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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in이슈] 19960106, 20071223 故 김광석 부녀 사건파일

김광석 죽음과 그 딸의 죽음

두 사건의 연결고리 추적





■19960106

한 가수의 인생이 막을 내렸다. 이날 새벽 가수 김광석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거실에서 옥상으로 통하는 층계에서 전깃줄로 목을 맨 상태였다. 음반기획사와 다음번에 발매할 음반 계약을 체결한 지 채 하루도 지나기 전이었다.

최초 발견자와 신고자는 부인 서해순(당시 31세)씨였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딸 서연(당시 5세)양이 있었다.

당시 경향신문 등의 김씨 사망 보도에 따르면 서씨는 경찰에 “거실에서 맥주 4병을 나눠 마신 뒤 새벽 3시쯤 안방에 들어가 비디오를 보다가 인기척이 없어 거실로 나와보니 남편이 목을 매 숨져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발견 경위에 대한 진술은 첫 경찰 조사에서는 ‘자다가 남편이 추울까 봐 이불을 가지고 나갔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조사에서 ‘비디오를 보다 나갔다’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외로웠던 아티스트의 자살’

부인 서씨는 자살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데뷔 10주년 공연을 마치고 음악적 한계를 고민해왔다’, ‘조울증 증세가 있었다’, ‘미국 유학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등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살과 달리 김광석의 신장이 164㎝ 정도로 작은 편에 속했다는 걸 고려해도 높은 곳에 전깃줄을 매단 흔적이 없다는 것이 의문점으로 남았다.

또 전깃줄은 세 겹으로 그의 목을 감고 있었음에도 사람이 목을 매달아 죽을 때 발견되는 줄에 눌린 자국인 ‘삭흔’은 한 줄만 발견된 점과 삭흔의 위치 등도 일반적인 자살 형태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의혹이 일었다.

서씨는 고인이 우울증이 있었다고 했지만 체내에 우울증 약 성분이 나오지 않았고 지인들도 약을 복용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얘기들에서 미심쩍은 의혹들은 커졌다. 하지만 최초 발견자이자 고인과 가장 가까웠던 부인이 자살이라고 신고하면서 그의 죽음은 ‘외로웠던 아티스트의 자살’로 마무리됐다. 이후 서씨는 딸 서연양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불행이 된 저작권 유산

김광석은 죽었지만 그의 노래는 남았다. 그가 떠난 해에 생전 노래들을 엮은 ‘노래이야기(1996년)’, ‘인생 이야기(1996년)’ 앨범이 발매됐다. 이후에도 대중들은 꾸준히 그의 앨범을 찾았다. 노래방에서는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가 꾸준히 불렸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끊임없이 인생의 특정 시점에 그의 노래를 소환했다. 밝혀지지 않은 죽음 후 한 가수의 저작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는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불행의 씨앗이 됐다.

고(故) 김광석은 생전에 3집, 4집을 비롯해 다시 부르기 1, 2 음반을 아버지인 김수영씨 이름으로 계약하고 음반의 저작권을 아버지에게 양도했다.

하지만 김광석이 떠난 후 세 달이 지나자 부인 서씨가 김광석씨의 음반 관련 계약을 직접 체결하고 관련 업무를 맡아보던 아버지 김씨에게 저작권사용료 청구권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김씨와 부인 서씨는 합의를 했다.

‘아버지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한 4개 앨범에 대한 권리는 아버지 김씨에게 있지만 사망하면 이를 김광석의 딸 서연양에게 양도한다. 또 향후 제작되는 모든 음반의 계약은 부친과 서씨와 딸 서연양이 합의해서 체결한다’

즉 4개 앨범에 대한 권리는 아버지에게 있지만 사망한 이후에는 서씨가 아닌 서연양이 가진다는 게 기본 요지다.



■“아이의 교육과 양육에 돈이 많이 든다”

이후 아버지 김씨가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였다. 아버지 김씨가 생전에 자신의 권리를 김광석의 어머니 이달지씨와 형 김광복씨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공증을 받아뒀다. 이에 유가족들은 아버지가 갖고 있었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서씨는 김광석 가족의 동의를 받지 않고 ‘김광석 BEST(2005)’ 등 여러 앨범의 발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가족들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의 합의 내용은 무효’라며 서씨와 딸 서연양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정 싸움은 3년 동안 계속 됐고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4개 음반의 판권 등은 아버지 김씨가 사망하면서 김광석의 딸 서연양에게 넘어왔으나 이들 음반의 음원을 이용해 새 음반을 제작할 경우 권리는 원고, 피고에게 공동 귀속된다”며 원고의 손을 일부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인 서씨의 손을 들어줬다.



