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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刎頸之交(문경지교:상대를 위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친밀한 관계)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국가 존립' 공동의 목표 위해

대립 극복한 염파·인상여처럼

강서구 특수학교 둘러싼 갈등

시야 넓혀 상생의 길 찾아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서울 강서구에는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갈등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에서 장애 학생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신설을 반대하는 측에 설립을 호소했다.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공개되자 강서구 특수학교의 설립 사안을 두고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수학교가 주위에 있으면 좋지만 내 집 가까이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 현상의 대상이 된 셈이다.

특수학교의 설립을 반대한다고 해서 도덕적 선악으로 편을 가르거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기보다 서로 합리적인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이해가 엇갈린 사안에 대해 찬성만이 아니라 반대를 주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으로 집값 하락과 이미지 실추에 대한 우려가 강하다. 이러한 우려는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 지난 1996년 이후 서울에 설립된 11개 특수학교 인근의 표준·개별공시지가를 다룬 보도를 보면 모든 지역에서 연평균 7~17%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특히 강남 삼성동과 일원동의 경우 특수학교 설립 이후 현재까지 300%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또 특수학교 설립 이후 학교가 장애 학생과 주민의 소통 프로그램을 통해 상호 이해가 깊어지게 됐다. 이렇게 보면 특수학교 설립이 제기되는 처음에 반대 여론이 강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우려가 해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다고 반대 측의 우려와 불안이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미래의 안정은 아직 보이지 않아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재의 불안은 쉽게 예상돼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기에 나오는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를 살펴볼 만하다. 고사의 주인공은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염파와 인상여다. 염파는 대대로 무인 집안으로 여러 전장에 나가 큰 군공을 세운 장수였다. 인상여는 미관말직에 있다가 진나라로부터 조나라의 국보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지켜낸 공로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이후에도 인상여는 조나라와 진나라의 외교 분쟁을 해결하면서 염파의 지위를 능가하게 됐다. 염파는 혜성같이 등장한 인상여 때문에 자신의 지위가 흔들린다고 판단했다. 이에 그는 조정 동료를 대상으로 집안의 배경도 없고 뚜렷한 공적도 없이 세 치의 혀를 놀려 행운을 누린다고 인상여를 비난했다. 아마 염파는 인상여의 출세를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고 생각했으리라. 이러한 비난 소식을 듣고서 인상여는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회피 전략을 구사했다. 길에서 염파를 만날 수 있으면 길을 피하고 조정에서 만날 수 있으면 병을 핑계 대고 나가지 않았다.

이러한 회피 전략이 장기화되자 인상여의 주위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에 인상여는 주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지금 조나라에 자신과 염파가 있기 때문에 주위의 여러 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는데 두 사람이 대립하면 주변 나라의 침략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염파의 귀에 들어가자 염파는 더 이상 인상여를 공격하지 않고 바로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지고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와서 자신을 벌해 달라는 부형청죄(負荊請罪)의 자세를 취했다. 인상여는 부형청죄의 염파를 용서하고서 서로 대신 죽을 수 있는 문경지교(刎頸之交)의 우정을 맺게 됐다.

문경지교는 동아시아에서 생사를 함께 하거나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우정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이야기의 발단은 염파와 인상여가 개별적 이해를 초월해 국가의 존립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동의하는 데 있다. 두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수용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동의했기 때문에 대립을 넘어 상생의 우정을 피울 수 있었다. 강서구의 특수학교 설립도 개별 이해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팽팽한 대립의 긴장이 해결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무릎을 꿇은 행동은 장애 자녀의 행복을 위한 진정성이 아니라 언론을 대상으로 한 쇼로 착색될 수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평등권에서부터 지역 사회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힌다면 공동의 목표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지만 서로를 모르는 무관심의 무지를 상호 이해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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