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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구멍 뚫린 무연고死 관리] 창문도 없는 3.3㎡ '절망의 공간'...쉰 밥에 빈 술병만 나뒹굴어

'무연고死' 많은 고시원·쪽방촌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 자리잡은 쪽방촌에 주인이 있음을 알리는 신발들이 널려 있다. 입주민 상당수가 병을 달고 사는 탓에 방 밖에 나와 활동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탐사기획팀




지난 6월 서울 종로구의 한 고시원에서 50대 A씨가 유서도 없이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목을 맨 지 사흘 만이다. 고시원 사장인 B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기는 했지만 주변에 인사도 잘하고 큰 문제가 없어 보여 사망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광주광역시 출신인 A씨는 가족이 있었지만 시신 인도를 거부해 무연고사망자로 처리됐다. 고시원 측은 A씨가 머물던 방을 다용도 창고로 바꿔 빨래 등을 널어두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망현장을 최초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장 B씨는 “자살 이후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려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라며 “70대 이상 노인들의 객실은 한쪽으로 몰아 수시로 동향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살았던 공간은 3.3㎡도 채 되지 않았다. 정부에서 정한 최소주거공간(14㎡)의 4분의1에 불과하다.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다. 여름에는 열대야를 온몸으로 견디고 겨울에는 두꺼운 이불로 온몸을 꽁꽁 싸매면서 한기를 견뎠을 터다. 물론 A씨만 이렇게 산 것은 아니다. 이 고시원에 거주하는 60여명 모두 비슷한 처지다. 이들 대부분은 65세가 되지 않아서 또는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도 되지 못한다. 당연히 정부나 지자체로부터의 지원도 거의 없다. 3.3㎡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이 열대야를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열악한 환경은 이곳뿐이 아니다. 50대 이상 장년·노인층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 일대 고시원들의 환경도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고시원들은 월세 25만원에 식사까지 제공한다고 하지만 고시원 3곳의 공동주방 밥솥에는 딱딱하게 굳고 쉰내 나는 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쪽방촌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낫다. 관할 지자체나 시민단체에서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쌀·부식 제공 같은 생활지원을 해주는 덕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 있는 박모(50)씨는 폐쇄성 혈전혈관염(일명 버거씨병) 탓에 일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렇다고 가족의 지원은 기대할 수도 없다.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과는 20여년 전에 헤어진 상태. 그저 방에 누워 개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근처에 사는 이모(59)씨는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났지만 결혼은 꿈도 못 꾼다. 부인이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잃을 수 있어 그나마 받던 급여를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느는 것은 술뿐이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한 50대 쪽방촌 주민은 대낮인데도 벌써 소주 5병을 옆에 쌓아두고 있었다. 탄산음료가 있지만 손에 잡는 것은 항상 술이었다. “음료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술이 더 좋아.” 항상 알코올에 찌들어 살다 보니 성격도 폭력적으로 변해가곤 한다. 쪽방촌 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쪽방촌 사람이든 고시원 사람이든 예외 없이 술병을 끼고 산다”며 “이 때문에 밤이면 주변에서 싸움판이 벌어지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예 희망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니다. 40대라고 밝힌 한 쪽방촌 거주민은 “만약 일을 할 수 있다면 언제든 달려갈 것”이라며 “내 인생이 더 망가지기 전에 기회를 한 번 갖고 싶다”고 울먹였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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