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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영의 독무대]진화하는 브로드웨이 성공 방정식

■브로드웨이 잔혹사

뉴욕 브로드웨이의 마천루




“들어봐 널 부르는 멋진 브로드웨이~♬”

어디서 브로드웨이가 부르는 소리 안 들리십니까.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남자 주인공이자 히트제조기로 불리는 줄리안 마쉬의 노래 ‘브로드웨이의 자장가’ 중 한 소절이죠. 일반인에게는 잘 안 들리는 브로드웨이의 목소리. 하지만 전 세계 모든 뮤지컬 제작자들에게는 늘 들리는 그 소리. 바로 브로드웨이가 부르는 소리죠. 뉴욕 브로드웨이는 전 세계 모든 프로듀서들에게 꿈의 무대입니다.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장 시즌별 매출


뉴욕 극장주·프로듀서 연합인 브로드웨이 연맹 발표에 따르면 2016~2017 시즌 시장 규모는 14억4,900만달러, 1,327만명의 관객이 뮤지컬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3,500억원 수준인 한국 뮤지컬 시장의 5배 이상 규모입니다. 2012-2013 시즌 한 차례 예년 수준에 머물었던 것을 빼고는 지난 10년간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장은 줄곧 성장했습니다. 10년간 성장률만 무려 54%(매출 기준)에 달합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위기가 이어진 가운데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브로드웨이를 떠받치는 힘의 한 축이 관광객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체 관객의 약 40%로 추정되는 관광객들은 브로드웨이 시장을 지탱하는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뮤지컬계는 이를 발판 삼아 한 해 40여개 안팎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시장 규모도 최고, 제작 환경도 최고지만 무엇보다 비영어권 뮤지컬 프로듀서들에게 브로드웨이가 꿈의 무대일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고전 뮤지컬 위주의 시장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런던 웨스트엔드와 달리 브로드웨이는 도전이 용이한 미국 특유의 창업 환경이 더해지면서 신작 뮤지컬의 데뷔가 비교적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전이 쉬운 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그 만큼 실패 확률도 높습니다. 무엇보다 시장의 평가가 냉혹합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제작자들이어도 새로운 작품을 올릴 때마다 흥행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올 초 화려한 제작진으로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들 중에 이미 조기 폐막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뮤지컬 ‘마틸다’의 작곡가 팀 민친과 연출가 매튜 워처스 콤비의 신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흥행 부진으로 상연 5개월만에 조기 종연을 결정했죠. 토니상 남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랐던 앤디 칼이 주연을 맡으면서 호평도 쏟았지만 좋은 리뷰는 아무 도움이 안 됐습니다. 사전 제작비가 1,600만~1,8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마저도 거의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화제를 모으며 토니상 시상식 당시 여러 부문 후보로 올랐던 ‘그레이트 코멧’은 스타급 싱어송라이터인 조쉬 그로반이 하차하자마자 판매율이 바닥을 치더니 배우 교체로 구설이 이어지면서 결국 지난 3일 종연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 작품은 그로반 하차 전까지 티켓 판매율이 높았는데도 사전 제작비 회수율이 15~20%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집니다.

명성황후 연출가인 윤호진 에이콤 인터네셔날 대표 /송은석기자


이렇듯 무시무시한 시장에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프로듀서들도 수차례 도전장을 냈습니다. 한국에서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개척한 사람은 단연 ‘한국 뮤지컬 연출의 대부’ 윤호진 에이콤 대표죠. 그는 이문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가 된 이후 세계 시장을 향한 꿈을 키웠습니다. 브로드웨이로 향한 윤 대표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제작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지자 “뗏목을 타고라도 가겠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리고 뉴욕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링컨센터의 문을 수차례 두드린 끝에 한국 뮤지컬 최초로 ‘명성황후’를 20년 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놓기에 이릅니다. 윤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막이 오르기 전까진 링컨센터 극장장 눈치가 보여 피해 다녔을 정도였다”며 “하지만 막이 오르고 뉴욕타임스에 공연이 소개되면서 현지 관객들이 물 밀듯이 들어왔고 한국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당당하게 입증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금전적 손해가 컸죠. 초연인데도 63만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올린 것은 대단한 성과지만 16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들었으니 절반은 빚으로 남게 됩니다. 대신 윤 대표는 “한국 뮤지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더 가도 되는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쓰디 쓴 첫 진출 이후에도 그는 2011년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히어로)’으로 또 한 차례 ‘독립운동 하듯’ 브로드웨이로 향합니다. 전회 좌석이 매진돼도 11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죠.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는 또 한 명의 돈키호테는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입니다. 신 대표는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 등 숱한 작품을 히트시킨 국내 뮤지컬계 ‘간판급’ 프로듀서지만 브로드웨이에서만큼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지만 미국 국내 투어 이후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지 못 했고, 2014년 미국의 힙합 전설 투팍(2Pac)의 음악을 뮤지컬로 만든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내 목소리가 들리면 소리쳐)와 2015년 ‘닥터 지바고’로 끝내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지만 흥행에 실패, 조기 종영했죠.





