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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자본주의…1833년 공장법



음울한 자본주의…1833년 공장법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아주 어렸죠/말도 잘 못하는 저를 아버지가 팔아버렸어요/난 그저 ’베베베‘ 하면서 울었죠/지금은 굴뚝을 쑤시며 검댕 속에서 잠을 자요./’ 영국의 시인이며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 ‘굴뚝 청소부(The Chimney Sweeper·1797년)’의 첫 구절이다. 굴뚝은 산업사회를, 어린 청소부는 착취 당하는 노동자들을 상징한다. 말도 배우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굴뚝 청소로 내몰린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좁은 굴뚝에 드나들기 쉽고 무엇보다 임금이 쌌다. 하루 15시간 노동에 식사시간이라야 고작 10분. 굴뚝에서 잠들어 질식하거나 타죽는 아이들도 많았다.

굴뚝 청소는 몸집이 작은 어린 아이일수록 환영받았다. 탄광도 마찬가지. 작은 아이들이 비좁은 갱도를 기어 다니며 탄을 캤다. 올해 초 정년 퇴직한 서울대 양동휴 교수(경제학)의 저서 ‘경제사 산책’에 따르면 탄광의 고용 연령은 4살부터. 다른 업종도 상황은 비슷했다. 모직공장에서는 6살, 면직은 8살부터 아이들이 하루 12~18시간을 일했다. 아동 노동이 전체 노동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컸다. 면직은 35%, 모직과 레이스, 아마는 40%, 견직은 46%에 이르렀다. 탄광은 22%로 낮았지만 굴뚝 청소는 대형 공장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맡았다. 이런 통계마저 아동 노동이 다소 시정됐다는 1833~1834년의 자료다.
음울한 자본주의…1833년 공장법
아동 노동이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저임금. 1830년대 랭카셔 지방에서 11세 이하 아동의 주급은 약 2실링 3데니. 20~40대 노동자의 평균 주급 21실링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었다. 고된 노동에도 아이들은 반항하지도, 조직을 결성하지도 않았다. 자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순진함’은 ‘통제가 쉽다’는 말과 동의어였을 뿐이다. 여성 노동도 마찬가지.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의 절반 이하를 받았다. 물론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받을 때도 있었다. 유아기와 아동기에는 여자 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조금 많았다. 같은 나이면 인지 발달이 앞섰던 까닭이다.

많으면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아이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아동 노동은 두 곳에서 들어왔다. 가정과 시설. 먼저 산업혁명이 진전되면 될수록 임금이 하락해 가장 한 사람 수입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아내도 노동하고 아이들까지 돈벌이에 나설 수 밖에. 고아원과 구빈원 같은 ‘아동 보호시설’이야말로 풍부한 인력 공급지였다.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1838년)’에는 아동 노동과 관련된 내용으로 가득하다. 자본은 ‘구빈원에서 자란 아이’를 선호했다. 못 먹었기 때문에 ‘몸이 작아 굴뚝 청소에 안성맞춤’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산업현장에서 수없이 죽어 나갔다.
음울한 자본주의…1833년 공장법
공장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아동 노동 실태는 곧 영국의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최초의 공장법이 마련된 게 1802년. 고아원 등의 아동을 교구(敎區)별로 작업장에 알선하는 교구 도제(徒弟)를 대상으로 하루 12시간 이내 노동과 교육 기회를 제공하도록 했다. 1819년에는 보다 강력한 공장법이 나왔다. 면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7명의 소녀가 숨진 앳킨슨(Atkinson)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제정된 이 법은 9세 이하 고용 금지와 16세 미만 12시간 노동, 위반 공장주에 대한 벌금 10~20파운드 부과 등을 내용으로 삼았다. 이어 1825년, 1829년, 1831년에도 조금씩 진전된 내용의 공장법이 제정됐다. 그만큼 심각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공장법 시리즈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 이영석 광주대 교수의 저서 ‘공장의 역사-근대 영국 사회의 생산, 언어, 정치’에 따르면 이 시기에 마련된 공장법은 ‘산업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문제를 국가가 규제를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사회 입법’이었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법을 지키지 않는 공장주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던 탓이다. 아동 노동 실태를 조사한 1833년 왕립위원회 보고서의 다섯 가지 골자. ‘①아동은 성인과 비슷한 노동을 하고 있다 ②과도한 노동으로 신체적 위험, 질병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데다 교육 기회를 박탈 당한 상태다 ③자유 노동자가 아니라 부모에 의해 계약된다 ④아동의 부도덕한 태도는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⑤기존의 공장법은 준수되지 않고 있다.’

