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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와치-애증의 8학군] '교육 1번지' 거름에 꽃 핀 '부동산 1번지'

<부동산 '강남불패' 원동력은>

1970년대 강북 명문고 이전으로 '8학군' 형성

교육수요에 투기까지 겹치며 주택가격 급상승

전세 끼고서라도 강남 아파트 매입에 매달려

8·2대책에도 '똘똘한 집 한채' 보유인식 강해

김상숙(47·가명)씨는 지난 10년간 ‘대전살이’를 했다. 마포에 살던 김씨는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교육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를 얻어 이사하는 맹모 대열에 합류했다. 숙명·진선 등 명문 여학교가 많은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학원 때문이었다.

김씨는 당장 집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아 도곡렉슬 30평대 전세를 4억7,000만원에 얻었다. 서울 다른 동네에 비해 비쌌지만 전문직 남편을 둔 김씨에게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년마다 돌아오는 전세 만기는 지긋지긋했다. 집주인은 만기 때마다 수억원씩 꼬박꼬박 전세를 올렸다. 어느 순간 9억7,000만원까지 전세를 올리던 집주인은 이후에는 반전세, 이제는 1년 계약을 요구했다. 김씨는 최근 대출을 끼고서라도 강남에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8·2부동산대책 이후 매일 집값 동향을 체크하고 있다.

김씨가 ‘억 소리’ 나는 집값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강남에 끝까지 붙어 있었던 이유는 첫째 딸의 교육 성공 경험 때문이다. 사교육비를 너무 많이 쓴다고 남편한테 핀잔도 자주 들었지만 김씨는 결국 딸을 서울의 유명 사립대 의대에 진학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 역시 강남에서 공부시킬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학원의 심야교습 제한 시간인 오후10시가 되자 학생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들의 차량으로 대치동 도로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위쪽 사진). 혼잡이 마무리된 뒤 다시 한산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송은석기자




허허벌판 강남을 오늘날 모두가 선망하는 강남으로 만든 주역으로 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바둑판처럼 짜인 지하철 연결망, 테헤란로 주변 업무지구, 경부고속도 등 광역교통망과 근접성 등 강남 부동산에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대한민국 교육 1번지로서의 위상이야말로 오늘의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있게 한 요인이다.

강남 투기에 대한 비난이 수십년간 이어졌으나 강남 개발 이후 지난 40여년간 증명된 사실은 강남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실수요가 탄탄한 곳이라는 점이다. 강남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려는 김씨와 같은 맹모·맹부들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몰리기 때문이다. 학군 조정, 내신 확대, 특목고 득세, 수시로 변하는 대입전형 등 온갖 교육 정책 변화에도 대한민국 교육특구 강남의 위상에는 흔들림이 없다는 이야기는 결국 강남 부동산이 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교육특구’ 강남의 시작은 1970년대 명문학교의 강남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강북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정부는 강남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강남에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해 사대문 안 명문학교를 강남으로 이전시켰다. 1976년 경기고를 필두로 휘문고, 숙명여중·고, 서울고, 중동고, 경기여고 등이 부지 제공, 융자 알선 등의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받고 줄줄이 강남행을 택했다. 1974년 고교 평준화와 학군제가 실시되면서 교육특구 강남의 서막이 열렸으며 본격적인 8학군의 형성은 1980년 공동학군제가 폐지되면서부터다. 학군 배정을 철저히 거주지 중심으로 바꾸자 강남 8학군에 몰린 명문고를 쫓아 이사하는 부모들이 늘었다. 과외 금지 조치는 명문고의 위상을 더욱 높여줬다.

강남 8학군 열풍은 강남 투기의 호재로 작용했다. 1970년대 땅 투자로 재미를 봤던 복부인들은 1980년대에는 압구정동·개포동·대치동 등 강남 아파트로 몰려들었다. 교육을 위해 몰려든 실수요에 투기 수요까지 더해지자 집값은 날개를 달기 시작한다.



1989년 2월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51평형은 2억9,000만원에서 보름 사이 3,000만원 올랐다. 대기업의 평균 한 달 월급이 43만원이던 시절이다. 강남 집값이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정부는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교육제도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고교 학군제를 조정하고 내신 비중을 강화하는 등 정책이 강남학교에 불리하게 바뀌자 8학군 집값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1990년대 중반 강남 아파트 가격이 대방동·공덕동 등의 주요 단지보다 밑도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 과외 금지가 위헌으로 결정되자 사교육 시장은 급속도로 번성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특목고가 8학군 고등학교의 지위를 대체했지만 강남에 몰려 있는 학원가 덕에 강남의 교육 프리미엄은 건재할 수 있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학주근접’이라는 말은 학교가 아닌 학원 접근성을 뜻한다. 강남은 소위 ‘테북테남’으로 나뉜다. ‘테북’은 테헤란로 북쪽 압구정동·청담동 일대의 ‘할아버지가 부자’인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오히려 교육열은 ‘테남’에 못 미친다는 것이 강남 엄마들의 평가다. 대치동·개포동·역삼동 일대 ‘테남’에서는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및 대기업 직원 등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들이 주류다. 10억~15억원 안팎의 아파트 전세·매매 자금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 보니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집값 하락 폭은 15~20% 수준에 그쳤다. 물론 지금은 전고점을 다 회복한 상태다. 지난해 강남 입성을 결정한 이성민(45·가명)씨는 “결국 엄마들이 대치동에 오는 이유는 학원 때문”이라면서 “과목별·수준별로 종합반·단기반 등 아이의 수요에 맞게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며 이런 서비스를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는 곳은 대치동 학원가”라고 말했다.

학원 프리미엄 외에도 면학 분위기 및 비슷한 부류와 모여 살기를 원하는 상위중산층 부모들의 선호 현상 역시 강남 프리미엄의 원인이다. 대치동 학원으로 고등학생 자녀를 통학시키는 임모씨는 “강남의 중·고등학생들은 주말에도 내내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런 면학 분위기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민을 위한 정책을 표방하는 이번 정부의 부동산 및 교육 정책에도 불구하고 강남 부동산의 교육 프리미엄은 오히려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8·2대책으로 ‘똘똘한 집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강남에 집을 사야 한다는 믿음이 더 커진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학군지도’의 저자 심정섭씨는 “6·25 전쟁통에서도 천막을 치고 가르친 게 우리나라의 교육열”이라며 “통일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학벌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건재할 곳이 바로 대치동 학원가”라고 말했다. 심씨는 “수도권에선 전문직 종사자나 대기업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입성하기 위해 전세를 끼고 사두려고 하고, 지방에서는 돈 잘 버는 자영업자들이 ‘브랜드’를 믿고 사는 곳이 바로 강남”이라고 말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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