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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 "대통령 탄핵 비법 전수받으러 한국 왔어요"

트럼프는 특권 남용하는 남성

백악관엔 아직도 여성혐오 팽배

여성 과거 성역할로 되돌리려해

美 곳곳서 여성탄압 저항 시위

페미니즘은 인간평등 위한 활동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이 25일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음사




“지난 겨울 한국에서 벌어졌던 촛불시위와 성공적인 정권교체가 미국에서도 일어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행운을 빌어주시고 비법도 전수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아는 체 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신조어를 보편화시켰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의 저자 리베카 솔닛(56)이 한국을 찾았다. 25일 서울 창비서교사옥 50주년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예술과 환경, 인권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저작으로 미국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솔닛의 첫 마디는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법을 배워오겠다고 했다”는 뼈 있는 농담이었다.

“지난해 한국 사람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습니다. 비폭력적인 저항과 봉기는 20세기의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말을 믿습니다. 한국에서 작년에 목도했던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사태 역시 그에 부합하는 사례죠.”

책과 강연을 통해 “과거보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고 희망을 가지고 저항해야 한다”고 설파하던 솔닛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그가 그리는 미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솔닛은 ”미국 백악관은 여성혐오, 강간문화가 존재하고 전통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한 곳, 여성을 과거의 성 역할로 복귀시키려는 곳이 됐다”며 “주요 도시에서 백인우월주의와 여성 탄압에 저항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고 미국의 현실은 어지럽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솔닛이 거듭 강조한 것은 범주화하는 것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솔닛은 혐오와 분노가 갑자기 두드러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명명함으로써 직시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한다. 솔닛은 “내가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을 직접 명명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통해 ‘자기가 남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모르고 특권을 남용하는 남성들’을 지칭할 수 있게 됐고 트럼프는 이 개념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라며 “구 체제는 어떤 사건을 패턴화하고 범주화하는 것을 막는데 우리는 어떤 사안을 정확한 이름으로 불러주고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며 저항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규정하는 대신 ‘여성 혐오 범죄’로 대체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목소리와 맞닿는 대목이다.

솔닛은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전 세계에 페미니즘을 설파하는 작가다. 솔닛은 페미니즘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을까. 솔닛은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중추적인 활동”이라며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이 진정한 권리를 획득하고 출산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면 저출산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봤다”며 웃었다.





이번 방한에 맞춰 창비는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어둠속의 희망’ 개정판을 내놨고 앞서 솔닛의 2000년 저작인‘걷기의 역사’를 냈던 민음사는 촛불시위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솔닛의 편지를 더해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새 제목으로 개정판을 내놨다. 걷는 행위를 사적영역을 벗어나 공적영역으로 넘어오는 인간의 연대와 저항이라고 정의하는 솔닛은 “나는 아직까지 하지 않은 이야기들,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보지 못한 이야기를 다루기를, 방황하고 누비는 과정을 이야기하기를 원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세 권의 책은 전부 걷기에 관한 책, 오래된 이야기를 깨뜨리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2014~2017년 글을 모은 이번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여성혐오 살인, 여성을 배제하고 대상화하는 문학작품과 코미디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침묵을 거부하고 말을 통해 연대하라고 주문한다.

오랜 시간 여성의 역사가 침묵의 역사였던 이유를 솔닛은 “정답이 강요되는 삶이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는 이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기습적으로 질문 받고 늘 설명해야 한다. 남성들이 설정한 정상가정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상궤도를 벗어나게 된 이유를 변명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솔닛은 “이런 질문에 정답은 없으며 우리가 습득해야 할 기술은 오히려 이런 질문을 거부하는 법”이라고 단언한다.

한편 솔닛은 이날 저녁 건국대에서 ‘만약 내가 남자라면’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강연에서 솔닛은 맨스플레인 현상에 대해 “바탕에는 여성을 영원한 청중으로 여기는 시각이 깔려 있다”며 “지금 역시 나아지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솔닛은 자유와 해방을 역설하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해방은 전염되는 사업이다. 그리고 젠더를 해체하여 재조립하는 사람들 곁에서 성장한 것은 나 같은 이성애자 여성의 해방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남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우리 모두가 자유롭기를 바란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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