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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권’의 뒤늦은 탄생…1차 통화조치





1950년 8월 28일, 피난 수도 부산. 한국 정부가 ‘대통령 긴급 명령 제 10호’를 통해 ‘조선은행권 유통 및 교환에 관한 건’을 발표했다. 골자는 조선은행권 폐지와 한국은행권 도입.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통화조치를 내놓은 이유는 두 가지. 돈이 떨어진 데다 북한이 퍼트린 부정 지폐가 많았기 때문이다. 6·25를 맞아 정부와 군대, 공공기관을 통틀어 가장 침착하게 후퇴했다고 평가받는 한국은행이지만 돈을 다 들고 나오지는 못했다. 부산에 피난 온 한국은행이 보유한 미발행 화폐는 약 40억 원. 전쟁을 치르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북한의 경제 교란 책동도 옛날 돈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은 한국은행 본점 창고에서 찾아낸 미발행 조선은행권을 유통시키고 탈취한 인쇄기로 돈을 찍어냈다. 북한은 점령 초기에는 북조선중앙은행권과 탈취한 미발행 조선은행권을 동시에 통용했으나 곧 조선은행권만 사용했다. 북한이 탈취한 인쇄기로 찍어낸 돈은 물론 미발행 조선은행권은 명백한 불법이었으나 식별이 불가능한 돈이었다. 북한은 불법 탈취하거나 인쇄한 조선은행권을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 이남으로 침투시켰다. 간혹 전쟁물자를 구매하는 데 이 돈을 쓰는 경우까지 나왔다. ‘남한 경제를 흔들자는 의도’였다.

정부의 선택은 신권 화폐 보급. 새 돈은 일본에서 찍어왔다. 인쇄시설을 모두 점령 당한 탓이다. 사정이 긴박해 화폐 디자인의 질과 품위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주일 대표부에 걸린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가 천원권에 실렸다. 백원권에 새겨진 광화문은 한국은행 도쿄 지점에 근무하던 직원이 소장한 책자에서 찢어냈다. 조선은행권과 한국은행권의 교환 비율은 1대1 등가교환. 1950년 9월부터 1953년 1월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719억원이 교환됐다. 다만 100원 미만 소액권은 구조선은행권이 그대로 쓰였다. 수량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는 시기별로 달랐다. 최초에는 적성 통화의 구축 또는 제거가 목표였으나 서울 수복(1950년 10월) 이후부터는 북한의 부역자 및 잔존 게릴라 활동과 관련된 통화 교환의 봉쇄 등 정치적 정책 수단으로 쓰였다. 거액 소지자의 교환 제한과 예금 동결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좌익의 통화 교환을 봉쇄했다는 얘기다. 부분적인 제한을 가했음에도 제 1차 통화조치는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교환 대상의 93%가 돈을 바꿔갔다. 다급하게 돈을 찍어냈으나 제 1차 통화조치는 ‘최초의 한국은행권’ 발행이라는 의미가 있다.



해방을 맞이하고도 ‘조선은행권’이 계속 통용된 이유는 금융제도의 정비가 늦어졌던 탓. 일본인이 물러난 자리를 조선인이 대신했을 뿐 관련 법 제정이 지연돼 명칭은 그대로 사용했다. 해방 이후 56개월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한국은행법이 제정되고 ‘한국은행’이 출범한지 18일 만에 터진 한국전쟁으로 최초의 한국은행권이 등장했다는 점이 시련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들려주는 것 같다. 새롭게 등장한 한국은행권은 수요가 많았다. 전쟁에는 돈이 거의 무한정으로 들어갔다.

정부는 화폐 수요 팽창에 따라 조폐공사를 신설해 1,000원 권과 500원 권을 공급했다. 6ㆍ25 직전까지 558억 원이던 화폐발행고가 1952년 말에는 1조 114억 원으로 늘어났다. 돈이 18배가 넘게 풀렸으니 물가가 뛰었다. 1953년 2월 화폐가치를 100대1로 절하하고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바꾸는 2차 통화조치를 발동한 이유도 신규 화폐 발행 과다에 따른 인플레이션 탓이다. 당시 발행한 1,000원 한국은행권은 요즘도 가장 흔한 고화폐로 통한다. 거래가격 약 5~8만 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1차 통화조치에 이은 2차 통화조치는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는 평가다. 3 공화국 초기인 1962년 6월 단행된 3차 통화조치는 가장 실패한 통화개혁 조치로 손꼽힌다.

단순 등가 교환이었던 1차 통화 조치를 빼고는 2차와 3차 통화조치가 모두 실패했던 경험을 잊은 것일까. 기회만 있으면 원화 가치를 평가절하하자는 논의가 고개를 든다. 물론 당위성이 있다. 경제 규모는 세계 20권이지만 원화의 가치는 세계 200위권이라는 현실이 부자연스럽다. 화폐 단위가 조(兆)를 넘어 경(京)에 이를 만큼 경제 규모도 커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의가 나왔으니 이번에도 제 4차 통화 조치 얘기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필요성은 화폐 단위를 변경했던 통화 조치는 모두 부작용이 컸다는 점이 걸린다. 통화조치를 하더라도 67년 전 1차 통화조치 당시의 절박함은 다시금 경험하지 않으면 좋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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