“합의서에서 향후 제작할 모든 음반의 계약은 김씨의 부친과 김씨의 아내가 합의해서 체결키로 정했지만 이 합의가 음원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작 인접권(연주자, 가수, 음반제작자 등이 갖는 권리)을 공유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

2008년까지 진행된 법정 싸움에서도 서씨의 변론 요지는 ‘아이의 교육비와 양육비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내용에 상당부분이 할애됐다.

■“언론에는 공소시효가 없잖아요”

김광석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의혹이 풍문처럼 스쳤다 잊혀진 가운데 끊임없이 추적한 이가 있었다. 처음 김광석의 죽음을 사건 기자로 취재했던 이상호 감독(전 MBC 기자)이었다.

이 감독은 당시 김광석의 죽음 직후 김광석의 장모(서씨의 어머니)씨를 만났다. 그는 딸 서씨에게 들었던 김광석 사망 당시 상황을 ‘거실에서 쿵 소리가 들려 나갔다’는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서씨의 진술은 달랐다. 그때 생긴 ‘합리적 의심’으로 김광석 타살의 유력한 용의자에 서씨를 두고 취재수첩을 채워간다. 이후 검찰 출입 기자가 돼 검찰 라인을 통해 재수사를 촉구해 서울 중앙지검 강력부에서 재수사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해당 수사팀이 해체되면서 재수사가 좌절됐다.

이미 공소시효도 끝난 사건이지만 이 감독은 말한다 “언론에는 공소시효가 없잖아요”

그가 김광석 사망의 미스테리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난 달 30일 개봉했다. 영화의 개봉 직전 진행된 시사회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단체 관람을 하기도 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당시 서로 이혼을 결심했다는 주변인들의 진술을 다뤘다. 김광석이 서씨가 재혼한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다는 사실을 죽기 3년 전에 알게 되면서 불화를 겪었다는 것. 이혼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얘기들이었다. 또 김광석의 죽음 이후 서씨에게 돌아간 당시 기준 십억원대 건물과 백억원대 저작권 수입에 주목한다. 실제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김광석의 음반은 사후 10년 간 그의 음반은 500만장 이상 팔렸고 2012년 기준 노래방에서 하루 평균 800회 이상 불렸다. 이로 인해 발생한 누적 수백억원대의 수입은 애초에 딸 서연양에게 돌아가야 했다.



■20071223 또 다른 비극

하지만 딸 서연양의 행방은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김광석 유가족 등 지인들이 서연양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이상호 감독에 따르면 서씨는 가까운 지인에게는 ‘딸이 (정신지체로 인해) 특수기관에 있다 보니 나도 통화가 잘 안 된다’ 등으로 둘러댔다. 하지만 지난 19일 이상호 감독이, 이어 20일에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딸 서연양이 이미 사망한 지 10년이 지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

2007년 12월 23일 오전 6시께 수원의 한 대학병원으로 한 여자아이가 급하게 이송됐다. 열일곱 살이 된 김광석의 딸 서연양이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소송 준비를 하러 한국에 와있었는데 경기 용인의 자택에서 딸 서연양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해 119에 신고한 것이다.

서연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서연양의 사인은 ‘급성화농성 폐렴과 폐포 손상 등 폐질환’이었다. 당시 서연양 사망에 관해 조사했던 경기 용인동부경찰서 측은 ‘사망 전 감기 증상에서 인근 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서씨의 진술과 진료 확인서, 국과수 부검 결과를 토대로 범죄 혐의점이 없어 내사 종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광석이 타살당했다는 걸 의심하는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과거 급성 폐렴으로 위장했던 살인사건 등 서연양의 죽음 역시 타살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두 건의 밝혀지지 않은 죽음, 남은 한 번의 기회

서연양이 이미 10년 전에 죽었고 서연양에게 김광석의 음원에 관한 모든 권리가 귀속된다고 했던 대법원 판결 역시 당사자가 죽은 가운데 내려졌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고 있다. 또 이 모든 권리는 부인 서씨에게 귀속돼 있다는 점에서 여론의 눈길은 서씨를 다시 향하고 있다.

이 가운데 21일 이상호 감독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故) 김광석씨와 딸 서연양 부녀의 타살 의혹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접수했다.

“서해순은 김광석 변사사건의 살인죄 공소시효가 끝난 직후인 2012년 귀국합니다. 골프장 옆 고급 빌라에서 죽은 김광석을 팔며, 죽은 딸의 몫으로 최근까지 럭셔리한 생활을 이어온 것입니다. 서해순이 영화 <김광석>을 고소하지 않고 숨은 이유는 공소시효가 끝난 김광석 사건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서연양 타살의혹의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였고, 더 두려운 건 그녀가 악마의 얼굴을 하고 가로챈 저작권을 빼앗길까 두려워서였던 것입니다”(이 감독의 기자회견 가운데 일부 내용)

하지만 이 감독의 고발장 접수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서씨. 그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혜진·정수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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