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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기초체력' 경제분석 기능 강화엔 소홀한 공정위





김상조호(號)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1일 대기업 조사를 전담할 기업집단국을 역대 최대 규모로 출범시켰습니다. 김 위원장의 색깔이 담긴 ‘재벌 개혁’ 본격화의 신호탄이지만, 정작 공정위의 ‘기초 체력’인 경제분석 역량 확충은 이번에도 무산됐습니다. 경쟁당국으로서의 전문성 부족이 늘 지적돼온 공정위로서는 아쉽다는 평가입니다.

현재 공정위 내 경제 분석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는 경제분석과 하나입니다. 2005년에 신설된 이 과의 총인원은 9명입니다. 하지만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과장과 행정지원 인력을 제외하면 실제 전문성을 갖고 경제 분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은 6명에 불과합니다. 공정거래 사건은 시장의 범위 획정, 경쟁제한성 판단, 정상가격 산정 등 상당히 높은 경제적 분석 역량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터무니 없이 적은 인력입니다.

이에 대한 지적은 국회에서도 꾸준히 있었고, 공정위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도 후보자였던 지난 5월 “공정위가 해야 할 중요할 역할이 조사기능도 있지만 경쟁분석 기능“이라면서 인력 조정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이번 조직 개편 때 경제분석 인력 증원이 기대된 배경입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10% 넘는 인원(60명)이 늘어난 이번 개편에서도 기업집단국에 힘이 몰리면서 경제 분석 인력은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공정위 산하 공정거래조정원도 현재 5명밖에 안 되는 연구 인력 증원을 약속 받았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경쟁당국의 기초체력은 경제분석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소주와 맥주를 ‘대체재’로 볼 것인지 ‘보완재’로 볼 것인지에 따라 두 개 시장의 범위가 달라지고, 당국 규제의 기준이 되는 시장 경쟁 정도도 달라집니다. 실제 공정위가 지난 2005년 하이트맥주와 진로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한 것은 맥주와 소주를 대체 관계로 보고 서로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판단을 하려면 복잡한 경제적 분석이 선행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중요한 재벌·대기업 규제를 할 때에도 경제 분석은 필수입니다. ‘일감 몰아주기’만 봐도 그렇습니다. 동일 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 내부거래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가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가 되려면, 그 거래가 내부거래를 하지 않았을 때의 ‘정상적’ 거래조건이나 가격에 비해 눈에 띄게 차이가 커서 시장경쟁을 제한하거나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는 결과가 일어났다는 점이 입증돼야 합니다. 이 역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공정위 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은 6명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국 단위(Bureau of Economics)로 경제 분석 조직을 두고 관련 분야 박사급 전문가만 70여명을 운용하고 있고, 유럽연합(EU)도 경제분석관실(Chief of Competition Economist)에 26명의 전문 경제 분석 인력을 두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초라합니다.

인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최소한의 경제 분석도 거치지 않은 채 처리되는 사건도 적지 않습니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1년에 전원회의에 올라가는 사건만 수백 건이다 보니 경제분석과에서 그 모든 사건을 보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손을 내젓습니다. 실제 지난해 공정위가 처리한 사건은 총 3,885건, 그중 전원회의에 상정된 안건 수는 759건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정위 직원들 중 내심 ”사람도 부족한데 경제분석까지 일일이 공정위가 해야 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8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물론 공정위도 중요 사건에 대해선 외부 용역을 통해 경제 분석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 사건 조사 초기 단계부터 전문가가 관여하는 것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 분석 부족은 법원 패소로도 이어집니다. 특히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가한 제재는 법원 판결에서 번번이 뒤집히는 실정입니다. 공정위가 처음으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 즉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제재한 한진그룹 건도 지난 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공정위와 법원의 법리 해석에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서도 “법원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경제분석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을의 눈물’을 초래하는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기업 제재를 제대로 하려면 결국 철저한 경제 분석이 앞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공정위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디지털 조사분석과’를 신설하고 현재 5명에 불과한 조직을 17명으로 늘려 전자 증거 수집과 분석(디지털 포렌식) 능력을 강화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지식산업감시과’를 신설, 정보통신기술(ICT), 제약, 생명공학 등 지식산업 분야의 전문성도 확충했습니다. 경제와 시장의 새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공정위가 ‘기본’인 경제 분석 기능에도 소홀하지 않다는 신호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과거 공정위에 몸담았던 한 전문가는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부당하다’는 결론까지 이르는 조사와 분석 결과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며 “고도의 경제분석 능력을 키우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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