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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진천 아리랑’ 가수 전가연 “생거진천에서 인생 2막 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 한국인이라면 요람에서부터 배운다는 ‘아리랑’. 민초들의 삶이 투영된 아리랑은 사랑, 이별, 애환 등 희노애락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아리랑은 여러 세대에 걸쳐 민중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회자되는 ‘진천 아리랑’은 개인의 창작물이자, 삶의 애환보다 진천지역의 빼어난 자연환경과 지역 곳곳에 숨겨진 문화적 유산을 소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보통 아리랑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듯, ‘진천 아리랑’은 진천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고 역시나 한 마음으로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진천 아리랑’ 가수 전가연




‘차령산맥 줄기따라 이어진 내고향 / 생거진천 산수풍광 전설의 고장 / 천년세월 흐름속에 지켜온 농다리 /하늘다리 초롱길이 장관이구나(중략)’

‘진천 아리랑’의 한 구절이다. 아름다운 충청북도 진천을 민요풍으로 노래한 이 곡은 가장 현대적인 아리랑인 셈이다. 이 노래를 부른 화제의 주인공은 트로트가수 전가연이다. 데뷔 20년을 훌쩍 넘긴 전가연은 TV나 방송에선 잘 볼 수 없지만, 한때는 전국 각지의 지역 축제나 행사에 빠지지 않는 인기가수였다.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8월 초, 서울 영등포에서 전가연을 만났다.

전가연은 전라북도 출신이다. 생활은 주로 서울에서 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전라도 사람이 충청도 지역 아리랑을 만들고 부를 수 있게 됐을까.

“우연한 만남으로 진천에 왔는데, 타 지역에선 그 흔한 ‘진천 아가씨’라는 노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진천을 대표하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가사를 쓰려고 농다리, 하늘다리, 보탑사 등 진천에 있는 유명한 곳을 두루 두루 다녔어요. 직접 현장을 가서 보니 저절로 노랫말이 바로 바로 떠올라서 곡을 만들게 됐어요.”

타지 사람이지만, 전가연의 진천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곡이 탄생하기까지 진천의 토박이들의 공이 컸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진천군지회의 도움을 받아, 노랫말 하나하나 검증을 거쳤다. 특히 진천가수협회 이강선 회장과 진천예총 박철호 사무국장이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또, 대금 연주자 장기호 선생이 직접 작곡을 맡았고, 실제 대금을 연주해 곡의 격을 높였다는 평가다.

전가연은 3남 2녀 중 막내딸로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6살 되던 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 ‘쑥대머리’ 창을 유난히 잘 하신 아버지를 필두로, 언니 오빠들은 각종 쿵쿠르대회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한 노래’하는 집안이었다. 전가연이 가족들 중에서 가장 노래를 못했을 정도라고.

‘진천 아리랑’ 가수 전가연.


전가연은 1998년 ‘남인수서정가요제’에서 은상을 받고, 이후 솔로음반 <디데이>를 내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가수가 꿈이었던 전가연이 꿈을 이룬 순간이기도 하다. 그녀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사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부터도 밤무대 라이브카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가수 데뷔 전후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많이 울려 퍼지는 메들리 음반도 많이 냈다. 메들리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노래도 느는 게 느껴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광버스 기사 분들 중에 광팬이 많다.

영원한 오빠 ‘조용필’처럼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 누군가에게 힘이되고 싶었던 전가연. 2000년대까지는 수많은 행사에 불려가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터진 각종 국가적 악재 등으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20년 넘도록 오로지 노래만 했어요. 주위에서 그만하라고, 내려놔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버텨왔는데, 제대로 된 한곡도 띄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더군다나 소속사나 별도의 벌이 없이 혼자 가수활동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있지만, 전가연이 더욱 아쉬워하는 건 따로 있다. 전가연은 “제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찾지 못했어요. 저는 민요풍에 퓨전형식을 가미해서 부르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고요. 제 노래 스타일을 깨닫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전가연은 자신이 노래할 수 있는 곳이 어디든 달려간다. 10년 넘게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연예인들로 구성된 ‘파랑새’ 모임을 통해 쪽방촌과 요양원, 군부대 등 그곳이 강원도 산골짜기라도 마다하지 않고 노래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진천 아리랑’ 가수 전가연


전가연은 현재 진천군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진천군과 지역민을 위해 3년동안 노래로 봉사활동을 많이 한 덕분이다. 군 행사와 명절 때는 행사를 기획해, 가수 30~40명을 직접 섭외하는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보통 20~30년 된 인연들이다. 초청비용은 없다. 전가연만을 믿고 온 동료 가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이라도 진천에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진천에 살았지만, 완전한 정착은 아니었어요.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군수님께 ‘홍보비 지원해 주면 바로 이사 가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전가연의 진천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녀가 진천에 남으려고 하는 이유는 진천이 단순히 살기 좋은 자연풍광과 인심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천 아라랑’을 부른 가수로 더 홍보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다.

“진천 주민들이 ‘왜 행사 때만 왔다 가느냐’ 그래요. 그러면서, 노래교실에서 ‘진천 아리랑’도 알려 달라는 요청이 계속 왔어요. 안갈 수가 없더라고요. 내 노래이기도 하고, 진짜 주인공인 진천 지역주민들을 위한 노래잖아요. 이제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진천에서 승부를 한번 봐야하지 않을까요.”

/글·사진=서경스타 안신길 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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