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칼럼] 트럼프의 ‘새로운 세계질서’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유엔연설서 민족주의 포용 강조

美이익 우선…세계 주도권 외면

中 글로벌 아젠다 독점할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뒤죽박죽이었다. 여러 대목에서 현실정치를 찬양하다가 느닷없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상충하는 주제와 분위기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그래도 민족주의 포용이라는 핵심 주제만은 뚜렷했다.

취임 후 첫 번째 유엔 연설에서 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포스트 아메리카(post-America)’ 시대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독려했을 뿐 아니라 재편된 질서가 공고해지는 것을 흔쾌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잡동사니 모음 같은 연설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앞부분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누구에게도 미국적 생활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북한과 이란·베네수엘라의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강력히 비판하고 이들 모두에 서구 스타일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종류의 고상한 발언이 가진 위험은 이제까지 이것이 선택적으로 적용돼왔기에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로부터 미국의 사리 추구를 위장하려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적 반응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 같은 위선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란을 자유결핍 국가로 비난한 것과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

참정권, 종교적 관용, 언론의 자유 등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이란은 사우디에 비해 훨씬 개방된 사회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광적인 종교집단과 연결된 절대군주제 국가로 교회와 유대회당인 시너고그가 법으로 금지된 곳이다.

트럼프는 유엔 연설에서 특이한 예를 들어가며 주권과 민족주의를 역설했다.

마셜플랜을 지원하기 위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한 몇 마디 말에 의지해 그는 국제질서에 대한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아름답고” “숭고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실제로 마셜플랜을 지지할 것으로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셜플랜은 외국인들이 그들의 산업을 부흥시키도록 지원하는 방대한 해외원조 프로그램으로 정부 관료들이 시행주체를 이룬다. 이렇듯 미국의 지원을 받아 부활한 해외 산업체들은 미국 기업의 경쟁상대로 자리 잡게 된다.



트럼프 연설의 압권은 극적 효과를 낸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여러분이 국가 지도자로서 자국의 이익을, 늘 그리고 당연히, 가장 중요하게 여기듯이 나 역시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와 중국 같은 국가들이 수십년간 입버릇처럼 해온 발언이다. 지난 70년 동안 유엔 회원국들의 토론은 편협한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회원국과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이 폭넓은 공통의 이익을 촉진하는 데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회원국 간에 치열하게 전개됐다.

FDR에 의해 태동하고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를 받아온 후자는 무역·여행·질병·범죄와 기후 문제 등 국경을 초월한 이슈들로 오직 지역적 혹은 글로벌 차원에서 다룰 수밖에 없는 난제들을 모니터하고 지원하기 위해 유엔과 다른 국제기구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세계의 지도자 노릇에 진력을 내고 있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 다른 모든 국가가 미국과의 거래에서 불공정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엄살을 부렸다. 거의 모든 국제포럼을 장악해온 세계 최강의 국가가 어쩌다 보니 다른 국가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는 불평이다. 그가 해법으로 제시한 민족주의로의 회귀는 러시아와 중국 등 세계의 주요 대국들뿐 아니라 인도와 터키 등 편협한 사욕에 근거해 행동하는 나라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물론 이는 미국의 주도권 상실에 따른 새로운 세계질서의 극적 가속화를 의미한다. 새로운 질서 속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이 국제사회의 공동이익 대신 자체이익만 염치없이 추구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여기에 필요한 국제기구들을 신설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유엔의 예산 중 22%를 부담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액수는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미국이 분담금을 축소할 경우 트럼프는 중국과 같은 나라가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재빨리 나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중국은 유엔을 완전히 장악해 새로운 틀을 만들 것이며 지난 70년간 미국이 그래왔듯이 글로벌 어젠다를 독점할 것이다.

아마도 중국은 유엔본부를 베이징으로 이전하자고 제안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는 유엔본부 이전으로 공터가 되는 이스트리버의 몇 에이커짜리 부지에 수개 동의 콘도미니엄을 추가로 지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