‘왕립위원회’까지 나설 정도로 논란의 대상이던 아동 노동에 대한 실태 조사는 ‘1833년 공장법’ 입법으로 이어졌다. ‘최초의 공장법다운 공장법’으로 평가받는 이 법의 골자는 7개. △9세 이하 아동 노동 전면 금지(견직 공장은 예외) △아동 고용시 고용주의 나이 확인 의무 △9~13세 아동 노동 하루 9시간 이내 제한 △13~18세 아동 노동 하루 12시간 이내 제한 △아동의 야간 노동 금지 △아동에 대한 1일 2시간 이상 의무 교육 실시 △공장법 준수 여부를 감독할 감독관 4명 임명 등이다. 1833년 8월 29일부터 적용된 공장법은 이정표였다. 1847년에는 노동계의 숙원이던 하루 10시간 노동을 규정한 공장법이 제정됐다.

형식 뿐인 공장법이 처음 마련되고도 20년 이상이 지나서야 아동 노동을 실제로 규제하기 시작한 1833년 공장법은 실효가 있었을까. 일부 부정적 평가가 있지만 효과를 거뒀다는 긍정론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법의 제정을 주도한 세력은 누구일까. 이영석 교수의 다른 저서 ‘산업혁명과 노동정책’에 따르면 다양한 계급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먼저 노동자 집단. ‘10시간 노동’을 쟁취하려는 방적공 중심의 지속적 노동운동의 결과다. 두 번째는 토리당 개혁파. 전통 지주 출신이 많고 보수색채가 강한 토리당이 노동자 편에 섰다는 게 의아스럽겠지만 산업자본가들과 대립관계인 지주들은 급속한 산업화로 전통 질서와 가치가 무너질 것으로 우려하고 노동자들의 편을 들었다.

세 번째 계층은 대기업 소유주. 기계 개량으로 아동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든 대공장주들은 아동과 여성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큰 중소규모 공장과 경쟁을 의식해 공장법 개정에 앞장섰다. 주로 증기기관으로 운영되는 공장을 소유한 대 공장주는 수력을 동력원으로 삼는 중소공장과 경쟁에서 승리해 시장 저변을 넓히자는 목적에서 노동 조건 개선에 힘을 보탰다. 네 번째 집단은 관료 계층. 공장법을 반(反) 자본주의 운동의 연장선에서 전개한 토리당 개혁파나 노동자들과 달리 행정 공무원들은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계약을 규제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행정 효율성 확보를 중시했던 이들은 아동에 대한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 마련에 신경을 쏟았다.

공장법 입법화는 서로 다른 이해집단끼리의 장기간에 걸친 대립과 타협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물론 제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각국의 공장과 탄광에는 아동 노동이 남아 있었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아동 노동 완전 금지까지는 적어도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고 할 수 있다. 1833년 공장법 제정 184주년. 불과 만 4살 아동의 고사리 손까지 빌린 19세기 초중반의 노동 행태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일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노동 전가와 상대적 저임금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세상은 변한 게 없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존속조차 불가능한 업종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영국의 공장법은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를 낳았다. 교육 사각지대였던 공장에 부설된 학교는 노동자 자녀들과 아동 노동자들의 지적 수준 제고에 머물지 않고 영국 전체의 교육 수준과 국력을 끌어올렸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되기 훨씬 이전에 설치된 공장 부설 학교는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변화하는 고리 역할을 해냈다. 아동 노동이 여전한 곳도 있다. 축구공을 꿰매고 새우를 까는 데 아직도 어린이들이 투입된다.공장법 제정 시기의 영국 아동 노동에 대한 실태는 사람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에도 답을 준다. 단순 노동력으로 써먹는 것보다 교육을 통해 인재로 만드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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