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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롯데마트 썰렁...근처 카르푸 북적...'수교 25주년' 거꾸로 가는 한중 관계

사드 보복에 진출기업 벼랑끝

"中 잇단 압박 견뎌낼 재간 없어"

중기 공장 폐쇄·지방 이전 신세

韓기업 코리아 프리미엄 퇴색

삼성 스마트폰 시장 선두 뺏겨

"사드로 한중관계 환상 깨져

실리 따른 새 접근 방법 필요"





지난 2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왕징의 롯데마트 매장(사진 위쪽)에서 텅빈 계산대를 점원 한 명이 지키고 있다. 비슷한 시각 길거너 까르푸 매장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한중 수교 25주년의 후광 효과는 커녕 생존 위협을 느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홍병문특파원


지난 21일 저녁, 퇴근시간 무렵에 찾은 베이징 왕징 롯데마트에서는 도무지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 당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조치가 본격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녁 반찬거리를 사는 소비자들로 활기가 넘칠 시간이었지만 즐비하게 늘어선 10여대의 계산대 중 점원이 지키고 있는 곳은 단 2곳뿐이고 그나마 손님이 없어 점원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다. 한 시간여 동안 계산대에 선 손님은 대여섯 명에 그쳤다.

같은 시각 길 건너에 위치한 프랑스 유통업체 카르푸 매장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계산대에 선 점원 10여명의 손은 쉴 새가 없다. 3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발맞춰 한국산 제품 판매 거부를 결정한 카르푸가 사드 사태의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모습이었다.

왕징 롯데마트의 텅 빈 매장은 24일 한중수교 25주년을 맞는 양국 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 산업에 거대한 기회를 열어준 중국 시장은 25년이 지난 지금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국가 안보를 핑계로 한 중국의 전방위 보복조치가 장기화하면서 4반세기를 맞은 한중 국교 수립의 의미도 빛이 바랬다.

중국 내 입지가 좁아진 것은 대기업뿐이 아니다. 베이징에 터를 잡았던 한국 중소기업들은 당국의 온갖 압박에 시달리다 지방도시로 내몰리고 있다.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으로 잘 알려진 왕징의 최고가 아파트는 수년 전까지도 한국 주재원들과 현지 교민 사업가들로 북적였지만 최근에는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왕징을 떠나는 한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중수교 2년 후인 1994년 중국에 건너온 후 20여년 넘게 베이징에서 활동 중인 서만교 포스코ICT 중국법인장은 “한중관계가 밀월기를 거쳐 이제는 새로운 관계 재정립기로 들어섰다”고 강조했다.

사드 사태의 가장 직접적 피해를 본 것은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의 중국 마트 매장들이다. 3월 이후 본격화한 사드 보복으로 중국에 위치한 롯데마트 매장 99곳 가운데 74곳이 여전히 영업정지 중이고 13개 점포도 재개점한다는 기약이 없는 자체휴업 상태다. 왕징 매장을 비롯해 나머지 12곳은 손님이 뚝 끊겨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다. 롯데가 야심 차게 추진한 롯데월드 선양 프로젝트도 중국 당국의 제재로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랴오닝성 선양에 세우려던 호텔뿐 아니라 청두의 호텔 건설 공사도 올 스톱이다.



베이징 중심부 산리툰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매장도 롯데마트 왕징점과 마찬가지로 손님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판매량은 올 상반기 42만9,000대에 그쳐 전년동기 대비 42%나 줄었다. 중국 진출 이후 사상 최악의 성적표다.

현대·기아차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것은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들이다. 현대·기아차 중국 점유율이 정점에 올랐던 2014년 9%에서 올 초 4%로 곤두박질친 반면 38.4%였던 중국 토종 자동차의 점유율은 43.2%까지 늘었다.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사드 이후 현대·기아차의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고스란히 챙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위기를 자양분으로 삼은 중국 기업들의 내수시장 점유율 확대는 넘쳐나는 자본과 외국 합작사 운영에서 얻은 기술력과 마케팅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무서운 질적 성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한중수교 25년간 한국 기업들이 누려온 코리아 프리미엄이 이미 퇴색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중국 토종 브랜드들이 삼성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선두를 잇달아 꿰차고 있다. 올 2·4분기 중국 시장에서 토종 브랜드인 화웨이와 오포, 비보, 샤오미는 각각 20%, 19%, 17%, 13%를 차지하며 상위 1~4위를 모두 휩쓸었다. 삼성은 점유율 3%로 애플(8.2%)에도 밀려 가까스로 6위 자리를 지켰다.

사드 사태의 여파는 대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베이징 주변에 공장을 세웠던 한국 중소기업들은 중국 당국의 각종 압박에 시달리면서 결국 문을 닫거나 공장을 2~3선 중소도시로 이전하고 있다. 토목건축 분야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K(48)씨는 10년 만에 베이징 공장을 접고 최근 장쑤성 우시로 공장을 이전하기로 했다. 그는 “베이징 주변 공장에 대한 중국 당국의 엄격한 관리 여파도 있지만 사드 사태 이후 노골적으로 벌어지는 잇따른 소방·위생·환경 단속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며 “공장을 지방으로 옮겨도 갖가지 형태로 한국 기업을 제재할 것으로 보여 아예 중국 사업을 접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국 실적이 서서히 회복되는 기업의 사례도 나오고 있다. 중국 파이 시장에서 수년째 1위를 지켜온 오리온의 경우 지난달 ‘초코파이’의 중국법인 매출이 전년 대비 16%, 3월 대비로는 143% 증가했다. 7월 중국법인의 전체 매출도 전년 대비 약 90% 수준까지 회복되며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한중수교 이후 중국 사회를 꾸준히 관찰해온 중국 전문가들은 사드 사태를 계기로 한중관계가 확연히 달라졌다며 ‘포스트(post) 사드’ 시대에는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사드 사태는 한중관계의 환상을 깨뜨리고 양국관계에 확실한 전환점을 준 사건”이라며 “과거에 지리적 근접성과 활발한 양국 간 경제교류로 급격히 발전했던 한중관계가 사드 사태로 한계를 드러내며 이제는 양국이 실리에 근거한 이해타산적 접근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박윤선기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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