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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연금받는 종신보험'? '속여팔기' 보험사들 과태료 급증







#10개월 전 이진영(가명)씨는 한 보험설계사로부터 ‘신용카드 실적이 쌓여 비과세 혜택이 있는 보험상품에 가입할 자격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고 월 11만7,000원짜리 보험을 새로 들었다. 안 그래도 노후 걱정에 연금상품을 알아보려던 차에 ‘연금 받는 종신보험’이란 이름에 한 번, 보험설계사의 설명에 두 번 솔깃했다. 최저보증이율이 높아 은행 예·적금보다 더 좋은 이율로 저축할 수 있는데다, 나이 들어 연금으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사망보장도 된다는 얘기였다. 보험설계사의 설명만 들으면 연금은 물론 저축, 사망보장까지 한 번에 되는 ‘만능’ 상품인 셈이다.

하지만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험을 깨려던 이씨는 “지금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을 900원밖에 못 받는다”는 보험사의 설명을 듣고 황당해졌다. 이씨가 ‘저축성 연금보험’인 줄 알고 가입했던 것이 사실은 ‘보장성 종신보험’이라서 해지환급금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알고 보니 ‘진짜’ 연금보험보다 나중에 받게 되는 연금수령액도 훨씬 적었다. 이미 120만원 가까이 납입했지만 전화통화로 가입하면서 계약서도 받지 못했던 이씨는 보험사의 책임을 입증할 길이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진영씨는 전형적인 보험사 ‘불완전판매’의 피해자입니다. 지난해 1~9월 동안 금융감독원에 들어온 종신보험 관련 민원 4,265건 중 절반 이상(53.3%)은 진영씨처럼 “연금보험인 줄 알고 가입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민원이 폭증하자 감독당국도 지난해부터 감시망과 제재를 더 강화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18일 생명보험협회 민원 공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에도 ‘보험사의 불완전판매에 당했다’는 소비자 민원은 회사별로 전 분기보다 최대 40%까지 늘어났습니다.

불완전판매란 금융회사들이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이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무조건 팔고 보는’ 관행을 뜻합니다. 물론 불법입니다. 금융당국에 적발되면 최대 1억원까지 과태료를 물게 되지만, 이 같은 보험사들의 불법 영업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실제 올해 1~7월 동안 금융당국이 전체 금융회사들에 내린 과태료 부과 조치 총 108건을 뜯어보니 그중 49건이 보험사의 불법영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전체의 45% 수준입니다. 불완전판매는 물론, 보험설계사가 실적을 늘리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보험계약을 대거 모집하거나 보험에 가입하는 대가로 백화점상품권을 몰래 주는(리베이트) 등 불법영업은 그 형태도 다양합니다.

이처럼 불법적으로 보험을 팔다가 과태료를 받은 사례는 매년 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전체의 35%, 2016년에는 38%로 증가세가 이어지다가 올해는 45%로 훌쩍 뛰었습니다.

◇과태료 ‘철퇴’에도 계속되는 보험 불법영업

금융당국의 제재 강화에도 보험사의 불법영업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더 많은 판매수당을 받고 이른바 ‘보험왕’이 되려는 일부 보험설계사들의 욕심도 물론 있습니다. 진영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종신보험을 연금보험으로 속이고 팔면 훨씬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설계사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를 포함해 종신보험의 사업비는 보험료의 25~30%에 달합니다. 보험료의 10~12%에 불과한 연금보험 사업비의 3배 수준입니다. 그만큼 설계사에게 돌아가는 수당도 더 많아집니다.

하지만 이처럼 보험사의 불법영업이 판치는 것을 개인의 욕심이나 일탈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보험업의 영업환경이 변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보험료가 높은 종신보험 가입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종신보험은 보험사 입장에서 수익성이 좋은 상품입니다. 하지만 사망보험금을 남길 가족이 없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종신보험 인기는 사그라드는 추세입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종신보험은 개인보험의 절반(50.98%)을 차지했지만 2011년 38.4%, 2012년 35.6%로 계속 비중이 떨어졌습니다. 2016년에는 47%까지 회복됐지만, 이것도 보험사들이 종신보험에 변액보험이나 연금전환 기능 등을 추가하고 보험료를 대폭 낮춘 결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업 국제 회계기준이 종신보험 같은 보장성 보험을 많이 팔아야 유리하게 바뀌는 것도 보험사들에게는 딜레마입니다. 오는 2021년부터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시행되면 보험사들은 저축성 상품보다 보장성 상품을 많이 팔아야 보험부채 시가평가에 유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IFRS17 도입을 앞두고 보장성 보험을 꾸준히 늘릴 수밖에 없다”면서 “보장성 보험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연금 받는 종신보험’처럼 이런저런 기능을 추가하다 보니 불완전판매에 대한 민원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팍팍해진 살림살이…보험 깨는 사람들



무엇보다 가계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보험 깨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보험사 영업환경에 악재입니다. 18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5개 생명보험사가 올해 1·4분기에 지급한 해지환급금(보험계약 해지시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돈)은 총 5조4,856억원이었습니다. 2014년 1·4분기 4조3,465억원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보험을 중간에 깨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원금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보험을 깨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해 1~9월 중 보험계약 중도해지로 소비자가 원금손실을 본 금액(총 납입 보험료에서 해지환급금을 뺀 금액)은 총 3조2,472억원이었습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4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진영씨와 같은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감시망을 더 촘촘히 하고 제재 수위도 높이겠다는 입장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 보험사들이 종신보험을 연금보험으로 속이고 파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상품설명서에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의 비교 안내를 의무화 하고 보험안내자료를 시정토록 했습니다. 또 16일 금융위원회는 오는 10월부터 보험회사가 보험업법상 약관이나 상품설명서, 보험료·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 등 기초서류 준수의무를 위반할 때 매기는 과징금을 해당 계약 수입보험료의 20%에서 5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영업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무엇보다 보험사의 자율적인 시정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금융위가 이번 보험사 제재 강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보험사가 위반 행위를 자진 신고하거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면 과징금 감경 비율을 기존 20%에서 각각 30%, 50%로 올릴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러한 취지입니다. 금감원 보험소비자보호실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등 불법영업의 소지가 있는 보험설계사들은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에 크게 기여하는 직원이다 보니 내부통제가 약할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다”면서 “금융당국도 점검과 제재를 강화하겠지만 무엇보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통제하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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