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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버진 아일랜드





‘망자의 함(the dead man’s chest) 위에 열다섯 명. 오호라 럼주 한 병’. 영국 소설가 로버트 스티븐슨이 1883년 출간한 ‘보물섬’에서 선장이 보물 묻힌 장소의 단서를 표현한 노래다. 소설에는 해적들이 망을 보는 장소로 ‘망원경 산(Spyglass Hill)’도 등장한다. 비록 허구 속 이야기지만 이 두 가지 단서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곳이 현실에 존재한다. 카리브해 인근에 8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버진아일랜드’다. 버진아일랜드 중 영국령에 속한 데드체스트(Deadchest)섬과 망자의 함 이름이 거의 일치하고 노먼섬에도 소설 속의 산 이름과 똑같은 지명이 존재한다. 버진아일랜드가 ‘보물섬’의 실제 배경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1493년 배 17척, 선원 1,500명을 이끌고 2차 항해에 나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했을 당시 너무 아름답다 해 이름 붙여진 섬 버진아일랜드. 조세회피처라는 악명에도 많은 관광객이 크루즈선 여행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천혜의 명소다. 하지만 섬의 역사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15세기까지 이곳에 살았던 아라와크족은 호전적인 카리브족에 의해 몰살당하다시피 했고 16세기 이후에는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가 돼 사탕수수 생산을 위한 노예의 섬으로 전락했다. 아라와크족이나 카리브족 대신 아프리카 흑인들의 후손이 전체 인구의 80~90%를 차지하는 이유다. 영국령과 미국령으로 나뉜 것도 미국이 파나마운하를 보호하기 위해 2,500만달러를 주고 덴마크 통치 지역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역사가 어딘지 낯설지 않다.



버진아일랜드에 최근 비상이 걸렸다. 허리케인 ‘어마’가 섬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교도소가 크게 파괴돼 수감돼 있던 죄수 100여명이 탈주했다. 치안과 복구를 위해 해병대를 추가 투입해 최악의 사태를 막기는 했지만 아직도 60명 이상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현지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때 해적들의 소굴이 됐던 어두운 역사가 다시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시샘을 동반하는 모양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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