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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살아보는 여행

한경아 한국방문위원회 사무국장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여주인공은 뉴욕의 복잡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1년간 훌쩍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인도, 그리고 발리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가며 여행하는 영화 속의 그녀는 우리에게 부러움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그 영화는 지금껏 우리가 생각하던 여행과 전혀 다른 여행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요즘 유행하는 ‘살아보는 여행’이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광고 카피를 접할 때마다 예전 그 영화를 떠올리며 여행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된다. 살아보는 여행은 여행의 의미를 휴식 또는 일탈에서 오히려 일상으로 전환시킨다. ‘산다’는 것은 정해진 곳에서 수개월 또는 수년을 지낸다는 뜻이지만 오래 머무르지 않더라도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본다는 것은 진정한 휴식과 일탈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해왔던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에 들러 앞다퉈 인증 샷을 찍고 가족 친지들의 선물을 사러 쇼핑을 다니는 피곤한 여행이었다. 아직도 대부분 여행객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장소를 둘러보는 여행을 자랑이자 미덕이라 여긴다. 이른바 본전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여행을 ‘풍경 약탈’이라고도 불렀다. 여행지를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고 마치 정복이라도 한 듯 으쓱해 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여행의 형태가 점차 바뀌고 있다. 여행지의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주변 공원에서 산책하는 등 현지에서 일상을 천천히 살아보듯 즐기는 여행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관광지 정복하기 식의 여행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살아보는 여행에 대한 인기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치열한 경쟁과 바쁜 도시생활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보는 여행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또 하나의 여행 패턴이 아닐까 싶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국내에서도 제주에서 한 달 살아보기 등 장기 숙박을 예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살아보는 여행의 또 다른 형태로 최근 갭이어(gap year) 프로그램도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학업이나 생업을 잠시 멈추고 다른 도시 또는 나라에서 여행·봉사활동·직무체험과 같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기간이자 스스로를 성찰하고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여행객들은 이제 관광지를 보는 것에서 벗어나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쌓는 체험과 경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보여주기 식의 여행이 아니라 여유롭게 일상의 소소함을 즐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얼마 전 한 지인은 10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자신에게 스스로 안식년을 주기 위해 1년간의 긴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제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문득 앞으로 10년 뒤 우리가 꿈꾸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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