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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錢쟁] 무자식 상팔자?…힘들어서 출산 포기했어요

출산때 드는 비용만 부부 넉 달치 생활비에

대학 졸업까지 소형 아파트 한 채 값 들어가

육아 경험한 부부도 경제 부담에 둘째 포기

"내 흙수저 안 물려줄 것" 딩크족도 증가세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부부가 서울 서대문구의 한 부동산중개소 앞에서 전세 매물을 살펴보고 있다. 치솟는 생활비와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자녀 갖기를 포기하거나 아이 하나만 낳는 가정이 늘고 있다. /송은석기자




결혼 3년차 부부인 이준현(38·가명)·유예슬(33·가명)씨는 얼마 전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렸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것이다. 캠퍼스커플이었던 부부는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에 반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했다. 이씨의 월세보증금 1,000만원과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3,000만원, 유씨가 직장생활로 저축한 1,000만원 등 총 5,000만원에다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가까스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현재 맞벌이로 월 400만원가량의 소득이 있지만 월세와 자동차할부금·대출원리금·통신비·공과금 등 고정비만 200만원을 웃돈다. 남은 돈으로 각자 생활비와 약간의 저축을 하고 나면 늘 쪼들림의 연속이다.

이씨 부부는 아이를 하나라도 낳는 게 좋다는 양가 부모의 설득으로 고민이 많았지만 최근 만난 지인에게 출산과 육아에 드는 비용을 물어본 뒤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이씨의 지인은 “출산 시 병원 1인실을 사용하려면 200만원이 들고 조리원 비용도 2주에 500만원에 달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이씨 부부의 넉 달치 생활비가 고스란히 병원과 조리원 이용에 드는 셈이다.

결국 이씨 부부는 고심 끝에 ‘슬픈 결정’을 내렸다. 유씨는 “애를 낳아 단순히 키우는 것만 아니라 어떻게 키우느냐도 중요한데 남들만큼 해줄 자신이 없다”며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오히려 흙수저를 대물림하지 않는 길”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이씨는 얼마 전 정관수술 상담을 받는 등 ‘딩크(DINK)족’이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는 40만6,200명.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지난 1970년 이후 가장 적다. 올 상반기 출생아 수는 18만8,500명으로 역대 최저였던 지난해 상반기보다도 12.3%나 줄었다.

출산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돈’이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인의 부모됨 인식과 자녀 양육관’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0~50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구소득 대비 양육비용은 평균 24.8%에 달했고 현재 지출하는 양육비 수준에 대해 응답자의 59.7%가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조부모 세대의 “우리 때는 경제적으로 더 어려웠는데도 자식을 5~6명씩이나 낳아 잘 길렀다”는 반박도 실제로 자녀를 키우는 요즘 20~30대가 처한 현실 앞에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일쑤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올해 자녀 1인당 양육비를 3억9,670만원으로 추산했다. 올해 태어난 자녀 한 명을 대학 졸업 때까지 키우는 데 4억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출산을 결정하려면 서울의 소형아파트 한 채값을 부담할 것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씨 부부처럼 일찌감치 ‘출산 포기’를 선언하는 부부들도 늘고 있다. 4월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추계:2015~2045년’에 따르면 올해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많은 비중(30.4%)을 차지했던 ‘부부 및 자녀’ 가구는 오는 2045년 전체 가구의 15.9%인 355만가구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인 가족구조가 빠른 속도로 깨질 것이라는 얘기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출산과 육아를 통해 직접 경험한 경제적 부담이 ‘더 이상의 출산은 없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맞벌이인 조재성(33·가명)씨는 3년 전 아들을 얻었다. 이제는 딸을 가질 차례라는 주변의 성화에도 “둘째를 낳을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출산과 육아로 양가 부모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던 기억과 대출을 한도까지 끌어쓰며 매달 날아오는 카드대금에 허덕이고 주택대출 원리금 막기에 급급했던 일 등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조씨 아내는 출산과 육아휴직을 합쳐 1년3개월을 쉴 수 있었지만 육아휴직 때 나오는 급여만으로는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3개월 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조씨는 복직하던 날 아내의 굳은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제 대출은 거의 다 갚았지만 빚 때문에 일찍 복직한 아내에게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육체적·정신적 문제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져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날들”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요즘 부모는 경제력 때문에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도 느낀다. ‘한국인의 부모됨 인식과 자녀 양육관’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절반가량(49.4%)은 자신의 부모 역할을 ‘보통 수준’이라고 인식했다. 역할이 불충분하다고 답한 이들의 46.1%는 경제적 지원을 이유로 들었다. 조씨는 “아들이 커갈수록 아이 하나로도 해주고 싶은 것을 다 못 해주는데 둘은 어림도 없는 일 아니냐”며 “자식이 두 명, 세 명인 부모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 사람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나 보다’하는 마음에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미혼남녀에게도 출산과 육아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결혼비용 못지않은 압박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종욱(35·가명)씨는 최근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이유는 가족계획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여자친구는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며 아들과 딸이 모두 있는 가정을 원했지만 김씨는 둘이 합쳐 월 3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의 급여로 육아비용까지 부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애가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어와 악기는 물론 놀이 수업에도 돈이 든다고 한다”며 “커피 한잔 사 마시는 데 벌벌 떨고 학원과 어린이집을 위해 돈을 쓰는 삶을 보낼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은 할 생각이지만 애를 가질 생각은 아직 없다”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임금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직장조차 안정적이지 않은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육아는 내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결국 정부의 출산지원책이 조금 더 세밀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아정책연구소 관계자는 “경제력 외에도 부모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조사 응답자들 사이에서는 경제력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며 “결국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부 지원을 더욱 강화하고 부모 역할에 대한 어려움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사록·양철민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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