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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②]박지환, “여진구를 놀라게 한 배우? 지금 이 순간에 폭발하는 것들 믿어”

1999년 영화 ‘노랑머리’ 로 데뷔한 18년차 배우 박지환에게 무가치한 질문은 “어떤 배우를 존경하느냐?”이고, 바보 같은 질문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인물을 만들어갔느냐” 이다.

“내게 연기란...찰나에 벌어지는 환상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제가 예상할 수는 없는 걸 연기하고 싶어요.”란 명답을 내 놓았다.

배우 박지환 /사진=조은정 기자




“단 한 번도 누구처럼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괴롭고 힘들었는지도 몰라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이미 스무 살 때 이뤘거든요. 그럼 도대체 어떤 배우가 될까? 잘 모르겠지만 제가 되기 위해서 가보는 거죠. 전 제가 되고 싶지 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배우를 시작한 건 저고, 그렇다면 제가 되기 위해 끝까지 가야죠.”

박지환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검사외전’,‘나의 독재자’, ‘대립군’ 등에서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펼친 배우로 알려졌다. 연극 ‘1동 28번지 차숙이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고제, ’목란언니‘ ’아버지의 집‘ ’더 포토‘ 등 다수의 연극 무대를 오가고 있는 그를 3일 개봉을 앞둔 영화 ‘범죄도시’ (감독 강윤성)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범죄도시’에 대해 “시나리오가 이상하다. 되게 좋게 이상하다”라는 말을 해 기자의 귀를 쫑긋거리게 했다. 이는 “세상은 불균형이고 불구이다”고 생각하는 그의 시각과도 닮아있었다.

“저한텐 세상이 그렇게 보여요. 세상은 불균형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너무도 당연하게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보고 싶고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만나보면 색다르고 이상해요.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이죠.”

“윤계상형이랑도 이야기했는데 ‘범죄도시’ 시나리오가 되게 이상했다. 나쁘게 이상한 게 아니라 좋게 이상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 상황이 너무 좋더라. 이건 우리가 해야 하는 게 맞다.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이상하게 받아들일 게 아니라 관객에게 고스란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선호하는 ‘낯설게 보여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좋았어요.”

그렇기에 배우의 연기는 어느 한가지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고, 하나의 색으로만 선명하게 칠해질 수 없다고 했다.

“진짜 상대방과 만나 액션이 들어가면 다 무너지는 게 연기잖아요. ‘인간의 연기는 얼룩’ 이죠. 다들 빨주노초파남보 각양각색 색깔처럼 선명하고 싶어해요. 하지만 너랑 나랑 만나면 물결치는 것처럼 얼룩지는 게 맞아요. 빨간 색이에요. 노란색이에요. 라고 말할 수 없듯이 ‘희끄무레한 노란색’ 그게 배우들의 연기 색일지도 몰라요. 전 그런 것들을 더 보여주고 싶어 해요.”

누군가에게 박지환은 특이한 배우이자 흥미로운 배우로 비춰졌다. ‘대립군’(감독 정윤철)을 함께 작업한 김무열은 ‘형 어떤 사람이에요’ 란 질문을, 오광록은 ‘난 너처럼 이상한 사람 처음 봐’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인겸 배우는 “넌 참 독특한 배우이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인터뷰 현장엔 3명의 배우들이 순식간에 소환됐다. 성대모사에도 일가견이 있는 박지환은 알면 알수록 더욱 재미있는 배우였다.

영화 ‘대립군’ 포스터


특히 영화 ‘대립군’으로 만난 여진구에겐 너무나 궁금한 배우가 바로 박지환이었다고 한다. 여진구는 ‘대립군’에서 전란 속 조선을 이끈 왕 ‘광해’로 열연했고 박지환은 오직 살기 위해 여진족으로, 조선인으로, 다시 대립군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골루타로 진가를 드러냈다.

