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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동네 책방을 스타트업으로 운영한다는 것

전국구스타가 된 동네서점 ‘북바이북’ 이야기

책이 좋아서? 아니 콘텐츠가 좋아서 창업

다음에서 일한 콘텐츠 기획자 자매

북스테이 등 콘텐츠 경험 확장에 초점

김진양 북바이북 대표가 최근 경기 판교의 북바이북 매장에서 만나 “창업은 추천하지만 모두가 편의점, 카페, 서점을 차려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커리어 등을 살펴보고 제일 잘하는 분야, 오랫동안 질리지 않을 분야에 깃발을 꽂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정혜진기자




주변 사람 모두가 ‘이제 결혼할 일만 남았네’하고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그는 조직문화가 열려 있어 여성이 다니기에 좋다고 평가받은 정보통신(IT) 회사에서 5년차 직장인이었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안정성은 높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기에는 삼십대 초반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회사 일과 별개로 동업을 선택한 창업자들 20개 팀을 만나 책을 쓰다가 결정적 계기가 왔다.

“직장에 있으면 동료들 뒷담화하고 회사 욕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로 흐를 때가 많잖아요. 저보다 나이가 어린 동업자들을 만났는데 하나같이 열정이 장난 아닌 거예요. 강력한 자극이 됐어요. 회사를 그만두게 된 거죠”

그때 동업자들의 이야기를 묶어서 ‘탐나는 동업(2013)’라는 책을 쓸 당시 저자는 자신을 콘텐츠 기획자 겸 인터뷰어라고 소개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낸 책에서는 ‘좋은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고 싶은 술 먹는 책방 북바이북 주인장’으로 소개가 바뀌었다. 2013년 창업 후 3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동네책방 북바이북의 김진양(37) 대표 이야기다. 퇴사 후 자칭 프리랜서 글쟁이는 어떻게 동네 책방 주인장으로 변신했을까.

언니 김진아(왼쪽) 대표와 동생인 김진양 대표.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일했던 자매는 함께 동네 책방을 차렸다. 가족이지만 창업하면서 또 새로운 모습을 알게됐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즐거운 창업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KBS1 화면 캡쳐


“북카페 열고 책이나 쓰면서 살고 싶다”

퇴사를 하고 백수 혹은 프리랜서가 된 2013년 초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버스에서 툭 던진 말이었다. 여느 때였다면 ‘다음 생에’라는 단서를 달았을 실없는 말을 테지만 옆자리에는 언니 진아씨가 있었다. 진아씨는 인터넷 포털 다음(Daum)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본 언니의 모습은 조직 내에서 인정 받고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 이야기에 동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니가 그때 무심코 넘겼다면 지금까지 오지 않았을 거에요. 언니가 회사에서 안식 휴가를 받아 한 달을 함께 지낼 때였는데 우리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거예요. 시기가 서로 딱 맞았던 거죠”

사업 구상은 버스에서 내려 도넛 가게로 자리를 옮겨서 계속됐다. 그날 밤은 자매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이 됐다. 지금 북바이북 운영 방식의 대다수가 이날 나왔다. 언니 진아씨와 진양씨는 둘 다 카카오와의 합병 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일하며 온라인 콘텐츠를 공기처럼 접했던 사람들이었다.

책방이라는 오프라인 콘텐츠를 구상했지만 그들이 생각한 동네 책방은 일반적인 책방의 형태와 달랐다. 기본적인 생각은 온라인 콘텐츠를 다루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분류에 따라 책장에 책을 배치하는 것이나 책장을 포털 메인의 배너로 인식했다. 댓글이 달리는 것에서 착안한 책꼬리(이미 책을 읽은 사람이 책 추천평을 책갈피 등에 남기는 것), 책 되팔면 포인트 제공 등의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는 대부분 책방을 운영할 때 구체화됐다.

