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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실] 원전 공론화 성공하려면?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탈핵·사후핵연료 등 2·3차 공론화로 이어져야죠

  • 2017-08-15 17:42:52
  • 사외칼럼
[경제교실] 원전 공론화 성공하려면?
요즘 공론화가 화두입니다. 공론화는 공동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깊이 의논하며 한 시대의 정론(正論)을 형성해가는 과정이죠. 그런데 이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관점과 의견을 섞다 보니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특히 우리처럼 공론화가 아니라 고도로 숙련된 관료제의 효율성에 익숙해진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그래서 ‘어설픈’ 공론화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공론화는 원래 이런 겁니다. 공론화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시도이니 ‘설왕설래’하고 ‘갑론을박’하며 어느 것이 길인지 그 길로 어떻게 갈 것인지, 헤집고 찾으며 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신고리 원전 공론화의 성공을 기원하며 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설왕설래’와 ‘갑론을박’을 살펴보니 공론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의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겠더군요.

첫째, 이번 공론화는 ‘답정너’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는 것이죠. 이미 탈핵을 공약한 정부가 원전 폐쇄 여부를 국민들에게 묻는 것은 시늉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럴까요. 공사를 계속하자니 탈핵을 주장하는 지지기반(환경단체)의 압력이 무겁고 백지화하자니 매몰 비용에 대한 책임이 가볍지 않은 정책적 딜레마 상황에서 공론화가 어느 쪽으로 귀결되든 정부는 잃을 게 없습니다. 공론화 결과가 공사 계속이면 지지기반의 압력을 중화시킬 것이고 백지화면 2조6,000억원의 매몰 비용에 대한 책임을 벗을 수 있으니 정부에는 공론화가 양날의 칼이요, 편리한 면죄부가 아닐까요. 그러니 정부가 밉다고 공론화 자체의 유용성을 부정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똑같은 정책 딜레마의 상황에 처했을 때 모든 정부가 자신이 독점하는 의사결정권을 개방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것은 나름 불확실한 미래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일인지라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단순한 중론(衆論)이나 여론(與論)이 아니라 공론을 형성해 정책 결정을 하겠다는 발상은 한국 행정에서 분명 새로운 시도입니다. 우리가 큰 박수로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그 ‘뻔한 저의’를 새삼(!) 의심하며 훼방 놓을 일은 아니라는 거죠.

[경제교실] 원전 공론화 성공하려면?
☞ 비판만 해선 논의 어렵죠

‘답정너’ 공론화란 지적 있지만

신고리 폐쇄 놓고 대립 치열

결과가 어떻든 정부엔 큰 부담

의사결정권 개방에 의미 둬야

☞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전 공사재개·백지화 따진 후

본질적 에너지 전환 논의 필요

기한 1년이상으로 충분히 잡되

주민·전문가·기업 등 모두 참여

공익 관점서 함께 미래 그려야

둘째, 그러니까 공론화를 할 거면 탈핵을 주제로 해야지 신고리 원전만 딱 떼어 논의하는 것은 ‘속 보이는 짓’이라는 반론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요, 공론화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공사 재개나 백지화를 논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에너지믹스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탈핵으로 가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데요, 정부가 원전 공론화는 지금 이대로 진행하되 시민참여단의 요청이 있을 경우(!)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두 번째 공론화를 기획하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1~2년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말입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도 여기에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으니 정부로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게죠. 이를 거부한다면 원전 공론화는 두고두고 반쪽짜리 공론화의 오명을 못 벗을 겁니다. 이번 공론화가 “한 시대의 정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등극하지 못하고 정책적 딜레마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 ‘꼼수’로 자리매김 된다는 거죠. 지난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파행됐던 이유도 이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공론화 과정에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지역주민을 다 빼버리고 일반시민들만 참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의견입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그런데 에너지 정책 같은 국가적 이슈는 개인의 사익이 아니라 공익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전체 사회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지라 사익에 노출된 이해당사자들은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것이 논의의 수월성을 높입니다. 그렇다고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자력 공학자들은 물론 기업인들과 지역주민이 경쟁하는 다른 집단들과 함께 활발하게 공론형성 과정에 참여하며 쟁점에 따라 찬반의 균형 잡힌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시민참여단에 가장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숙의 환경을 조성해주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 체크로도 규명하지 못하는 지식의 불확실성과 과학기술의 불안정성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입니다. 정보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으로 생겨난 판단의 공백은 우리 국민(시민참여단)의 가치와 선호가 메꿀 겁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한국 사회의 좌표인 것이죠. 원전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지금은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할 때가 아닐지요.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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