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윤철호 출판문화협회장 "출판은 콘텐츠산업 뿌리...20년 된 정책 틀에 가두지 말라"

[서경이 만난 사람]

디지털 중심 문화진흥정책으로 출판은 사양산업 내몰려

전문성 결여된 문체부·출판진흥원 등 관료 조직도 문제

출판 유통구조 선진화·진흥기금 1조 조성 관철 힘쓸 것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인터뷰/권욱기자




“출판은 사양산업이 아닌 콘텐츠 산업의 뿌리입니다. 생명을 연장하는 수준의 출판정책을 탈피해 지금이라도 콘텐츠 정책의 새판을 짜야 합니다.”

지난 2월 제49대 회장으로 취임한 윤철호(56·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 회장은 출판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독설가다. 출판계의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다. 14일 서울 종로 출판문화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윤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 관료조직의 문제점은 물론 분야별로 나뉘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업계 내부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 우선 윤 회장은 “출판산업을 사양산업으로 취급하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콘텐츠 산업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출판계는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디지털 중심 문화산업진흥정책으로 제대로 된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체부 조직도를 보면 영상ㆍ게임ㆍ대중문화 같은 콘텐츠는 콘텐츠정책관이 다루지만 출판은 미디어정책관 산하에 있다. 그는 “이런 조직배치 자체가 출판을 20여년 전 프레임에 가두고 콘텐츠 중심의 산업이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대담=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정책설계의 출발점부터 잘못됐다면 그 결과 역시 온전할 리 없다. 윤 회장은 “2000년 초반부터 정부의 문화산업 일변도 정책과 게임 등 온라인 위주의 정책 방향 때문에 출판은 갈수록 소외됐다”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출판을 제외한 만화·스토리·캐릭터·게임 등에만 관심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소비 패턴을 따라잡지 못한 업계 자체의 잘못에 더해 이를 극대화한 정부의 정책적 오류가 누적돼 오늘의 사태가 빚어졌다는 지적이다.

행정관료들의 편의에 따라 분절된 방식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다 보니 시장에서는 정책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수요를 창출하는 출판사를 키우면 자연스럽게 독자가 육성되는데 지금은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과 소비·유통을 분절해 정책을 마련하고 지원하다 보니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하루빨리 관 주도의 문화정책을 탈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콘텐츠 산업 규모가 100조원에 달하는데 콘텐츠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관료는커녕 정치 엘리트조차 없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문화예술을 아는 것과 문화산업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술인을 문체부 수장으로 앉히면 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화산업정책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죠.”

앞서 윤 회장은 블랙리스트 집행기관의 수장들과 고위직급 인사들에 대해 책임을 엄중히 물어 퇴진시켜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그가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던 출판문화진흥원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발생한 후 아직까지 정확한 진상조사조차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그런 의미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산하 기구 단체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며 “우선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과 관련자들, 그리고 운영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그에 책임 있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의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지난 정권에서 빚어진 블랙리스트 사태가 출판진흥원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그가 진흥원의 구조개혁을 끈질기게 주문하는 이유다. 윤 회장은 “출판산업진흥원은 전신이 간행물윤리위원회로 유신정권 때 검열기구로 만들어진 단체”라며 “1990년대 이후 존립 가치가 없어진 것을 출판산업 진흥을 위한 단체로 바꿔 점진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랐지만 2013년 첫 원장부터 낙하산으로 영입돼 출판인들의 불만이 컸는데 이후 인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현재의 진흥원 사업과 인력을 보면 출판산업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상상력도 없어 보입니다. 사실상 세종도서는 출판진흥 예산이 아니라 도서관 예산이고 간행물윤리위 예산, 진흥원 직원들 월급 빼고 나면 출판진흥 예산은 수십억원 수준이죠. 문화산업과 출판산업을 함께 아우르는 그랜드플랜 마련이 시급합니다.”

올 초 출판계는 국내 2,000여개의 출판사와 거래하는 2위 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 사태로 큰 혼란을 겪었다. 현재는 인터파크의 인수로 사태가 수습됐지만 잘못된 관행으로 점철된 출판 유통구조를 선진화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에 대한 복안을 묻자 윤 회장은 “송인서적은 교보문고나 예스24 같은 대규모 유통조직과 달리 지방 서점 등 소규모 서점과 거래했던 곳으로 우리 출판 유통구조의 가장 영세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며 “송인서적을 인수한 인터파크 역시 상생과 유통 선진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출판계와 꾸준한 협의를 통해 새로운 유통 모델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라인 서점 3위 업체인 인터파크가 송인서적을 통해 다양한 유통혁신에 나서면서 이들이 내세우는 상생 모델을 대형 출판사에 확산시키는 것이 업계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윤 회장은 “오는 2019년 3월 서점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되면 그간 점포 수를 늘려온 알라딘·교보문고·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들의 영업력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형 중고서점의 무분별한 확장을 포함해 대형 서점의 점포 확대, 라이프스타일숍 형태를 띤 서점의 증가 등이 출판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따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출협은 이달부터 기업형 중고서점 확대가 출판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로 하고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에게 연구용역을 맡겼다. 연내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출판 업계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윤 회장이 출판계 선진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또 한 가지 과제는 출판물에 대한 권리 보호다. 특히 5월에는 업계가 나서 미비한 저작권법 보완을 요구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선진화추진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현행 저작권법은 20여년 전에 만들어져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공공도서대출권·판면권 등 선진국에선 오래전부터 도입돼 있는 권리들을 국내에도 도입할 수 있도록 출판계가 먼저 공부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올 초 선거 당시 출판진흥기금 1조원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데 대해 “독서나 출판 콘텐츠에 대한 투자, 서점 활성화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데도 정부의 예산 배정이 부족해 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당장 예산을 늘리지 않더라도 출판인 스스로 기금을 만들어 출판 진흥에 나서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는 영화 티켓 가격의 3%를 기금으로 조성한 영화발전기금을 모델로 한다. 현재 출판계의 연매출 규모를 약 4조원으로 보면 1%만 조성해도 매년 400억원을 적립할 수 있다. 그는 “기금운용기구를 선정하는 문제부터 아직 논의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업계·정부와 논의해 임기 중이 아니더라도 관철될 수 있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7월부터 도서구입비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적용되고 최대 15% 할인을 허용하는 현행 도서정가제의 연장시행 결정까지 출판 업계의 과제로 남아 있던 굵직한 현안들이 하반기 들어 대부분 정리됐지만 그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은 여전히 산적해 있다.

우선 출판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도서구입비 세제혜택이 마련됐지만 연간 100만원의 소득공제항목 신설로 당초 출판계가 요구했던 세액공제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윤 회장은 “출판 수요 창출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되지만 출판계가 요구했던 세액공제의 기대 효과에 비하면 5분의1 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세액공제로 바꿀 수 있도록 앞으로도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 업계가 요구해왔던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을 유예하고 앞으로 3년간 현행 도서정가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시장 진통을 감안해 업계가 한발 양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윤 회장은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서점이 줄어드는 추세는 막았고 경영난에 시달리던 출판사들도 숨통이 틔었다”며 “그러나 현재까지의 성과만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판단해 앞으로 3년간 국민들에게 도서정가제의 취지와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리=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