년 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획기적으로 변했어요. 뉴스 확인, 책 읽기, 음악 듣기 등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손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졌죠. 하지만 이 혜택은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어요.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을 고민하는 기업은 없었죠.”

애플에서 처음으로 ‘화면 읽어주기’ 등 시각장애인용 기능프로그램이 나오고 앱도 개발됐지만 기능을 끄고 켜는 것이 불편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 당시 삼성과 LG 등 국내 스마트폰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박 대표는 시각장애인용 PC 스크린 리더 개발 경험이 있는 김정 기술이사와 함께 안드로이드용 스크린 리더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에 애플이나 구글에서 나온 기능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한번 동작하면 꺼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 읽어주는 것을 다 듣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외부에서 이 기능을 사용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은 전혀 보호받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중간에 기능이 꺼지는 것도 시각장애인들은 두려워했다. 다시 화면 읽어주기 기능을 켜기 위해서 스마트폰의 어느 부분을 터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판매자 입장이 아닌 제품을 사용할 시각장애인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연구 끝에 탄생한 샤인플러스(Shine plus)는 안드로이드 기반의 다양한 기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것만으로 읽어낸다. 앱과 화면에 나타난 모든 텍스트를 읽어내고 멈추기도 한다.

◇전세계 시각장애인들이 정보 취약 계층에서 벗어나는 그날을 꿈꾸며

에이티랩은 스마트폰 스크린 리더 외에도 시각장애인용 교육앱이나 사진앱 등 25종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국내외 특허만 13개에 달한다. 현재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에 소프트웨어를 수출하고 있다.

박 대표는 장애인용 휴대폰, 태블릿pc, 시계 등 하드웨어를 따로 만드는 보조공학 기기의 가격을 낮춰 많은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날을 꿈꾼다. 일일이 따로 만들지 않고 일반 제품에 에이티랩의 소프트웨어를 깔기만 하면 한 번에 각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장애인 용품이 비싸서 많은 장애인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요.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보급해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 그들이 정보 취약계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겁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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