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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현자(賢者)는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는다

이철균 경제부장

정부의 정책변화 악재로 꼽은 S&P

제조업 위축 우려하는 월가 투자가

"경제체력상 나눠서 성장 못한다"는

청와대 진단, 정책변화로 이어져야





최근 한국을 찾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 기업을 향해 “추가적인 신용도 향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을 냈다. 세 가지 이유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등에 따른 주력산업의 부진, 수출 주력품목의 초과공급 우려, 그리고 새 정부의 각종 규제와 정책 변화 등이 악재요소였다. 우리 기업의 86%가 ‘안정적’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는 깔았지만 S&P의 진단을 무시하고 가기에는 한국 경제에 서서히 드리우는 암운이 짙다.

외형만 놓고 보면 한국 경제는 나쁘지는 않다. 수출은 8개월 연속 두자릿수 증가다. 글로벌 경제도 순풍을 달고 있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호재다. 하지만 이뿐이다. 경제동향(9월호)에 나타난 투자·소비지표 등이 좋지 않다. 주력산업은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경쟁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고조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로 외국인투자가들의 ‘투심’을 장담할 수 없다. 수출이라도 낙관할 수 있을까. 수출은 반도체와 선박 등 일부 품목에 기댄 결과다. 특히 반도체는 1·4분기와 2·4분기에 각각 45%, 54% 늘면서 수출을 견인했는데 외환위기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착시’가 또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표만 보고 허리띠를 풀고 취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성장’보다는 ‘분배’에 방점을 찍은 새 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S&P의 지적대로 악재다. 미래의 먹거리를 만드는 큰 그림의 정책 대신 기업들의 지갑을 열고 견제장치만 쏟아내고 있다.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 확대, 소비자 집단 소송제 등이 국회의 입법 통과를 대기 중이고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비록 정책은 선의로 시작했겠지만 고용 감소나 투자심리 위축 등의 부작용이 더 커지는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소 불안하다. 미국 월가에서 서울경제 취재진을 만난 한 투자자는 “해외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한국 성장의 기반이 돼온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 등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현대차·포스코처럼 기관투자가들이 포트폴리오에 단골로 편입해온 기업들의 입지가 위축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 차 미국 뉴욕을 방문하면서 금융·경제인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국가설명회(IR)를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질의응답까지 받아가면서 진행했다. 주목할 것은 문 대통령이 발언한 대목.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경제개혁·재벌개혁·공정개혁이 기업 활동을 제약하거나 반기업적 경제철학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으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반(反)기업적으로 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청와대 역시 이를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달여 전쯤 기자와 만난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어공) A의 말이다. “솔직히 우리의 경제 체력상 나눠서는 성장할 수 없다. 일본과는 다르다.” 분배에만 방점을 찍고 정책을 펼치기에는 우리 경제의 지갑이 아직은 얇다고 했다. ‘소득주도성장에 무게를 두고 경제정책을 펼치지 않느냐’고 되묻자 “소득주도성장을 꺼낸 것도 결국 혁신성장을 위해서다. 분배가 혁신과 접목이 될 때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공급 측면이 무시된 ‘반쪽’짜리 성장론” “실증되지 않는 ‘경제학의 이단’” 등 비판이 쏟아질 무렵이라 A의 말은 소나기를 피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진심인지는 예단할 수 없었지만 A의 진단만은 정확했다.

A의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서 “앞으로 보시라. 노동은 물론 중소기업 부문 등의 개혁 방안도 여럿 내놓겠다”고 했다. “그들도 입이 나올 것”이라면서…. 어느 정부든 정권 초기에는 오버슈팅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출범 100일을 넘어선 지금,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속도와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A의 진단이 실행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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