하지만 신 대표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는 11월 뮤지컬 ‘타이타닉’을 국내 초연하고 2018~2019년 시즌에 브로드웨이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 대표의 도전 방식은 ‘로컬’의 텍스트가 아닌 보편적인 텍스트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는 점에서 한국 뮤지컬의 세계 진출 방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전까지 프로듀서들이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에 사로 잡혀 있었다면 신 대표는 이를 과감하게 벗어던진 거죠.

국내 뮤지컬계 글로벌 사업이 해외 우수 콘텐츠의 라이선스를 획득해 국내에 선보이는 것에서 시작해 국내 창작 뮤지컬을 해외로 수출하거나 한국 버전 넌레플리카 공연을 역수출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면 이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모델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당한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의 삶을 다룬 ‘마타하리’를 창작 뮤지컬로 선보인데 이어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웃는 남자’를 제작 중인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이 같은 전술의 선두주자입니다. 엄 대표의 경우 해외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소재를 고르는 데서 나아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창·제작진을 끌어모아 작품을 제작한다는 점, 브로드웨이 등 주요 시장으로 직진출을 꾀하는 대신 유럽, 아시아 등을 거치는 우회 전략을 편다는 점 등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진출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CJ E&M이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킹키부츠’ /사진제공=CJ E&M


국내에서 축적한 제작·투자·배급 경험을 바탕으로 브로드웨이에 이식하는데 성공한 CJ E&M의 사례는 브로드웨이 진출 방식의 스펙트럼을 획기적으로 넓혀준 사례입니다. 2013년 브로드웨이 초연 후 토니상과 올리비에상을 휩쓸고 런던 웨스트엔드에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한 ‘킹키부츠’는 CJ E&M이 제작단계부터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죠. CJ E&M의 방식은 한국에서 쌓은 프로듀싱 역량과 브로드웨이 네트워크를 결합해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킹키부츠가 초연한 2013년 당시 데뷔전을 치른 공연 14편 중 1년 이내 종연한 작품이 8편으로 60%에 육박하고, 현재까지 공연 중인 작품은 ‘킹키부츠’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브로드웨이 입성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방증이죠. 킹키부츠가 유의미한 사례인 것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상연 공연 리스트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기준 장기 상연 공연 상위 50개 중 첫 개막 이후 10년이 채 안 된 공연은 북 오브 몰몬과 킹키부츠가 유일합니다. 이 작품이 누적매출 약 2억5,000만 달러, 매주 100만 달러 수준의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동 프로듀서로서 일정 지분을 보유한 CJ E&M으로선 킹키부츠 같은 성공사례가 늘어날수록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CJ E&M이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킹키부츠’ /사진제공=CJ E&M


CJ E&M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2년부터 뮤지컬 ‘어거스트 러시’의 리드 프로듀서로 작품 개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트 러시’는 2007년 개봉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두 남녀의 운명적인 로맨스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음악 신동 어거스트 러시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킹키부츠’의 경우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이지만 ‘어거스트 러쉬’는 아예 CJ E&M이 리드 프로듀서로서 작품 기획과 제작을 주도, 전 세계 공연권을 소유하게 됩니다. 어거스트 러시는 뮤지컬 '스위니토드'로 토니상 연출상을 수상한 존 도일(John Doyle)이 연출을 맡고토니상 최우수뮤지컬작품상을 수상한 뮤지컬 '멤피스'와 최근 '컴 프롬 어웨이'를 흥행시킨 프로듀서 수 프로스트(Sue Frost) 등 쟁쟁한 인물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20년 브로드웨이 개막을 목표로 본격적인 준비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 워싱턴D.C., 시카고 등에서 리저널 트라이아웃(브로드웨이 진출의 사전 단계로 진행하는 지역별 공연)을 진행하게 됐는데 벌써부터 지역 공연장의 반응이 뜨겁다고 합니다.

이렇듯 꿈의 무대를 향한 한국 뮤지컬계의 도전은 다양한 갈래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들의 손 끝에서 바뀌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도전의 형태가 성취 가능한 수준으로 다듬어지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부 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윤호진이라는 걸출한 1세대 연출가가 그의 사고방식이나 사회환경에 맞는 진출 전략을 보여줬고 신춘수 대표 등 여러 인물의 삼진 아웃을 지켜보며 많은 선수들이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과거에 한국 뮤지컬계가 가지고 있던 해외 진출 방식이 1차원적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 방식을 고민하고 시도하게 됐다는 점에서 진일보하고 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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