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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사다리 걷어차는 입시제도 개편

권구찬 논설위원

수능 절대평가는 변별력 상실

금수저 논란 '학종'에 기울면

가난한 천재의 기회 뺏을수도

"과정은 공정, 결과 정의로운가"





주요 10개 대학의 내년도 입학 정원은 3만3,000명쯤 된다. 이중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으로 뽑는 인원은 1만명이 채 안 된다. 교육부의 방안대로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어떻게 될까. ‘물 수능’ 평가를 받은 지난 2015학년도 수능 결과를 절대평가로 환산하면 전 과목 1등급 수험생이 자그마치 1만3,388명이다. 극단적이지만 같은 1등급인데도 누구는 서울대에 붙고 어떤 학생은 주요 10개 대학에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등급만 공개되고 점수를 알 수 없으면 대학은 어떻게 신입생을 선발할까. 만점과 90점이 같은 1등급이라면 변별력을 확보하려고 면접과 논술을 전형요소로 반영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시 전형의 수시화는 피할 길이 없다. 변별력을 상실한 수능은 사실상 무력화한다.

내년도 대학 입시의 수시전형 비중은 74%다. 이중 30%가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선발한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이 비율이 높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으로 오명을 뒤집어쓴 것은 아무래도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라고 한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이 결정적인 듯하다. 정유라가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음에도 ‘학종=금수저 전형’으로 등식화한 것은 그만큼 선발 과정의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이 용납 못할 학내 일탈행위에도 학종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것은 타오르는 불신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최악의 입시로 불리는 2008학년도 수능 등급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점수 대신 등급만 나눈 수능 등급제는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가 그럴싸하지만 그해에 단 한 번 시행하고 이듬해 폐지되고 말았다. 당시 변별력 상실을 우려한 각 대학은 정시전형에 논술고사를 넣었다. 수능과 내신에다 논술까지 치른 교실은 입시지옥이 따로 없었다.



수시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뿌리째 흔들리는 공교육 현장의 정상화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학생부 한 줄에 대학의 당락이 달렸으니 오죽하겠나. 하지만 고교 교육의 정상화는 어떻게 보면 당국과 어른의 편의주의 발상이다. 내신 성적은 한두 학기만 망치면 만회할 길이 없다. 뒤늦게 철들어 열공모드에 돌입해도 회복할 수 없는 게 수시다. 질풍노도의 세대에 한때의 방황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게 교육적인가. 정시 무력화와 수시 확대는 이들에게 사다리 걷어차기나 다름없다. 한 해 재수생이 10만명이 넘는다. 수험생 5명 중 1명꼴이다. 정시 무력화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박탈할 소지가 다분하다.

수능이 입시에 완벽한 답이 될 수 없다. 학종의 장점만큼 단점이 있기는 정시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나마 공정한 선발 방식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통로이자 가난한 천재의 구명줄이기도 하다. 정시는 정시다워야 한다. 선행 학습과 사교육 폐해가 있지만 그 강도는 학종에 비할 바 못 된다. 수능 점수 따기에 과도한 경쟁이 문제인 것은 맞지만 경쟁의 체감도는 빤히 보이는 학교 친구끼리 우열을 가리는 내신만 할까. 절대평가가 학습 부담과 과열 경쟁을 줄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이다.

역대 정부마다 입시제도를 손질했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난제를 속 시원하게 푼 정부는 없었다. 오히려 손댈 때마다 교육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수능을 무력화할 절대평가 전환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를 더 가파르게 할 공산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래야 하는 게 교육이다. 중차대한 입시제도 개편을 시안 발표 3주 만에 확정하는 과속이 교육적인가. 설익은 철학을 고교 담벼락 위에서 시험하려 들지 마시라.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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