메소드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 자유스럽고, 연기파라고 하기엔 또 다른 짐승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배우가 바로 박지환이다. 여진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못본 연기 스타일이다”란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박지환 배우와 밥을 한번 먹고 싶다’고 미팅 제안도 했다고 한다.



매니저를 통해서 밥을 먹고 싶다는 소식을 들은 박지환은 “싫어, 부담돼” 란 말로 단번에 거절했다고 한다. 재차 ‘진구가 나를 알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이후 미팅에 응했다고 했다.

첫 대면한 여진구가 쏟아낸 질문은 “선배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연기를 하세요? 어떻게 연기를 그렇게 할 수 있어요?”였다. 박지환은 “나는 세상을 이상하게 본다. 예를 들면 개구리가 앞으로 폴짝 뛰는 게 아닌 옆으로 이렇게 기형적으로 뛰는 걸로 본다.”고 답했다.

어리둥절한 여진구는 ‘무슨 말이에요?’라고 재차 물었고, 박지환은 여진구에게 비밀의 책을 선물하기에 이른다. 젊은 시절 박지환의 내면을 긁어놓았던 인간 본성을 그린 책이라는 정보만 귀띔했다.

“책을 읽고 나서, 진구가 ‘선배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던걸요. 지글 지글 타오르는 인간의 양극단을 보여주는 서적이라 쉽게 읽혀요. 가끔 진구를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나눠요. 아주 멋있는 친구죠. 저는 그 나이 때 그런 생각을 못했거든요. 젠 막연하게 뜨거웠는데 이 친구는 삶에 대해 의젓하고 품위도 있어요. 중심을 잡고 자기 것을 해 나가는 걸 보면 참 멋진 친구죠.”

배우 박지환 /사진=조은정 기자


스스로를 ‘막연하게 뜨거웠던 청년’이라고 밝힌 박지환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일장춘몽’의 의미를 놓고 여러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문학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며 ‘삶의 허무함’을 이야기했다. 고교시절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선 더 이상 세상이 ‘철수와 영희’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무지막지한 충동의 세계가 스스로에게 존재한다는 걸 알고선 연극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살고 싶었다고 했다.

20대 연극을 시작할 땐 지금보다 더욱 뜨겁고, 거침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들은 ‘지환아 너 그렇게 하면 연극 오래 못해. 불 같은 걸 조금 더 내려 놔’라고 충고했다.

“선배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연기란 게 먼 길을 가는거다. 단순하게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야. 넌 네 안에서 짐승 한 마리가 나와 날고 있는 같다. 그럼 다치잖아. 오래 연기 못해’ 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지환이 연기의 가장 매력은 ‘마치 지금’ ‘라잇 나우’ 지금 일어난 일 같다고 해주셨어요. 전 이 순간에 폭발하는 이것들을 믿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그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실 연극 배우가 똑같은 대사를 한 달 이상 같은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 어찌보면 정신병자죠. 그래서 전 같이 하는 배우가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랑 헤어진 뒤 연기를 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이별의 아픔은 별개로 배우로서 말이죠. 실연을 당한 뒤 시퍼렇게 날이 서서 연기를 하면 그날 난리가 나요. 이렇게 황홀할 수가! 그도 나도 연출자도 그 순간 연기를 바라볼 때 느낌이 달라요. 배우 역시 자기의 연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박지환이 매력있는 점은 절대 철들지 않는 배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강렬하게 살아있는 눈빛으로 배우가 살아 숨 쉬는 우주의 공기를 포착해내는 그 역시 “배우는 철든 순간 재미 없다”고 했다.

“배우들은 다 그래요. 눈은 강렬한 독사인데 알고보면 다 아이죠. 배우는 애나 어른이나 다 애라고 생각해요. 그게 불행이자 축복인 것 같아요. 내면은 아이 같으니까 힘들어해요. 당최 성장이 안 되는거죠.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야 되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철이 드는 것일 수 있어요. 전 ‘철이 든다’는 걸 아예 생각조차 안하려고요. 하하.”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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