그렇게 자매의 창업이 시작됐다. 자매가 홍대에 자주 가던 동네 책방 ‘땡쓰북스’ 같은 서점을 생활 반경이 있는 상암에 차리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책방을 차리겠다고 선포한 뒤 주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듣다가 ‘맥주와 책방’이라는 아이디어에 꽂혔다.

주당은 아니지만 평소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즐기는 진양씨에게는 생맥주처럼 신선하게 다가온 얘기였다. 마침 일본 도쿄에 맥주를 파는 책방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도쿄에 사업 구상을 위해 당장 도쿄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의 정체성은 책방 투어가 됐다. 도쿄 책방 B&B(Book&Beer)에 가서 크림 가득한 생맥주가 담긴 잔을 들고 서가를 기웃거리다 보니 적당한 술기운에 기분좋게 책 한 권을 ‘득템’하는 경험이 이거다 싶었다.

점심시간 북바이북 판교점을 찾은 손님들이 책을 구경하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북바이북


그렇게 ‘퇴근길 책한잔’을 내세운 서점이 탄생했다. 특이한 점은 오프라인 책방을 열기 전에 이미 온라인으로 사전 모객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상암 생활권인 고객들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상암의 소식을 전하는 ‘상암홀릭’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했다. 상암의 소식이나 맛집, 각종 편의시설 등에 관한 정보를 콘텐츠로 구현했다. 다음(Daum) 입사 전 블로거 기자단 자격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다녀올 정도로 1세대 블로거로 활약한 만큼 소재를 잡아 이를 잘 팔리는 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자신이 있었던 터였다.

부동산 물색 등 오프라인에 관련된 일은 그다음이었다. 당시 상암은 MBC, YTN 등 방송사가 본격적으로 입주하기 전이어서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평일에도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골목이 있었다. 그렇게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 골목의 한 분식집이 북바이북의 첫 매장으로 탄생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골목에 혼자 시작하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의 규모와 월세, 초기 자금 1억원 정도로 책방을 시작했어요. 특히 상암은 미디어 종사자들이 많은데 저희가 미디어 분야 사람들의 성향을 잘 아는 만큼 상권을 봤던 거죠”

2013년 10월 개업을 한 뒤 기존 서점들과 다른 특색 때문에 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북바이북은 ‘술파는 책방’이라는 정체성으로 ‘책맥(독서를 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라는 키워드가 관심을 얻으면서 북바이북은 상암동 동네 책방에서 전국구 스타가 됐다. 개업 8개월 만인 2014년 6월에는 2호점을 열었다.

이후 언니 진아씨도 퇴사를 하고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동업이 시작됐다. 초반에 상암 골목에 두 개의 서점을 운영하게 됐는데 소설과 비소설로 서점의 성격을 달리했다. 출판업에서는 보기 드문 빠른 성장 속도였다. 매일 언니 진아씨와 책방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구체화하고 당장 실행에 옮기는 일을 반복했다.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 점심을 세시간씩 먹은 적도 있단다. 그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나하나가 다 성취감이었다”며 “일주일에 하루도 안 쉬고 열두시간씩 일하는데도 몸만 힘들 뿐 정신적으로는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북바이북 판교점에서 진행된 서재우 매거진B 기자의 작가번개. 퇴근길 직장인들이 활발히 참여해 15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는 강연을 찾는 독자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강연을 듣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사진제공=북바이북


‘작가 번개’라는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열었다. 독립출판사의 대표격인 남해의 봄날의 정은영 대표가 쓴 책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를 시작으로 특정 책을 쓴 작가를 강연자로 섭외해 40명 이하의 청중을 모아 책방에서 강연 겸 토크쇼를 진행하는 형태다. 따끈따끈한 신간이 아니더라도 김 대표가 인상깊게 읽은 책들 위주로 번개를 진행하자 이미 출간이 된 지 시간이 지난 책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작가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작가를 소규모 공간에서 만나고 직접 강연을 듣는다는 건 독자들에게는 더더욱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작가 번개는 이제는 작가 번개를 기획하는 직원만 따로 둘 정도로 지속성이 생겼다.

