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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검은빛 벽돌…통유리…나지막한 한옥…한국 건축사 품은 공간

서울 종로구 율곡로 83에 있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경. 건축사무소 공간의 예전 사옥 이었으며 벽돌건물, 통유리건물, 한옥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송은석기자




창덕궁에서 안국역 방향으로 2분 정도 걷다 보면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1970년대 검은색 벽돌 건물과 현대식 통유리 건물, 나지막한 한옥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외관의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세 가지 이질적 건물이 모여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면서도 인근 북촌 한옥마을과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건물 내부에서는 창덕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는 건물 5층은 통유리 벽면을 통해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어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프러포즈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현대건축 역사를 간직하면서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곳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다. 현재는 미술 전시관과 레스토랑·카페 등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건축사무소 ‘공간(空間)’의 사옥이었다. 불멸의 건축가이자 공간의 1대 소장인 고(故) 김수근이 직접 벽돌 건물을 설계해 완공(1971~1977년)했으며 이후 2대 소장인 고(故) 장세양 건축가가 통유리 건물(1996~1997년)을 짓고 3대 소장 이상림 건축가가 이어 한옥(2002년)을 증·개축해 지금도 ‘구 공간 사옥’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전시관(공간의 구사옥) 내부./송은석기자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전시관(공간의 구사옥) 내부 계단./송은석기자


■김수근의 ‘공생 철학’ 구현된 건물

기왓장 느낌 벽돌로 주변 고궁·한옥과 조화

자연과 상생 고려 외벽에 담쟁이넝쿨 심어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김수근의 핵심 건축철학인 ‘공생’이 잘 구현돼 있기 때문이다. 또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의 벽돌건물인 구사옥은 한국적 공간을 나타낸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건물을 지을 때 인근의 고궁 및 한옥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기왓장 느낌의 검은색 벽돌을 주재료로 삼았고 자연과의 상생을 고려해 담쟁이넝쿨을 심어 외벽을 장식했다. 또 대지의 경사를 살려 바닥을 반 층씩 어긋난 높이로 설계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를 도입했다. 올라가다 보면 내가 몇 층에 와 있는지 알기 어려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반경이 1m도 되지 않는 원형 계단 때문에 중세의 성에 와 있다는 착각도 든다. 여기에 인간의 몸 크기를 기준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휴먼스케일(human scale)’도 적용했다. 내부 공간은 한옥 구조를 도입해 막힘 없이 연결되도록 만들어 같은 공간이라도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구사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는 구사옥이 주는 감흥을 설명하기 힘들다”며 “한 건물 내에 다양한 기법을 적용해 독특한 공간감을 만드는 김수근 건축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통유리 건물을 통해 보이는 벽돌건물(공간의 구사옥)과 한옥./송은석기자


■시간이 빚은 세 개의 공간

벽돌·통유리·한옥 어우러진 독특한 외관

과거와 현재 유기적으로 연결한 발상 신선

시간이 흐르면서 사옥이 비좁아지자 공간 2대 소장인 장세양 건축가는 개방형 통유리를 사용해 1997년 구사옥 옆에 신사옥을 완공했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다. 구사옥에서 누릴 수 있는 창덕궁 조망권을 해치지 않고 김수근 건축가의 건축철학인 ‘공생’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해 견고한 벽돌보다 전면이 투명한 강화유리를 사용했다. 이후 3대 소장인 이상림 건축가가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있던 1층 규모의 한옥을 2002년 증·개축했다.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의 한옥은 김수근이 설계한 구사옥의 대청마루 역할을 하는 리셉션홀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시대와 방식을 달리하는 건물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한옥 옆에는 김수근 건축가가 필동에서 직접 사온 고려시대 석탑이 들어서 있어 고전미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제각각의 특성을 가졌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 건물은 공간은 물론 한국 현대건축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1970년대부터 30여년 넘게 위상을 공고히 해왔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전시관 내부 전경. 공간의 구 사옥 모습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벽돌건물(공간 구사옥)과 통유리 건물 사이에 위치한 고려석탑. 김수근 건축가가 필동에서 직접 구입한 것이다./송은석기자


■부도…매각…새로운 탄생

우여곡절 끝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 인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공간 만들 것”



오랜 기간 명성을 이어온 공간 사옥은 2014년 8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재탄생한다. 경영난을 겪던 공간이 2013년 1월 부도로 사옥을 매물로 내놓았고 공개매각을 거쳐 한 차례 유찰됐다가 현재 아라리오그룹 창업자인 김창일 회장이 150억원에 사들였다. 건축 및 문화예술계 원로들은 공간 사옥의 문화적 가치가 높다며 민간기업이나 개인에게 매각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아라리오그룹은 공간 사옥의 가치를 이어받고 기존 건물을 최대한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최종적으로 인수했다. 현재 구사옥은 예술작품 전시관으로 사용되며 고 백남준 비디오아티스트의 작품 등 김창일 회장의 컬렉션이 전시돼 있다. 신사옥 건물 2층에는 카페가 있고 3층과 5층에는 각각 이탈리아·프랑스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건축업계는 아직도 공간 사옥이 전시장과 카페 등으로 사용되는 것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아라리오그룹은 공간 사옥의 특성을 제대로 보존하고 문화적 가치를 더해 시민들이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예술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작품 전시에 필요한 조명이나 관람객 안전을 위해 필요한 계단 펜스를 설치한 것을 제외하고는 구사옥의 원래 형태가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

김창일 회장은 “서양에서는 역사성이 높은 옛 건물을 미술관이나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 현대건축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공간 사옥의 전통을 부각시키면서 예술을 접목해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시민 문화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아티스트 사랑방 된 ‘공간 소극장’

김덕수 ·공옥진의 데뷔무대 펼쳐진 공연예술의 산실



구 공간 사옥은 공연예술을 주업으로 삼는 아티스들에게도 장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 김수근 건축가가 1977년 공간 사옥 지하에 소극장 ‘공간 사랑’을 열면서 이곳에서 1970~1980년대 많은 실험적 예술인들이 관객들에게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옥진의 병신춤 등 한국 공연계의 거목들이 초석을 다진 곳도 공간 사랑이었다. 김덕수 사물놀이 명인은 “사물놀이는 1978년 2월 공간 사옥에서 탄생했으며 공간 사랑은 사물놀이의 친정과도 같은 곳”이라며 “시대의 억압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수많은 전통예술이 공간에서 다시 태어났고 오늘날 한국 전통 공연 예술이 이 정도의 부흥을 이루게 된 데는 공간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2014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재개관한 후에도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위한 소극장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아라리오그룹은 공간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예술을 지원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 ‘공간 소극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지하 공간을 예술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2015년 이후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김구림 작가와 과거 공간 잡지 편집장이었던 조정권 시인의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한국 재즈의 산실인 강태환, 현대무용가 홍신자, 마임이스트 유진규 같은 거장들의 공연이 이곳에서 열렸다. 2016년부터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편히 드나들며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무대를 지원하고자 무료 대관을 하고 있다. 면적은 약 20평 규모이며 관람석은 80석 정도이다.

이지선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선임은 “2015년 이후 매년 10회 이상 공연이 진행되며 올해 들어서도 연극·클래식·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렸다”며 “국악·클래식·재즈뿐 아니라 희곡 낭독 및 연극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선진 예술가들에게 너른 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공간 소극장’에 입장한 관람객들이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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