창업 준비에 대한 문의도 여럿 들어오기 시작했다. 북바이북의 꼬리표가 붙은 독특한 운영방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함을 표했다. 자문을 구하기도 했고 그 결과 제주에 문을 연 소심한 책방도 북바이북의 도움을 받았다. 동네 책방 창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고 나서 창업특강 강연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강연에서는 책방 창업 노하우를 공유하는 건 물론 책방 운영을 실습으로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커피를 타고 카운터에서 손님을 받아보고 결제 시스템을 익히는 등 사소한 부분들까지 창업 준비생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이다. 인기가 많아 한 달 과정의 창업아카데미를 11기까지 진행했다. 창업을 추천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한다. 다만 “모두가 편의점, 카페, 서점은 아니다”라며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커리어 등을 살펴보고 제일 잘하는 분야, 오랫동안 질리지 않을 분야에 깃발을 꽂는 게 중요하다”고 무분별한 창업 열풍에는 선을 그었다.

지난 달 서울 마포구 상암동 북바이북에서 김효찬 작가가 진행하는 드로잉 수업에 참여한 고객들이 집중해서 드로잉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북바이북


창업 5년차, 이제는 혼자 희열을 느끼는 단계는 지났다고 한다. 올해 초 김 대표는 커다란 결정을 했다. 북바이북의 또 다른 매장을 판교에 낸 것이다. IT회사에서 근무했던 만큼 카카오, 엔씨소프트, 넥슨 등 IT 회사가 모여있는 판교 상권은 자매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퇴근길 책한잔’이라는 콘셉트는 일관성이 있지만 매장의 느낌은 지역과 타깃 고객에 따라 차별화를 뒀다. 상암점은 원목 책장 위주에 노란 조명 아래 따뜻하고 감성적인 느낌을 풍기지만 판교점은 전체적으로 그레이 화이트 계열 톤의 책장에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MUJI)가 떠올려질 정도로 심플한 느낌이다. 전국구 책방으로 성장한 상암점에 있다가 판교점에 출점을 하니 배울 점도 많았다.

“그래도 전국구로 이름을 알렸다 보니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거더라고요. 술먹는 책방도 여전히 생소해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하니 저희 입장에서도 초심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자매의 관계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매일 보고 고민을 나눴다면 이제는 진양씨가 판교점, 진아씨가 상암점을 운영하며 각각의 영역을 존중하고 있다. 그는 “이전보다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 불편한 점도 있지만 각자 생각할 시간도 있고 이전보다 ‘정상적인’ 동업상태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북바이북 판교점은 비소설을 주로 취급해 따뜻한 느낌의 인테리어를 기본으로 한 상암점(소설점)과는 다른 느낌을 추구했다. ‘우리 서점이나 할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등 독특한 주제별로 책을 큐레이션한 게 돋보인다. 평소에도 공간에 따른 사람들의 인지에 관심이 많다는 김진양 대표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를 작가 번개로 섭외해 신경건축학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정혜진기자


“이제까지 열심히 한 만큼은 성과가 났다” 김 대표의 중간평가다. 앞으로도 계속 실험하는 과제는 ‘거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것. 배송을 직접 하지 않는 동네 책방이 계속 찾고 싶은 곳이 되기 위해 아직도 머리가 바쁘다. 앞으로는 외형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콘텐츠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데 집중하겠다는 포부다. 스타트업답게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고객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도 우선순위에 있다.

김 대표는 “책을 읽으며 특정한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북스테이 관련 콘텐츠를 확장하겠다”며 “올 하반기에는 제주 등의 숙박업체와 제휴를 맺어 찾아가는 작가번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하지만 책이나 작가나 콘텐츠를 중심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어 왔다”고 덧붙였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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